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을 좋아했었다. 국민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만화책을 좋아한다. 올훼이스의 창, 베르사유의 장미, 슬램덩크, 드래곤볼, 아카시아, 타로 이야기 등등 너무 많아 다 쓰기 어려울 정도다. 대학교 때도 공강 시간이나 수업을 마치면 만화방에 가서 죽치고 앉아 있던 날이 많았다.
어느 날 옛날에 봤던 추억의 순정만화가 생각나 검색해 보았다. 아프리카를 쓴 박희정과 열왕대전기의 이정애 작가를 검색하다가 글을 하나 발견하고 찾아가 읽었는데 그곳이 바로 브런치였다. 그 만화에 대해 쓴 글들이 너무 좋아서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 너무 좋다. 재밌었어.” 밖에 표현하지 못했는데 그 작가는 순정만화에 대해 기대 이상의 글을 써놓았다.
그러고 브런치를 잊고 있었다. 그 후에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다시 일기를 쓰고 글을 조금씩 쓰고 있었다. 책도 계속 열심히 읽고 있었다. 둘째 아이에게 “너도 엄마처럼 다양한 분야의 책도 읽어보고 일기든 메모든 기록을 해봐. 좋아”라고 이야기하자 대학생이지만 뒤늦게 사춘기가 온 것 같은 아들은 약간 반항적으로 그게 무슨 소용이냐 엄마도 맨날 뭐 한다고 하다가 그만두고 결국 텔레비전 보고 놀러 다니지 않느냐 뭐 그런 어조로 이야기했다. 결론은 그래 봤자 어떤 시도도 성취도 없지 않냐는 골자의 이야기였다.
그때 아 내가 그랬구나 아직도 두려움 속에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말 뿐이었구나 나도 못하면서 아이에게 옳은 말만 해 댔구나라는 거를 깨달았다.
뭐라도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브런치 생각이 났다. 정말 즉흥적으로 세 편의 글을 골라서 올리고 응모했다. 결과는 합격! 다음날 오전 11시쯤에 합격 메일이 와 있었다. 그때의 기쁨은 정말 컸다. 난 평생 글을 잘 못 쓴다고 생각했다. 참 신기하게 책을 많이 읽는데도 그만큼 글 쓰는 실력이 늘지 않아 역시 타고나야 하는 거로 군하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
평생 내가 원하는 일을 해서 인정받아 본 적이 없었다. 대학, 직업, 모든 게 주변 상황에 의해 주어졌다. 내 의지는 크게 작용하지 않았다. 내가 유아교육과에 입학할 때 유아교육의 전성기였다. 그 당시에 나보다 조금 윗 선배들은 석사만 해도 4년제 대학 교수가 될 수 있었고 - 물론 성적이 좋고 현장 경험도 있어야 하고 우수한 사람들 위주였지만 - 전문대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도 지금보다 많아서 처음부터 교수를 목표로 우리 과에 입학하는 동기나 후배들이 상당히 많았다. 나도 엄마가 알아보시고 그런 상황이니 가라고 해서 오게 되었다.
유치원 교사를 2년 하고 대학원을 가고 졸업하자마자 서울의 좋은 전문대학의 강사 자리가 주어졌다. 그래서 감사함이 없었고 당연하게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 그 이후에도 대학마다 주간반, 야간반까지 있어서 한번 강의를 가면 6시간에서 야간수업까지 9시간 강의를 할 수 있는 강사의 호시절을 보냈다.
나는 주어진 일은 성실하게 하는 편이다. 그렇게 내 의지가 크게 발휘된 강사일은 아니었지만 3시간짜리 수업 두 강좌를 위해 일주일 내내 준비를 했다. 처음 하는 강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1시간 만에 수업이 끝나 진땀 나는 상황이 일어날게 뻔했다. 그렇게 강의하는 햇수가 5년, 10년 넘어가면서 점점 재미있어졌다. 햇수가 늘어갈수록 교재가 없이도 할 말이 많아지고 여러 과목을 넘나들며 통합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유아교육에 대한 통찰력이 어렴풋이 생겨 강의를 잘한다는 평가를 들었고 학생들이 많이 좋아해 주었다. 그렇게 강의로 인정을 받자 강의하는 일이 좋아졌다. 별로 인정받을 일이 없는 인생이었는데 그나마 조금 인정을 받게 되자 정말 좋아져서 더 열심히 했다.
그러나 브런치 작가에 지원한 일은 달랐다. 내가 주도적으로 글을 썼고 정말 하고 싶던 일이었다. 내가 시도한 일이었다는 점이 달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첫 발을 뗐는데 인정받고 받아들여진 기분이 들어서 정말 기뻤다. 내 인생에 몇 안 되는 주도적으로 시도한 일이었다.
그 뒤에 둘째 아이와 이야기를 하니 이제 내 이야기가 받아들여졌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시도해보라는 것,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저질러 보라는 것.
이제는 수긍하며 알았다고 한다. 아이에게 어떤 일을 해보라고 하고 싶을 때 말은 힘이 가장 약하다.
그 일을 내가 해서 보여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