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도 매일매일 힘든 순간들을 이겨내고 운동을 해야 하듯이 나의 사고패턴을 바꾸기 위해서도 단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의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니스 케플런의 < 감사하면 달라지는 것들 >이라는 책에서 ‘감사를 느끼려면 감정적으로 적극적인 관여가 필요하다. 자동으로 감사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감정을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좋은 시기에도 어려운 시기에도 지속하는 내면의 충일감이 형성된다’라는 이야기를 봤다.
황현산 트위터 글 중에 마음에 남았던 글도 생각난다. ‘명랑하기는 성격만으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명랑하기는 윤리이기도 할 것이다. 늘 희망을 가지려고 애쓰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명랑할 수 있지 않을까?’
명랑하다는 것은 계속 그 기분을 유지하기 위해 사고의 회로를 다잡고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단련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그냥 타고난 성격만이 아니었다.
갱년기에 접어들면서 자주 우울해지고 세상이 허무하고 텅 빈 느낌에 자주 사로잡혔다. 아이들은 자신의 세계가 생겨 다 떠나가고 남편은 직업적으로 가장 활발한 시기를 살고 있는 듯 바쁘다. 나만 빈껍데기만 남은 채 텅 빈 사막에 버려진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 생각들로만 나를 채워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럴 때 이 글들을 보게 되었다. 내가 나의 생각과 명랑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너무 신선했다. 몸의 근육을 만들 때도 처음엔 힘들지만 어느 정도 근육이 붙게 되면 100계단쯤은 가뿐히 올라갈 수 있다. 마음의 근육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이런 공허함의 우물에 자주 빠지지만 단련할수록 그 횟수가 줄어들게 되고 조금씩 살만한 느낌이 들었다.
외부에서 날 기분 좋게 할 일이 저절로 일어나기만을 기다려서는 영영 그런 순간은 오지 않는다. 아니 올 때도 있었지만 너무 찰나였고 희귀했다. 그리고 역시 허망했다. 또 그다음이 계속 나타기를 기다리는 영원히 이길 수 없는 게임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부정적 생각은 너무도 자주 불쑥불쑥 올라온다. 그 생각에 깊이깊이 빠지는 일은 중독적이고 자극적이라 내가 떼어놓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벗어나기 쉽지 않다. 그때 얼른 자각하고 그 생각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것, 그것이 나에게 큰 도약이었다. “이제 그만하자” “이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잖아”하고 말을 거는 듯하다. 누군가에게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도 그 마음에 말을 걸어주는 내가 나타났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이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내가 늘 생각했던 뇌의 회로가 바뀌고 무의식이 바뀌고 있는 느낌이 든다. 영유아기에 잘못 방향 지어진 삶의 방식을 부수고 책 속의 훌륭한 저자들의 사랑과 용기와 지혜에 가득 찬 말들을 나에게 소나기 퍼붓듯이 퍼붓는다. 그 모든 좋은 것으로 내 무의식을 다시 쌓아나갈 수 있도록...
그랬더니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이다. 날 바라볼 수 있고 한 숨 쉬고 감정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