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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May 14. 2024

나의 정원이 있었다.

나만의 비밀정원이 있다. 이것이 만들어진 최초의 기억은 국민학교 3, 4학년 때쯤이었던가 아니 더 어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 매달 사보던 소년중앙 사은품으로 받은 피리가 있었다. 보통 피리보다 작고 뚱뚱한 주황색과 크림색이 섞인 허술한 모양이었다. 그 피리를 불며 노을 질 무렵 창밖으로 보이던 옆집의 작은 마당의 풍경이 지금도 생각난다. 약간 슬픈듯하면서 포근한 그 감각이 좋았다.

작년 부산 여행에서 찍은 사진


대단한 곡도 아니었을 거고 음악책에 나오는 시시한 동요였을 텐데 풍경과 내가 연주하는 곡조가 자아내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기분이 오랜 시간 나에게 남았다. 그 이후로 엄마한테 야단맞던 날이나 뭔가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피리를 불며 마음을 치유하는 법을 알게 된 거 같다. 그렇게 피리를 불면 상처가 치유될 뿐 아니라 뭔가 말로 하기 힘든 아련한 기분이 드는 것이 좋았다.


그 뒤로 이 세계에 점점 몰입하기 시작했다. 피리만 있던 정원에 피아노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 우연히 발견한 비인소년합창단의 노래들과 많은 책과 영화들로 점점 더 크고 멋지게 꾸미기 시작했다.


시험 기간에 피아노를 더 열심히 치고, 아주 싫어하는 과목을 공부해야 할 때는 책으로 도망치기도 했다. 고 3 때도 야자를 하고 돌아와 잠자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좋아하는 책 한 두 페이지라도 읽어야 하루 종일 억압되고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날 지탱해주고 잘 살게 도와준 것은 사람보다 이 비밀 정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상처받았을 때 이곳이 있다는 생각이 안정감을 준다. ‘나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어. 거기서 내 일을 하면 다 괜찮아져’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그곳에서 치유받고 좋아하는 꽃들에 파묻히고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사람들 앞에 말간 얼굴로 설 수 있다. 나의 부정적 감정과 상처들을 주변에 너무 많이 흩뿌리지 않도록 거름으로 사용한다. 거름이 될 일들이 많을수록 정원의 꽃들이 더 풍부해지고 아름다워졌다고 믿고 싶다.


그곳으로 갖고 들어오는 것이 많아질수록 행복감도 커졌다. 10대, 20대 에는 우연히 잡지에서 본 사진 한 장, 영화의 한 장면, 배우의 아름다운 얼굴 이미지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가득 채워지고 닿을 수 없는 어떤 세상을 꿈꿀 수 있었다. 이런 도피처 내지 나만의 세계가 없었다면 나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기 어려웠을 것이다.


평생 나와 함께 갈 음악 몇 도 소중하다. 시시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곡마다 그 당시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노래 속 단어 하나, 문장하나, 곡조 하나가 있었다. 그 노래를 듣는 즉시 그 당시의 작고 어린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다시 살아난다.


사람들에게서 온전히 받을 수 없는 공감과 위로가 되어준다. 어떨 땐 ‘내가 너무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나’라는 생각도 한다. 너무 일찍 깨우친 거 같다. 사람들에게 크게 기대 걸지 않게 된 게 아주 이른 나이였던 거 같다. 그보다 나만의 세계를 만드는 일에 더 몰두했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명랑하게 많은 친구들과 평범하게 잘 지내지만 진짜 나는 그랬던 거 같다.


평생 나를 가장 크게 위로해 준 건 음악과 책, 그리고 쓰려니 오글거리지만 하늘의 별과 달이다. 이제는 서울에서 별을 잘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내가 어릴 때는 훨씬 더 잘 보였다. 외계인, UFO, 우주 이런 것들에 관심이 아주 많았다. 그런 것들이 나오는 SF영화는 무조건 보러 다녔다.


영화 속에서 현실감 있게 구현되는 우주선과 우주의 모습은 이 시끄럽고 비루한 현실을 넘어서는 느낌을 준다. ‘아 이런 작은 일에 연연할 필요가 없겠구나’라고 느끼게 해 준다.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만큼 작은 일에 쉽게 상처받고 연연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런 탈출구가 필요했다.


늦은 시간 알바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유난히 크게 뜬 달을 보던 날도 기억난다. 대학교 1학년이었고 아직 학교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해서 이 그룹 저 그룹 나에게 맞는 친구들을 찾는 혼돈의 시기였다.


3월의 학교는 추웠다. 아직 친구도 없고 봄옷을 입었는데 생각보다 추워서 나 혼자만 이렇게 춥고 쓰라린 기분인가 싶던 때였다. 그때 바라본 커다란 달은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 달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집에 오는 긴 시간 내내 달을 쳐다보며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지고 부드러워졌다. 이후 친구들을 사귀고 나에게도 진짜 봄이 왔지만 쓰라린 마음일 때마다 나를 위로해 주는 것들은 그런 작지만 큰 것들이었다.


내 비밀정원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결혼과 육아로 잡초가 무성한 황무지로 방치한 시간이 길었다. ‘나중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돌아가고 싶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에 파묻혀 돌아가기 힘든 때가 있었다. 그 시기를 생각해 보면 겉으로는 가장 활기차고 바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가 없던 시기였다. 인생에서 통째로 사라져 버린 시기처럼 느껴진다. 그때는 나만의 세계에서 위로받기보다는 일과 술과 많은 모임들로 나를 잊는 방법을 택했다.


버려졌던 정원을 다시 찾아가 돌보기 시작하면서 처음 만들어진 때도 기억나고 중간중간 더 확실하고 예쁘게 만들며 깊이 빠져들었던 일도 생각났다. 삶이 조용해지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자 더 깊이 들어가 확실하고 풍성하게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그 어떤 현실보다 확실한 나의 세계를 인정하고 잘 가꾸기 시작하자 삶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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