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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May 17. 2024

정치, 사회문제에 대한 나의 변명

남편은 정치 이야기를 하면 말이 많아지고 결국 화를 낸다. 평소엔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타입이 아니었는데 어느 시기부터 정치 문제에 몰입하면서 화가 많아졌다. 그래서 남편이 정치 이야기를 시작하면 피하게 된다. 난 어떤 사안에 대해 내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은 의견 한마디에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는 라벨이 너무도 순식간에 붙여지기 때문에 한마디 하기가 더욱 어렵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지겹다. 한때는 자기 의견이 명확한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어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야무지게 알아보는 힘이 부족하기에 그렇게 확신에 차서 주장할 수가 없었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이들이 알아서 찾아보고 의견을 잘 내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도 했다. 그게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세상의 그 많은 일들에 확실한 의견을 갖는 게 사실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직접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관심 있는 분야는 나도 열심히 찾아보고 생각도 해보고 나름대로의 의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그걸 굳이 사람들과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나 혼자 의견을 가지면 될 일이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으며 잘 해결하며 살기도 어렵다. 내 문제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쉽게 바꿀 수 없는 정치나 사회문제들에 열 올리며 이런저런 주장을 펼치는 것이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문제가 사회와 정치와 연관되어 있기에 화가 나고 답답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때마다 그렇게 논쟁을 하고 화를 내는 일이 나에게는 너무 소모적이라고 느껴진다. 피로감이 생긴다.


나에게 관련되는 일이 생길 때는 당연히 지금 어떤 정책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아보기도 하고 그에 맞춰 의견이 생기고 선거 때 내 의견에 따라 투표도 한다. 단지 현실에서 그 문제들에 대해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한때는 그런 모든 것에 같이 공감하고 의견을 주장해야 옳은 건가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한 국민으로서 이 나라의 정치를 올바르게 세우는데 필요한 자세를 갖추는 거라고. 그런데 이제는 정말 옳은 것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나의 삶과 연관된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힘들다. 전처럼 어떤 주장을 강하게 하기 힘들다. 내가 자기 확신이 없고 자신감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건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믿었던 여러 사실들의 다른 면을 알게 되었고 그 다른 면 또한 반박하기 힘든 사실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제는 큰 틀에서 어느 쪽을 지지한다던가 내가 무조건 옳다는 주장을 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전문가들조차 자신의 분아에서 틀릴 수 있는데 그 분야의 다양한 면 중 단 한 면도 제대로 잘 모르는 내가 어떻게 남들 앞에 강한 의견을 펼칠 수 있단 말인가? 나 자신 앞에 놓인 내 문제 하나도 평생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기 어려워 이리저리 고민하고 찾아보고 끙끙대고 있는데 말이다.


사람들의 이야기 중 특히 큰 소리들이 귀에 들리지만 이제 그 소리들을 보류하는 일이 많다. 내 일이 아니기에 내 의견이 생길 만큼 세세하게 알아볼 열정은 없다. 그게 비겁한 일은 아닐 거다. 모든 일에 다 그렇게 내 일처럼 자세히 알아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단지 큰 소리 편에 서서 내 의견인양 주장하지는 않겠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관심 갖고 공부해야 하는 게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못한 내가 비겁하다고 생각한 시간이 길었다. 87학번이 학교 다니던 시기에는 그런 부채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부채감을 갖고만 있는 건 괜한 자만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은 나의 삶을 고민하며 열심히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부족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에게서 뻗어나가는 생각들을 점검하고 고민한다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잘 살아나가서 내 세상이 나아진다면 이 세상에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자식들을 올바르게 키워 세상에 해 끼치지 않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그거로 됐다고 생각한다.


내 생활 속에서 먹는 일, 쓰는 일, 사람들을 대해는 일 같은 작은 것부터 성의 있게 세심하게 고민하고 살아나간다면 조용히 좋은 것들이 세상에 스며들 거라고 생각한다. 내 삶을 제대로 세우며 그렇게 세상과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때에 맞춰 고민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지금까지 나에게는 그랬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기도 쉽지 않았다. 내 가족에게도 늘 친절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세상에 더 큰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채감을 저 옆으로 잠시 밀어둔다. 다 버리지는 못했다. 아직도 고민 중이다. 이것은 내 변명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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