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운세 보셨나요?

by 박수종

2026년이 시작된 지도 벌써 18일이 지났다. 월초에 여행 한 번 다녀왔더니 벌써 중순이 되었다. 아직 신년 다짐도, 계획도 세우지 못했는데 세월은 잘도 간다. 예전 같았으면 신년운세를 보러 가기도 했을 것이다. 아니 내가 보러 가지는 못했고 친정엄마가 늘 가시는 옥이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을 것이다.

친정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옥이엄마라는 분께 점을 보러 가시곤 했다. 내가 결혼할 때 궁합도 보았고 남편이 직장을 자주 옮겨 다녀 걱정할 때도 물어봐주셨다.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답답한 일이 생기면 점을 보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그 생각이 바뀌게 된 건 큰 아이 중 3 때 아주 용하다는 무당에게 다녀온 후였다. 그 이후엔 단 한 번도 점을 보지 않았다. 큰 애 고등학교 입시 문제로 아이 친구엄마들과 같이 점을 보러 갔다. 자사고에 보낼지, 일반고에 보낼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원하는 자시고는 기본 조건만 맞추면 추첨으로 선발하는 곳이라 운에 많이 좌우되는지라 과연 붙을지 이후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지가 궁금했다.


기가 쎄 보이는 무서운 얼굴과 거친 목소리로 거침없이 말하는 무당이었다. 사주로 보는 곳이 아니라 신내림을 받은 무당으로 그 기운이 나를 압도하는 듯했다. 나는 그의 외모에서부터 주눅이 들고 무서웠다. 내 차례가 되어 아이의 생년월일을 말하고 궁금한 걸 물었다.


자사고에 붙을 것이고 잘할 거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보고 “힘들어서 어떻게 살았니? 이렇게 몸이 안 좋은데 힘들지 않았어?” 하며 천만 원을 들여 치성을 들여야 한다며 겁을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무서워서 정말 그렇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다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다시 오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같이 간 엄마들은 00 엄마가 순진하고 겁도 많아 보이니까 그러는 거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 말은 지금까지 서늘하게 남아있다. 내가 큰 병이 있는 건 아닐까, 뭐가 많이 안 좋은가 라는 걱정을 오랫동안 했었다.


그 무당이 장담한 것과는 달리 아이는 자사고에 떨어졌고 일반고에 갔다. 그 자사고는 경쟁이 치열한 여고로 입시 결과는 좋았지만 아이들이 중도에 학교에 옮기는 일이 자주 일어날 만큼 스트레스받는 환경이었다. 만약 그 점쟁이 말대로 아이가 그 학교에 다녔더라면 아이 성격상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학구열이 조금 떨어지는 학교에 배정되었는데 편해서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했다고 지금도 이야기한다.


아이는 학군지에 있는 학구열이 정점에 달해있던 중학교에 다니면서 많이 힘들어했다. 누구 보다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었는데 그 중학교에 다니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지고 힘들어했다. 그런 상태였음에도 아이를 더 살펴보고 안아주지 못하고 엄마들과 휩쓸려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는 고등학교를 알아보러 다니고 또 그걸 물어보러 점쟁이에게 갔던 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도 바보 같은 나쁜 엄마였다. 아이의 상태를 더 살피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결정했어야 하는 문제를 바깥의 소리들에 휘둘리고 있었다. 아이의 말을 경청하고, 아이를 더 잘 알았더라면 그런 고민은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이미 그때부터 결심이 확고했다. 내가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거일지도 모른다. 저렇게 이야기해도 좋은 대학에 가면 글쓰기는 그냥 취미로 하고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직업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욕심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 후 15년이 지났지만 그 무당이 말한 것 같은 일은 내 몸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나약하고 겁 많아 보이는 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한 것이다.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점을 보러 가지 않았다. 주변에는 점을 좋아하고 자주 보는 사람들이 있다. 큰 애가 시나리오 작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했을 때 점을 보라고 했다. 나중에 성공하는지 한 번 보라는 거였다.


아이는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기로 굳은 결심을 한 상태인데 점을 봤는데 이 길이 아니다, 성공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쩔 건가? 그 이야기를 아이에게 할 수도 없고 내가 알고 있기도 고통스럽기만 하지 않을까? 점쟁이의 말 한마디에 아이의 평생의 꿈을 포기시키는 게 옳은가? 사주 상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내 딸같이 굳은 결심을 하고 매일 쉬지 않고 글을 쓰는데 하늘도 감탄하고 길을 내주지 않을까?


우리 아이같이 자신을 잘 알고 결심이 확고한 사람들은 점을 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에 자신의 결심을 포기하지 않을 만큼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을 잘 아는 사람에게는 필요 없는 일이다.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듯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다짐과 말, 그리고 행동을 계속하면 운명의 힘이 약했더라도 서서히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나쁜 말을 듣는다면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괜히 의식하게 되고 결국 그런 나쁜 결과를 마주하게 될 확률이 커질 것이다.


사람의 사주나 운명, 이런 것들이 완전히 아무것도 아니고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사람에게 유전적 요인이 정말 중요하듯이 어떤 주어지 운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유전적 요인도 그 사람의 유전적 바운더리 내에서 어떤 부모나 환경, 교육을 받느냐에 따라 자신의 유전적 조건 내에서 최상의 결과를 낼 수도 있고 최악의 삶을 살 수도 있다. 그처럼 어떤 사주나 운명을 타고났더라도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최대한 운을 이끌어낼 수도 있고 그냥 자포자기해서 운명을 탓하고, 주변을 탓하며 수동적 삶을 살 수도 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점쟁이에게서 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는 마음을 움직이는 책 한 권 더 읽고, 위대한 역사 속 스승들의 가르침에서 나의 영혼을 움직이는 것을 찾아보는 것이 나의 운명에 더 바람직하다. 그렇게 끊임없이 나에게 맞는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며 좋은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좋은 운명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안 좋은 사주나 올해의 운세를 보고 걱정할 시간에 내가 오늘 읽을 책을 찾아보고 필사 한 장 더 하고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좋은 재료를 사고, 나가서 잠시라도 걷고, 남들의 기를 살려주는 사랑의 말을 건네는 생활이 나의 운명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줄 것이라 믿는다.


그런 시간들이 모여 내 운명의 최대치를 살게 해 줄 것이고 나의 미래가 될 것이다. 미리 두려워하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며 앉아있는 것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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