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것들을 깨닫는다. 난 아직 응용력이 없어서 사진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그린다. 굳이 그리지 않아도 될 것들도 다 그리는 이유는 그 공간을 달리 채우거나 과감하게 여백으로 비워둘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부분만 깔끔하게그리고 싶은데 아직 그게 안 된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 <에브리 데이 히어로>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봤다. “사실 걸작을 만들어내는 데는 여러 면에서 모든 걸 담기보다 덜어내는 배짱이 있는가가 훨씬 중요하다. 무언가를 단순하게 보이게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진정한 전문성의 척도는 중요한 것만 빼고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본질적인 것만 남기려면 대단한 안목과 지식, 용기,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간결해 보이는 작품을 만들려면 보통 수 십 년에 걸쳐 매일 연습하고 꾸준히 훈련해야 한다. 창작자가 작품에 넣는 것보다 넣지 않기로 한 것이 진정한 예술성을 창조하는 데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교들을 정말 잘 알 때 사소한 것과 피상적인 것들을 전부 배제하고 가장 중요한 것들에만 전념할 수 있다. 이것이 자신의 일과 관련이 없는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편이 좋은 이유다.”
20년 이상을 해야 버릴 것과 남길 것을 판단하는 통찰력이 생겨 단순화할 수 있다는 글도 어디선가 봤다. 자신의 방식대로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이런 과정을 무수히 되풀이하고 난 뒤에 도달하는 경지였다.
사람들이 단순한 그림을 보고 ‘저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 ‘애가 그린 거 같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과정을 볼 줄 모른 채 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도 그림을 그리기 전에는 그런 말들을 했던 거 같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그 경지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게 됐다. 그렇게 단순한 색과 선으로 표현할 수 있는 상상력과 표현력, 본질을 알아보는 통찰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흐리게 표현할 곳과 강조할 곳을 구별하는 능력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20년을 그리면 76세가 된다. 그때가 되면 나만의 풍이 생기고 단순하면서도 울림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될까? 그런 각오로 매일매일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야겠다. 달리 할 일도 없으니 말이다.
집에 피카소의 그림이 있다. 아이가 그린 거 같은 천진한 느낌이 좋아 걸어두었다. 그 그림을 보면서 정말 나도 그리겠다고 생각하며 비슷하게 그려봤지만 그런 천진한 느낌이 나는 게 아니라 조잡하고 어설펐다.
피카소에 대해 찾아보니 그의 초창기 그림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정교했다. 어릴 때에는 사진 같은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현실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표현하는 긴 과정을 거친 후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낸 거였다.
옷이나 물건의 수가 단순해지는 과정도 비슷한 거 같다. 옷도 이것저것 많이 입어보고 사보고 나서야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좋아하는 풍을 찾을 수 있다. 이십 대 때 학교 앞에서 파는 싸구려 옷들을 많이 사 입었다. 지금 아이들이 인터넷 쇼핑으로 디자인만 예쁜 만듦새나 재질은 조악한 옷들을 사서 한 철 입고 버리는 거 같은 일을 나도 오래도록 했다.
누군가 입은 모습이 예뻐 보이면 나에게 어울리는지는 생각지 않고 산 옷들, 윈도 쇼핑하다 충동적으로 산 옷, 홈쇼핑에서 또 충동적으로 산 옷들, 정말 아이들에게 뭐라고 할 자격도 없이 나도 그런 시행착오를 많이 해왔고 지금도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많은 경험과 데이터가 쌓이고 나서야 내 취향을 확고하게 알고 나에게 맞는 색과 디자인의 옷을 잘 선택하게 되었다. 돈을 좀 들여 사야 할 옷과 스파 브랜드에서 소모용으로 사도 되는 옷의 종류를 알게 됐다. 그리고 어느 브랜드의 어떤 옷이 나에게 잘 맞는지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나에게는 별로인지도 알게 됐다.
나의 취향과 관심 있는 브랜드의 장단점을 어느 정도 알게 되자 쇼핑도 쉬워지고 옷장이 단출해졌다. 남들이 보기엔 철마다 옷을 사서 옷장이 터져나갈 것처럼 보이겠지만 의외로 내 옷장은 단출하다. 안방 붙박이 장 두 칸과 정리박스 두 개에 사계절 옷이 다 정리되어 있다.
원칙은 2, 3년간 입지 않고 넘어간 옷은 아무리 좋고 비싼 옷이라도 처분한다는 것이다. 산 가격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어 봤자 옷 정리할 때마다 내적갈등과 죄책감만 자극하기에 과감히 버리고 고민을 끝내기로 한 것이다.
정리를 하기 위해서는 그런 과감함이 필요하다. 처음엔 줄 사람이 없을까 고민하고 당근에 팔기도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정리가 지지부진해지고 그런 일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들었다. 이제는 과감히 버리고 그 물건에 대해 잊는다.
대신 새 옷과 물건을 살 때 좀 더 신중하게 선택하게 되었다. 비싸게 주고 샀는데 잘 활용하지 못한 물건과 옷을 버릴 때의 고통을 떠올리면 선택이 조금 쉬워진다.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나의 체형과 사이즈에 어울리는 옷이 뭔지 알게 돼서 옷이 아무리 예쁘고 같이 간 친구가 사라고 부추겨도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다.
그 결과 계절마다 꺼내 입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옷이 점점 많아지고 죄책감을 유발하는 충동 구매한 옷은 점점 줄어들었다.
옷이나 물건에서도 단순함으로 가기까지는 경험과 노력과 비용이 든다. 사실 단순함이 가장 높은 경지였다. 그림도 글도 사람까지도.
경험이 많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은 입이 무겁다. 책을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자신만의 통찰력을 갖춘 사람은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어설피 아는 사람이 자신이 아는 한 줌의 지식을 드러내고 싶어하는거 같다. 내가 정말 반성해야할 부분이다.
주변의 물건과 옷의 가짓수를 줄이고 말수를 줄일 수 있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경험과 노력과 비용이 드는 거였다. 자기 전 이불을 걷어차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과 부끄러움을 겪어야 말수를 줄일 수 있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싸구려 옷들을 버리면서 남편에 대한 미안함으로 죄책감을 느끼는 수많은 순간들을 지나고 나서야 겨우 단순함의 언저리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단순한 생활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그림조차 단순하게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