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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Jun 12. 2024

인간은 모두 힘들다.

남인숙의 <어른 수업>에서 “우울은 예술하기에는 좋지만 개인의 삶을 위해서는 되도록 적게 느끼면 좋은 감정입니다. 부정적인 사람들과 자주 소통을 하면 함께 있는 시간뿐 아니라 생활 전체에 우울과 부정이 스며들게 됩니다. 긍정의 감정은 의지로 애써 피워 올려야 간신히 유지되는 연약한 것이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애쓰지 않아도 쉽게 전염되고 강해집니다.

그래서 세상의 좋은 면들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처럼 세상의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갱년기가 일찍 왔고 그래서 이미 지나갔다고 자만하는 순간 더 큰 갱년기가 왔다. 중년의 삶은 갑작스러운 몸의 이상과 부족한 호르몬 때문인지 심해지는 감정 기복 등 생전 처음 경험하는 여러 증상으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부정적 기분에 더 쉽게 빠져드는 시기인 거 같다. 저 책의 말처럼 부정적인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아도 나 자신의 부정성에 잠식당하기 쉬운 시기다. '꿈을 이루기엔 너무 늦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 무기력하고 안일했던 과거의 나를 미워하게 되고 남 보기에 평탄해 보일지 몰라도 억울한 거 투성이다. 부정성에 잠식당하면 이 세상에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늘 주변의 누군가를 탓하는 말만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나 자신을 거울로 보듯 느껴져 불편하다. 그래선지 백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지만 자꾸 딴지를 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도 그만큼 억울해. 그래도 이렇게 애써 참고 있는데 왜 자꾸 끄집어내서 날 힘들게 하는 거야’라는 속마음이다.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불평불만은 사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들이다. 그러나 그들처럼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애써 눌러오고 죽을힘을 다해 긍정적 마음을 지어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불평불만이 나의 노력을 자꾸 무너뜨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인숙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하루에도 몇 천 번씩 찾아오는 걱정과 불만, 부정적 생각을 잘 다루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루틴을 만들고 책도 읽고 좋아하는 영상도 찾아본다.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면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렇게 혼자서 잘 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


매일 이런 공허함과 불쾌한 마음을 다독이는 각자의 힘겨운 삶의 현장에 있다. 겉보기에 걱정 없어 보이고 해맑아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다들 자기만의 골짜기가 있다. 그 골짜기에서 빠져나오려는 힘겨운 싸움을 모든 인간들이 매일 하고 있다. 단 한 사람도 예외는 없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다고, 성공했다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다고 골짜기가 없는 건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만을 경험하기에 남과 비교해 나아 보인다고 괜찮은 건 아니다.


군대에 가 있는 아들이 요즘 많이 힘들어한다. 카투사로 갔기에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감사할 줄 모르고 어찌 투정이냐 이런 생각을 하기 쉽다. 나나 남편도 그랬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만의 경험을 하고 있다. 육군에 있다 카투사에 갔다면 아 정말 편한 거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이는 오직 자신의 경험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매주 나올 수 있고 혼자만의 숙소를 사용하는 등 정말 좋은 조건이지만 아이가 느끼는 것은 달랐다. 환경은 좋지만 어쨌든 자유가 억압되는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야 하고 개인의 의견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군대의 룰을 따라야 하는 타인에 의해 지배당하는 생활이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처음엔 “감사한 줄 알아야 한다. 그래도 주말마다 나오는데 좀 참아봐라”라는 말만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저 남과 비교해 낫다는 말만 반복했을 뿐 아이의 고통에 전혀 공감해주지 못하고 있었다. 자유가 박탈되고 훈련 나갈 때는 야외 취침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전투식량으로 식사하는 일이 요즘 아이인 아들에게 많이 힘들었을 거다.


남 보기에 부러운 상황이지만 아이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그걸 무시해서는 안 된다. 다만 아이가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를 육군으로 군대에 보낸 다른 엄마들 앞에서 한다면 어떨까? 겉으로는 ‘그래도 군대인데 힘들지’라고 이야기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진심으로 공감해 주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 애는 더 힘들었는데, 애를 보내놓고 얼마나 애간장이 끓었는데 내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지’라는 억울한 감정,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하기 싫은 감정들이 생겨날 것이다.


나의 힘듦도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의 불만토로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다. 누군가의 투정이 배부른 투정같이 느껴지고 너보다 더하지만 가만히 있는 자신이 억울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렇게 아는데도 친한 사람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불평불만이 새어 나오고 만다. 애써 억누르고 있던 불만들이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올라오면 쓰레기 쏟아붓듯 쏟아져 나온다. 그러고 후회하기를 아직도 하고 있지만 맨 정신일 때는 한 줄기 의지로 힘겹게 부여잡고 있다. 그렇게 위태롭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기에 주변인들의 불평불만과 아프다는 징징거림이 듣기 싫은가 보다.


이번 갱년기의 위기가 지나가고 나이 먹은 몸과 마음에 적응하는 때가 오면 남들의 부정적 말들에도 초연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이 들수록 여유롭고 너그러워지는 게 아니라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 같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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