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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Sep 08. 2022

아티스트 웨이

“ 주위의 강요로 아티스트가 되지 못한 사람, 자신의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하고 자신이 예술적인 꿈을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사람, 그런 사람들이 그림자 아티스트가 된다.”

“ 그림자 아티스트에게 삶이란 잃어버린 목적과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가득 찬 불만스러운 경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자신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자신이 초보자임을 인정하고 기꺼이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됨으로써 진정한 아티스트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줄리아 카메론의 < 아티스트 웨이 > 중에서


이 책은 나에게 그야말로 “도끼”가 되어주었다.

위의 내용들은 내가 그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던 문제를 한 방에 날려주었다. 늘 가슴속에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있었고 예술가들에 대한 동경이 가득했다. 그걸 나 자신은 어떻게 표출해야 할지 몰랐다. 한두 줄 글을 써보고는 역시 글도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였군 이런 생각으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남의 작품을 즐기고 부러워만 하는 삶이었다. 감히 내가 예술가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알려준다. 완벽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말이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다. 정작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단 3일도 계속해보지 않았다. 많은 작가들이 매일매일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몸을 단련한다는 책을 보고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 사람들은 그냥 앉으면 완벽한 글이 단번에 쓰이고 그림을 그리면 완벽한 작품이 매번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런 작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노력하고 몰두했는지는 보지 못했다.


저 한 문장은 나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발견하게 해 주었다. 난 예술가의 삶을 살길 원한다. 그건 내가 대학생 시절에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러나 나에게 능력 없음을 깨닫고 예술만을 즐기는 게으른 삶을 추구하게 만들었다. 예술에 천부적 재능이 없는 사람은 적당한 직업을 갖고 적당히 살면서 혼자 있을 때가 되면 되지 못한 예술가의 삶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을 잘못된 생각으로 탕진했다.

  

이제는 완벽하지 않아도 한 발씩 나아가 보려고 한다. 지금 이런 글을 써보는 것도 그 한 발을 내딛는 중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한다. 매일매일 반복한다. 노력해본다. 살아가면서 나 자신에게 말할 수 있을 만큼 뭔가에 몰두해보고 노력해 본 적이 없다. 운 좋게 적당히 했는데 대학에 갔고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가고 대학 강사가 됐다. 나에게 딱 맞는 직업이었다. 자유롭고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도 의무감에서 했던 거 같다. 아이들을 나 자신보다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못했다. 아이들을 위해 나 자신을 희생한다고 생각했지만 희생하면서까지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막연히 이런 삶은 아닌데 라는 생각으로 늘 불만스러웠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채 힘겹게 남을 쫓아가기 바빴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몰랐으니까. 그냥 하루하루 살아 나가는 게 다였다. 시간이 나면 사람들과 만나 수다 떨고 집에서도 아이들 빨리 재우고 하는 일이 텔레비전 보는 일이 다였다. 그러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더 공허하고 우울해졌다. 못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이라도 해나가는 지금이 좋다.  

   

시간이 나면 필사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이렇게 못 쓰는 글을 쓴다. 이 책에서 모닝 페이지를 하루에 3페이지 이상씩을 매일 써보라고 한다. 그냥 생각하지 말고 쓰라고 한다. 이제 한 달 정도 해오고 있는데  이틀을 쓰고 나니 막막하면서 쓸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쓰다 보니 저자가 왜 무조건 한 번 해보라고 했는지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이렇게  쓰고 있다.

    

뒤를 생각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는 것 같은 옛날 습관을 버리고 그냥 하루하루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놀이를 한다. 어릴 때 놀고 나면 가슴 가득 충만해지고, 실컷 논 뒤에 낮잠을 자는 아이 얼굴에 희미하게 번지는 미소 같은 그런 하루를 보내고 있다. 놀이, 자발적이고 자유롭고 즐거운 것. 그것이다. 예술을 한다는 거는 재능을 타고난 천재만 하는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이 할 수 있는 놀이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 따위가? 내가 감히? 이런 생각 없이 어릴 때 뭐 하고 놀까? 인형 옷을 만들까? 시장 놀이하게 간판을 만들까? 브루마블 없는데 까짓것 내가 만들지 하던 가벼운 마음이 된다. 그리고 무조건 컴퓨터를 열어 쓴다. 노트가 보이면 거기에도 쓴다. 그리고 즐겁다. 행복해진다. 그럼 된 거다. 내 인생이 무의미하고 공허하지 않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비밀이 생긴 듯 혼자서도 행복하다.


주변에도 보면 뒤늦게 자신의 예술가를 발견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예전 옷을 뜯어서 다른 천을 덧대 손바느질로 고친 아이 친구 엄마도 있다. 그 엄마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었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 보였다. 나라면 지겨워서 못할 일을 즐겁게 했으리라. 하나를 하더니 재밌는지 또 고치며 즐거워했다.


또 다른 엄마는 손뜨개질을 배우더니 가방, 컵받침 등 등 여러 가지를 만들었다. 자신이 뜬 가방을 보여주면서 기뻐하는 모습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뭔가를 창작해 내는 기쁨은 해본 사람만 이 안다. 그게 남보기에 별거 아니라도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은 비교불가의 느낌을 선사한다. 그 엄마는 화장품 파우치나 가방 등을 떠서 주변 사람에 선물도 하고 인생의 큰 즐거움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


인생에서 이러한 만족감을 주는 일을 찾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이건 어떤 직업을 갖는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그건 어린 시절 놀이를 하면서 터득한 몰입 경험, 만족감 등을 통해 길러지고 찾아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유아기에 어설픈 학습으로 이런 중요한 인생의 과업을 놓치게 해서는 안 된다. 유아기 아니 아동기까지 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하고 놀이를 통해 작은 성공의 경험을 쌓으면서 한 발씩 나아갈 용기를 배우게 된다. 내가 지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고,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거는 어린 시절 실컷 놀아봤기 때문이다. 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행복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뭔가를 만들고 그 만든 것으로 놀이를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기나긴 겨울 방학 동안 놀아도 놀아도 시간이 남아서 연습장에 소설을 쓰고, 남아도는 작은 수첩에 도라에몽이랑 비슷한 내용의 네 컷 만화를 그려 사촌 동생들에게 보여주었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더 어린 시절에는 하얀 종이만 있으면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동화를 지어냈다. 그 뿌듯함을 잊을 수 없다. 아빠에게 보여드렸더니 남의 작품을 베끼는 것은 나쁜 짓이야 라는 비슷한 말을 들은 뒤로는 동화 만드는 일을 그만뒀지만... 아마 아빠는 자식에게 올바른 도덕관을 가르치는 게 창의력을 키우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이제는 이해한다. 그러나 아쉽기도 하다. 그 결과물에 조금 더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해주셨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내가 이렇게 멀고 먼 길을 돌아오지 않고 그림도 그리고 글을 쓰는 일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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