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레드문을 기다리며

by 박수종

글 쓰고 그림 그리는 행위가 일종의 명상과도 같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명상을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잡념은 더 많이 올라오고 5분이 50분 같이 느껴지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이내 시들어지곤 했다.


이 책의 말이 사실이라면 명상이 뭘 의미하는지 어떤 상태인지 조금 알거 같았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글 쓸 시간을 내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나 자신을 잊고 몰입하는 무해한 충만감 때문이다. 글 쓰고 그림을 그려서 유명해진다거나 뭐가 되려는 목적보다는 내 삶의 시간을 그런 식으로 채우는 게 좋아서다. 명상과도 같은 충만감과 평화로움으로도 충분하다.


언젠가 내 글과 그림이 크게 발전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아서 이런 행복감을 공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기는 한다. 50대 후반의 나이지만 꿈이 있다. 훌륭한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세상이 한 가지 길로만 달려가는 것을 멈추고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 버는 법, 재테크하는 법, 경제적 독립하는 방법 같은 유튜브 방송과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상이지만 난 그 틈에서 작은 목소리라도 내고 싶다.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더 중요한 게 뭔지 가르쳐주는 예술들과 늘 가깝게 있었기에 현실 속에서 나의 자리를 냉혹하게 마주하는 순간에도 그게 진짜 내가 아니라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건 그저 세상의 잣대일 뿐이라는 걸 매일 새롭게 깨닫는다.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하나의 톱니바퀴로 사는 것밖에 모른다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그 세상에서 걸어 나가는 건 나의 노력과 선택이다. 아직도 그렇게 매일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노력은 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Art spirit>이라는 로버트 헨리의 책을 필사하다가 “예술가는 자기 생각을 계발하고 표현하고 창조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목적은 예술품을 만드는 게 아니다. 예술이 저절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경이로운 상태로 이르는 것, 그것이 진짜 목적이다”라는 글을 봤다.


이 작가의 말처럼 Art spirit이라는 게 예술가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거 같다. 예술가가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삶을 음미하며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 저절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경이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 늘 깨어있고 노력해야 한다.


팍팍한 현실을 살지만 ‘모든 인간은 예술가다.’라는 그 정체성을 깨우기만 하면 된다. 시선을 걱정거리들과 어두운 마음에서 외부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어린 시절 추억에서 피어오르는 일상적 장면들, 비 오는 날의 풍경, 창문 밖의 물방울, 보도 위를 굴러가는 나뭇잎. 매일 마시던 커피 잔의 아름다운 곡선 등 찾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경이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우연히 발견한 낡은 사진에서 어릴적 엄마의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던 미싱과 그 옆에서 자투리 천을 조물락거리며 나만의 세상을 만들기 시작하던 기억을 담아 그림을 그릴때 그 추억은 나의 확실한 현실로 남게된다.

밤 8시부터 레드 문을 볼 수 있다는 라디오에서 전하는 소식에 하루 종일 설레는 마음 같은 거, 우연히 올려다본 하늘에 떠 있던 유난히 밝은 별 하나, 친구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발견한 그 별이 집까지 따라왔을 때 반가웠던 기분 같은 거, 스레드에서 발견한 사람 음식이 가득 차려진 식탁을 바라보는 귀엽게 탐욕스러운 고양이의 눈 같은 그런 것들은 내가 찾아낸 생활 속 예술작품이다.

크고 작은 걱정거리들과 성가신 일들이 삶 속에서 멈춘 적은 없다. 그래도 경이로운 순간들을 찾고 그걸 표현할 때 비루한 삶의 시간은 멈추고 진짜 나를 만나게 된다. 나는 그런 찌질한 걱정만 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이 아름다운 세상을 누리고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는 진실에 더 다가서게 된다.


내 삶을 아름답게 살고 가득 채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나에게서 나오는 글과 그림 모든 것에 그 흔적이 묻어나게 하기 위해 더 충실하고 의미 있게 살게 된다.


“나뭇가지는 자신이 뻗어 나온 위대한 조상인 줄기와 맺은 관계를 자랑하지 않는다. 이 명예로운 관계를 빌미로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곧 열매 맺을 붉은 사과를 눈여겨봐 달라고 요청하지도 않는다. 나뭇가지는 자신의 존재 실현이라는 놀이에 완전히 몰입해 있게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장을 완벽하게 성취해서 필연적으로 열매를 맺게 된다.”같은 글이 진실이다.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진짜다.


이런 통찰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갈고닦고 경이로움을 쉬이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열등감과 인정 욕구 같은 부정적 감정을 자극해 물건을 사게 만들고 사람들과 우위를 다투게 만드는 서열게임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진짜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도록 감각을 벼르고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는 삶의 모습은 예술가가 되기 위한 과정과 다르지 않다.

드디어 레드문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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