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면 좀 힘든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조금 남았다. 어떤 이유에서든 내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 잠시 틈을 내어 마음을 다잡고, ‘입을 다물자, 대응하지 말자’라는 말을 계속 묵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만나는 내내 불평불만을 쏟아 내거나 자랑을 일삼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많이 힘들었다. 아직도 힘든 건 사실이다. 부정적 말들을 들을 때 에너지가 가장 많이 소진된다고 한다. 한 번의 부정적 말을 희석시키지 위해선 좋은 말을 열 번 이상 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런 말들을 몇 시간이고 들을 때면 아무리 ‘흘려듣자, 신경 쓰지 말자’ 해도 신경이 쓰이고 기운이 빠지는 게 사실이다.
집에 와서까지 그 말들이 계속 떠오르고 ‘이러면 될 텐데, 저러면 좀 나을 텐데’ 하며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생각하며 반복해서 에너지를 소진시키곤 했다.
그들은 해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찌꺼기를 어떻게든 떠넘기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새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 문제로 꽤 오랜 시간 고민하면서 책도 읽어보고 ‘그냥 넘기고 친절하게 한 두 마디만 건네자, 집에 와서는 잊자’라고 만나기 전부터 여러 번 다짐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러 나가기 전에 가벼운 기대감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그 말들을 얼마나 잘 넘기는지, 내 감정에 영향을 받지 않는지 실험해보고 싶어서다.
사람들의 거슬리는 말을 어른스럽게 잘 넘기거나 그저 공감만을 해 줄 수 있는지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을 바꿨다. 그 순간을 잘 넘기거나 성숙하게 공감해 준 날은 기분이 좋다. ‘내가 잘 해냈다. 그런 말에 전처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잘 두고 봤구나’ 하며 스스로 대견해하기도 한다.
많은 책이나 유튜브에서 에너지 뱀파이어는 거리를 두거나 손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하거나 상처를 주는 게 아니라면 손절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의 현실이 고통스럽기에 저절로 하소연이 나오고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거라는 걸 알기에 안쓰러운 마음과 좋았던 시절의 추억이 있기에 단칼에 손절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생각해 낸 해결책 중 하나가 그런 말들에 거리를 두고 가만히 들어만 줄 수 있는지, 친절한 공감의 말만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볼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거다. 착한 척해서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보려고 한다.
성공할 때가 많아질수록 자아상이 좋아진다. 나 자신을 점점 더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유로움이 생겨난다. 남을 통제하려 하고 그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설득하고 충고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신감과 자유로움이 생겨났다.
남은 바꿀 수 없다. 몇 마디 말에 바뀔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불평불만을 쏟아내지는 않을 것이다. 나 자신만 봐도 그토록 고치고 싶었어도 나쁜 습관을 고치는데 일생이 걸리는 느낌이다.
타인의 맘에 들지 않는 말과 행동에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반응하지 않아야 한다. 거기에 내가 힘들지 않아야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오랜 시간 고통받았고 힘들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수많은 책을 읽고 아침마다 그 마음을 묵상하고 다짐까지 하고 나서야 잘 넘기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다. 타인을 통제할 수 없음을 기억하고 나 자신의 말과 행동을 원하는 대로 통제하는 일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잘 된 날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올라간다. 강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된 거 같아 기분이 좋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지 전에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진심 어린 위로만 건네자. “네가 그랬어야지, 거봐 내가 뭐라고 했어.” 이런 말은 금지다. “힘들었겠다. 건강이 우선이니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봐” 이런 말들만 건네자 라는 다짐을 해본다.
남에게 조금 더 친절하고 화가 나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지혜롭게 넘긴 날 내가 조금 더 사랑스러워진다. 남에게 잘 보이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게 아니라 내가 이런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나를 더 크게 변화시킨다.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든가, 나쁜 사람으로 보일까 봐 라는 생각에서 나온 위선적 행동을 나는 알기에 자아상이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말 위선적이고 찌질하구나’ 라는 생각에 수치심만 심해졌다.
내가 원하는 사람을 지향하며 매 순간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를 볼 때 가장 기분 좋은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내가 이제 저 정도의 말은 그냥 넘길 수 있구나, 힘들었지만 내 잘못을 반성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했구나. 잘했어. 성숙해졌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받는 칭찬이 나를 더 크게 변화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