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적인 사람과 뉴스에서 멀어지기
한동안 잠을 잘 잤었는데 요즘은 하루 걸러 새벽 3~4시까지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아침 8시면 눈이 떠진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보다. 잠을 못 잔 날은 하루 종일 정신이 멍하고 기분이 나쁘다. 그렇다 보니 무기력하게 앉아 TV채널만 돌리고 인터넷에서 길을 잃다 하루가 다 가곤 한다.
앞으로도 잠을 잘 못 자는 날이 많을 텐데 귀중한 시간을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탕진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핸드폰으로 부정적인 뉴스나 자극적인 소식들로 자꾸자꾸 파고들어 가는 나를 발견했다. 알고리즘 때문에 우연히 한 번 본 비슷한 영상이나 피드가 좀비처럼 계속 뜬다. 멍하게 보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그렇게 최근에 앱스타인 관련 이야기, AI가 대부분의 직업을 집어삼킬 거라는 이야기, 설 명절이 가까워서인지 사주나 신년운세 이야기가 자꾸 뜬다. 그림 때문에 인스타그램과 스레드를 시작했더니 이렇게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오늘도 또 잠을 못 잤다. 설날이라 시급을 많이 준다며 일찍 알바 나가는 둘째 떡국 끓여주고 남편과 나도 한 그릇씩 먹고 몸이 안 좋다는 남편과 딸을 놔두고 혼자 나왔다.
오늘은 새로 생긴 스타벅스의 좋은 자리가 여기저기 비어있다. 평소에 앉고 싶던 글쓰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은은한 불빛의 실내를 둘러보니 피곤이 싹 가시고 기분이 좋아진다.
나오려고 썬 크림을 바르는 순간에도 정말 피곤하고 우울했는데 그 기분을 슬며시 밀쳐두고 몸을 빠르게 움직여 가방을 메고 음악을 들으며 걷다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설날부터 축 쳐져있기 싫어 힘을 낸 보람이 있다.
잠을 못 잔 그저께에도 타사 튜터 전시회에 다녀왔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을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4~5명 밖에 없어서 쾌적하고 편안하게 관람하고 왔다.
그림 한 점 한 점 모두 소란스럽지 않지만 가득 찬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과 반려동물, 자연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고 자신이 좋아하는 걸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 보였다.
사랑하는 자녀들과 반려 동물들, 늘 사용하는 주방도구와 물건들, 30년을 가꾸었다는 정원 등 그림 속에 그녀의 삶이 보였다. 이미 가진 것을 소중하게 아끼고 아름답게 바라보고 빛을 내주는 일상을 살다 보니 그녀의 삶 자체가 빛나게 된 것 같다.
90세의 늙은 모습도 편안하고 좋아 보였다. 노동으로 단련된 말랐지만 강단 있고 꼿꼿한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차를 마시며 자신의 손으로 가꾼 정원과 하늘을 바라보는 총기를 잃지 않은 맑은 눈동자가 계속 생각난다.
내가 늘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의 대가를 만나고 온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주식이 상승장인데 주식 한 장 없다고 박탈감 느낀다는 하소연, 누군가 내가 사지 못한 좋은 집을 사서 질투심이 든다는 한숨, 돈이 휴지조각이 되기 전에 뭔가를 해야 된다고 조장하고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는 인터넷과 주변의 소음들이 갑자기 노이즈 캔슬링으로 차단된 듯 느껴졌다.
부정적이고 한숨 나게 하는 말을 쏟아내는 사람들과 세상에서 멀어져 나에게 좋은 것을 자꾸 공급해야 함을 느낀다. 무기력하게 잠시 자신을 내려놓는 순간 수많은 것들이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인터넷과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 말, 말, 말들이 날 집어삼킬 것 같다. 날 이리저리 끌어당겼다, 내동댕이쳤다, 휘두른다.
내가 나를 잃었을 때는 휘둘릴 수밖에 없다. 이렇게 가만히 있는 내가 바보 같고 손해 보는 거 같고 낙오되는 거 같은 불안감에 휘둘린다. 그건 다 가짜 소린데, 나를 파괴하는 소음인데 그걸 판가름할 이성이 작동조차 하지 않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불안이 쌓이면 그것은 결국 주변에 흩뿌리게 된다. 그 불안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꿎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공유한다.
요즘 문과생은 아무도 안 뽑는대, 신입직원을 아예 안 뽑는대, 알바 자리가 없대, 회계사나 변호사도 벌써 AI에 대체되고 있대, 가만히 있으면 벼락 거지된대, 돈이 휴지조각이 된대,... 한도 끝도 없는 이런 말들을 나도 되풀이할 필요가 있을까?
부모라면, 아니 나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검증되지 않은 소음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 나와 자식들에게. 변치 않는 지지와 사랑을 주고 자신만의 길을 찾는 법에 대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저런 말들은 누구나 다 안다. 이미 알고 있는 불안을 조장하는 말들을 굳이 부모가 또 불안에 들떠서 전달할 필요는 없다. 부모 자신과 아이 모두를 위해
그런 상황임에도 기껏 힘을 내서 뭔가를 해보려는 아이들의 사기를 저하시켜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그 정보를 아이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해서 전달하는 걸까?
오히려 책에서 읽은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뭔가 새로운 길이 나올 거라고 역사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고 힘을 주는 말을 들려주는 게 낫지 않을까?
“ 다빈치의 노트 중 하나에는 그가 어렵게 이해한 물의 흐름과 관련된 물리적 원칙 730가지가 쓰여 있다. 또 다른 페이지에는 원과 똑같은 면적의 사각형을 그리려고 169번 시도한 흔적이 있다.” 이런 에피소드를 들려주곤 한다.
이 무용해 보이는 일들이 결국은 그의 인생이 됐고 업적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당장 무용해 보이고 손해 보는 일 같아도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일을 하다 보면 길은 언제든 생긴다고 역사가 알려주고 있다고.
지금 당장은 답이 없어 보이고 무의미한 일 같지만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는 치열한 시간과 실패는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나이가 되었다. 대학 학과의 인기순위가 이렇게 빠르게 바뀌고 수백, 수 천 개의 직업이 사라지는 지금 그 누가 유망한 직업을 정확하게 추측할 수 있을까?
부모라면 그런 말들에 휘둘려 아이들에게 감정쓰레기를 투척하지 말고 책을 읽으며 자신의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인생에서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생각하고 내 마음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일부터 해야 한다.
인생은 뭔가 심각하고 중요한 것으로만 굴러가는 게 아니었다. 타사 튜터의 그림을 보고 다시 한번 느꼈듯이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사랑스럽게 봐주고 쓰다듬어주는 것, 작고 따뜻한 순간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자꾸 잊는다. 특히 그런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말들에 휩쓸릴 때 그렇다.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는 책으로 돌아가 다시 날 납득시키고 그 아름다움 속에 가만히 있어보곤 한다.
그런 교과서적인 이야기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삶에 녹일 수 있기 위해서 계속 마음을 살핀다. 더 많이 실행할수록 시도할수록 그런 순간들이 늘어난다.
마음이 불안으로 달려가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방향을 조금씩 바꿔나갈 때 삶은 충만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이런 글이라도 쓰는 시간을 많이 낼수록 인생이 충만해진다. 그날그날 좋아하는 일, 목표에 다가가는 한 걸음을 내딛는 길에 꽃 잎 뿌려주는 일 정도가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직접 걸어가야 하는 사람은 본인뿐이다. 정보를 모아다주고 ‘이렇대 저렇대’라는 소문을 덧붙이는 일은 그만두어야 한다.
따뜻한 순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름다운 이야기를 모으고 사랑스러운 그림을 보고 책을 읽는다. 내가 먼저 따뜻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주변에 그 빛을 줄 수 있다. 새해에는 더 빛나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