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가만히 앉아있거나 자려고 누웠다가, 길을 걷다가도 쓰고 싶은 것이 떠올라 메모지에 알아볼 수 없는 글씨로 써 내려간 적이 많았다. 그렇게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들이 흘러넘쳐 그걸 다 받아 적기 힘든 행복한 시기가 있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글 쓰는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었다. 오랜 시간 마음에 묻어두었던 것들이 글로 표현되어 나갈 때의 기쁨은 살면서 처음 느껴본 기분이었다.
오늘도 글을 쓰고 싶어 끄적이다 보니 여전히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이는 것은 어릴 적 듣던 음악이나 책이야기이다. 처음으로 내 마음에 들어왔던 음악, 영화,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늘 비슷한 듯 새롭게 떠오른다.
나를 만들고 내 세상이 되어 준 것의 이야기는 늘 하고 싶다. 너무 세속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될 때, 상처받고 힘들 때, 언제든 그곳에서 쉬고 나면 나의 본모습으로 돌아가게 해준다.
10대나 20대 때 좋아했고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음악 리스트와 책 리스트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게 뭔지 정말 궁금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요즘 듣는 음악이 뭐야? 어떤 책 좋아해? 무슨 영화 좋아해? 어떤 장면이 좋았어?” 늘 이런 질문들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3, 40대가 되면서 그런 질문이 너무 오글거리는 유치한 질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 과잉처럼 보이는 모습은 감추고 그냥 예의 바르고 책임감 있는 사무적 모습만을 보이는 게 사회적으로 유리하다는 걸 조금씩 깨달아갔다.
아이들 엄마, 며느리, 하나밖에 없는 딸, 아내, 선생이라는 사회적 이름에 정체성 대부분을 내어주고 나의 본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나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은 어릴 적 듣던 음악을 가끔 들을 때와 좋아하던 책의 몇 장을 펼쳐 들 때 뿐이었다.
요즘 무슨 음악을 듣느냐는 질문을 삼킨 채 많은 시간이 흘렀다. 50대가 되어서야 어릴 때 듣던 음악을 자주 찾아 듣는다. 요즘엔 015B의 노래를 다시 듣고 있다. 20대 때 배경음악처럼 늘 틀어놓고 많이 들었었는데 결혼과 출산 후 다 잊고 지냈다.
그 당시 많이 듣던 1~3집은 가끔 듣기도 했지만 그 이후 앨범은 자세히 들어보지 못했다. 혹시 최근에도 앨범을 내고 있는지 검색해 봤는데 2025년에도 새 앨범이 나와 있었다. 예전 곡들을 새로운 가수들이 부른 최근 버전을 계속 내고 있었다.
그 당시 자세히 듣지 못해서 최근에 새로 발매된 곡인 줄 알았던 <세월의 흔적 다 버리고>와 <너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찾아냈다. 4집과 5집에 있던 곡이었다. 015B의 노래는 여전히 좋았다. 혼자 버스 타고 종점까지 가거나 걸어 다니며 듣고 싶을 정도로 좋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잘 꺼내지 못한다. 10, 20대 때처럼 이런 마음을 공감해 주는 사람도 드물고 그런 시큰둥한 반응을 보면 내 소중한 것이 평가 절하당하는 기분이 들어서다. 그래도 그 노래를 들을 때의 신나고 아련히 기분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여기에 써본다.
015B의 대부분의 곡을 만든 정석원은 나와 동시대 사람이라 그런지 가사 하나하나 다 공감이 가고 20대 그 시절로 순식간에 데려간다. 내가 잘 듣지 못했던 1993, 4년에 나온 곡들의 가사는 다 헤어진 연인들을 못 잊어 내세에서 그 모습 그대로 만나자, 헤어졌지만 그래도 추억이 있어 행복하다 같은 내용인데 그런 절절한 연애는 못했음에도 아련해진다.
노래를 듣고 그 당시의 사진을 찾아봤다. 지금 둘째 아이 나이대의 남편과 나의 앳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했다. 이런 얼굴로 연애를 하고 31년째 살고 있다. 지금 아이들이 느낄 감정을 우리도 느꼈고 지금도 그 감정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국민학교 때부터 들었던 팝송들, 신해철, 동물원, 들국화의 노래들과, 비인 소년 합창단이 부르는 성가들 같이 자의식이 생기기 시작할 때 접했던 음악들은 몇 백번 몇 천 번을 들어도 똑같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그 당시와 같은 전율이 인다. 날아라 병아리는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고 어느 옷가게에서 나오던 I’m gonna miss you 뮤직비디오를 보던 절망적인 상황의 내 모습과 어느 날 햇살이 기분 좋게 비춰선지 거실에서 흘러나오던 I can see clearly now에 행복해하던 어렸던 내가 떠오른다.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이 너무 좋아서 조금 친해지고 있던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들어보라고 했던 기억도 난다. 그래서 그 곡을 들으면 지금은 만나지 않는 그 친구가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직도 듣고 있는 오래전 음악들에는 동시에 떠오르는 그 시절의 내 모습과 상황이 카펫 무늬처럼 짜여 있다.
그 당시에는 매일 그런 감정들의 무늬를 새롭게 짜고 있었다. 어떤 무늬가 되었는지 이제야 전체적으로 보인다. 그 아름다운 무늬의 이야기들이 바로 나였다. 영화 속 주인공의 한 표정을 떠올리며 몇 날 며칠 잠을 설치기도 하고 책 속 한 문구, 한 에피소드에 반해 그 작가의 책을 모조리 찾아 읽으며 그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의 순수한 시대가 그 카펫 속에 촘촘히 박혀있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청춘에 그런 순간들이 수없이 많다는 게 너무 다행이고 행복하다. 그 세계를 잠시 밀쳐두고 어른 행세를 하며 살아갈 때는 늘 공허하고 불안했다. 그 세계는 이제 지나갔고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 어디 내놓지도 못할 시시한 거는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불행했었다.
잠깐씩 그 세계의 문을 열어봤지만 세상의 잣대로 재단하기 시작한 나에게는 먼지 쌓인 초라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더 절망스러웠고 내 손으로 그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그렇게 쿨한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나와 맞지 않는 것을 추구하며 오랫동안 살았다.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어린 시절에 듣던 음악과 책 리스트, 영화리스트는 시시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나의 무드를 형성하고 나의 세상을 채워주고 있었다.
현실적 성공과 비싸고 가치 있다는 물건들을 모아두는 것 못지않게 아니 더 중요한 자산이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면 “요즘 무슨 음악 들어?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뭐야?”라고 다시 묻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