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부터 모닝 페이지를 쓴다. 정신이 가장 맑은 오전에 펜을 쥐고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거침없이 써나가는 거다. 이런 거까지 써야 할까 라는 고민이 밀려오기도 전에 그냥 써나간다. 그러다 보면 가끔은 깜짝 놀랄만한 나의 생각과 만나기도 하고, 진실되고 좋은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너무 가끔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희귀한 경험이 좋아서 자주 모닝 페이지를 쓰려고 노력한다. 내 안의 잠재력을 믿어보고 헤집어 보는 일이다. 오늘도 모닝페이지를 쓰다 보니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동화나 소설 읽기를 좋아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 계몽사의 100권짜리 세계명작동화 전집이 있었다. 그 전집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 읽은 <어린 왕자>와 <톰소여의 모험>은 재미가 없었다. 오히려 어른이 되어 읽었을 때 훨씬 좋았다.
그전단계의 한국 전래 동화 10권과 세계 전래 동화 10권은 좋아했다. 밥 먹으면서도 보고 맛있는 게 있으면 책을 가져와 보곤 했다. 몇 백번은 읽었던 거 같다. 지금도 그 그림체가 생각난다. 특히 <금방울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그때 봤던 동화책의 그림체와 이야기가 나의 무의식에 깊이 박힌 거 같다. 지금도 가끔 그 이미지들이 떠오르고 그걸 읽고 있던 내 모습이 기억난다. 그게 나의 기억과 섞여 지금의 나를 만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엄마가 세계문학전집을 사주셨다. 그 당시에는 방문판매원이 집집마다돌아다니며 책을 팔러 다니던 시기였는데 어느 날 학교 갔다 와 보니까 그 전집이꽂혀 있었다. 너무 작은 글씨들이 세로로 쓰여 있던 책을 한 동안은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그러다 심심하던 어느 날 한 권을 꺼내 읽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다. 꽤 긴 빽빽한 글씨들이 가득 찬 책을 단숨에 읽었다. 너무 재밌었다. 그다음에는 펄 벅의 <대지>, 서머셋 몸의 <인간의 굴레>, <제인 에어>, <테스> 이런 유명한 책들을 한 권 한 권씩 읽어나갔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그 전집 읽기는 계속되었다. 고 1 때 <수레바퀴 밑>을 읽던 때가 기억난다. 친구와 하일루너가 한스에게 키스한 장면을드라마 본 이야기하듯 흥미진진하게 수다 떨던 기억이 난다. 그 뒤에 헤르만 헤세의 모든 소설을 읽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 사실 그때는 그 심오한 뜻은 이해하지 못한 채 줄거리 위주로 읽었던 거 같다.
그렇게 한 작가가 좋으면 그의 책을 다 찾아 읽어나갔다. 그 책 뒷부분에는 작가의 생애와 사진 등 설명도 자세하게 잘 나와 있었다. 그 전집을 버린 게 지금 너무 후회된다. 지금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 너무 옛날 책이라 정보가 없다. 얼마 전까지 친정집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 정리를 하면서 다 처분했다. 지금 생각하니 후회막심이다. 출판사도 모르겠고 기억이 희미해지는 게 안타깝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책에 너무나 빠져서 시험기간에도 책을 읽었다. 다음날 너무 싫어하던 지리 시험이었는데 도피 겸 <폭풍의 언덕>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난다. 불안에 떨며 히스클리프의 기괴한 사랑이야기를 읽어나갔다. 지리시험에선 최악의 점수를 받았고 지금까지 지리가 싫다.
<장 크리스토프>를 읽고는 너무 좋아서 누가 시키지도 않은 독후감을 쓰기도 하고 3권이나 되는 긴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고 3 때에도 틈틈이 읽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책도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죄와 벌>, <지하생활자의 수기> 등 그 전집에 있던 거는 다 읽었다. 힘든 입시 생활의 도피처였던 거 같다.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고 야간자율학습을 10시까지 하고 오면 텔레비전을 볼 시간도 없었다. 야자를 하고 와서 피곤해 죽겠는데도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조금이라도 읽고 잠들곤 했었다. 대학에 가면 그런 화려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지 라는 기대를 하며...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보다는 <위폐범들>이라는 책을 좋아했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넷플릭스에 나오는 힙한 퇴폐적인 인물들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는 그런 감정으로 소설을 읽었다. 작가들의 심오한 사상이나 인간 군상들에 대한 심리적 분석, 인생에 대한 통찰보다는 수준 높은 순정만화를 보듯 유럽문화에 푹 빠져서 읽었다. 그때부터 프랑스와 독일 같은 유럽에 대한 허황된 동경을 키워나갔고 지금도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의 유럽이 배경인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책을 읽었지만 정신적으로 성숙하거나 문학적 소양이 자라지는 못했다. 내가 입시를 치른 해에 한번 생겼다 사라진 논술시험에 도움을 조금받기는 했다.
대학에 가서도 그런 식의 독서는 계속되었다. 실존주의를 알게 되고 까뮈와 사르트르의 책을 읽고 그렇게 읽어나가다 보니 초현실주의를 만나게 되고 정신분석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게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장 꼭또의 <무서운 아이들>, <사기꾼 또마> 이런 주제도 모호한 책들을 좋아했다. 환상을 쫓고 현실을 도피하는 성향에 잘 어울리는 그런 책들만 읽고 연예인 좋아하듯 좋아했었다. 장 꼭또의 아이가 그린 듯 한 펜화를 좋아해서 흉내 내며 그려보기도 했다. 연예인 덕질 하듯 유럽의 작가들을 덕질하며 보낸 10대, 20대였다.
Moss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쟝 꼭토의 그림
작가가 의도한 심오한 사상이나 시대상 등 중요한 내용은 알아채지 못한 채 피상적으로 책을 읽어왔지만 그 책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의 중심을 뒤흔들 만큼의 변화는 아니지만 나의 취향을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특히 감정이 충만하고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십 대에 읽은 그 책들은 나의 오해든 환상으로 덧붙였든 나의 일부분으로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 책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때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볼까 생각 중이다. 지금 읽으면 그때와는 또 다른 것을 발견하리란 기대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