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좋은 점

by 박수종

글을 쓰면서 허공을 떠도는 쓸데없는 생각들이 많이 사라졌다. 잡생각, 나쁜 생각도 글로 쓰면 사라진다. 글로 써서 그 생각을 들여다봤더니 옅어졌다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내가 단정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글에 치유의 힘이 있다는 게 사실이었다.


내가 가슴에 품고 있던 생각들을 조금씩 풀어내니까 나쁜 건 사라지고 좋은 건 더 반짝반짝 빛내며 나에게 남아있다.


이후의 삶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기대된다. 글쓰기가 나에게 길을 찾아준다. 멋진 길을 가보라고 엉덩이를 살짝 밀어준다. 난 글쓰기 세계에서 아직 어린애라 쭈뼛 거리며 뒤를 돌아보지만 힘을 내본다. 길을 걷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이 길 저 길에서 헤매고 지쳐 쓰러져 흙투성이가 되었는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길을 찾아준다. 삶을 세워준다.

나의 일을 찾는다는 게 이런 건가 보다.


어떤 생각하나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며 잘 짜인 아름다운 직물로 완성시켜 내는 느낌이 좋다. 아직 그런 아름다운 수준의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그런 기대감에 늘 설레 인다. 나도 모르게 글이 막 써지고 때로는 맘에 드는 문장하나를 보게 됐을 때 그 기대감이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오른다. 그걸 찾아다닌다.


내가 계속 생각하는 일들이 글로 써진다. 부모님이 나에게 미친 영향력의 파장이 어디까지 인지, 아이들 키우면서 좋았던 일들, 힘들고 후회됐던 일들, 인간관계에서 알게 된 것들, 걷기, 책 읽기, 멋진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소망 등등 결국 내 속에 늘 들어있던 생각들이 글로 써진다. 필요 없던 생각은 써서 버리고 산만했던 소망이 형태를 갖추고 점점 그 목표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준다.


글로 박제된 내용에 내 인생이 형태를 갖추는 것 같고 어떤 다짐들이 더 책임감 있게 다가온다. 몇 년 전부터 반복적으로 고민하던 문제에서 벗어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글로 씀으로써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 더 이상 그 주제로 쓸 말이 없어질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났고 치유된 것 같다. 나를 자극하고 불필요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하는 사람들과 일에서 벗어난다. 내 감정을 좀 더 잘 다스리게 됐고, 내 잘못을 타인에게 투사하지 않는다. 투사하더라도 알아차리는 횟수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단 며칠도 누구든 만나지 못하면 답답하고 불안하고 쓸쓸했는데 글 쓰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그런 허전함이 많이 사라졌다. 허전함 때문에 술도 자주 마셨는데 그런 횟수가 줄었다.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고 보잘것없게 작아지는 날 글쓰기가 나에게 남아있다는 것이, 나의 세계가 형체를 갖추고 존재한다는 느낌이 위안이 된다. 자신의 명확한 세계가 있는 사람들은 외부에서 어떤 상처를 받거나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스스로 치유할 힘이 생길 것 같다.


그 세계를 더 단단히 만들어 나가보려고 한다. 나의 세계가 없을 때 세상과 사람들에게 의존하게 되고 혼자서 온전히 서기 힘들었던 거 같다. 타인에게 요구사항이 많아지고 서운해지고 자꾸 작아져서 어느 날은 내가 먼지만도 못한 존재인가라고 좌절했었다.


매일매일 벽돌을 쌓듯이 나의 세계를 적어나간다. 열심히 지어서 아늑한 나의 집을 완성해내고 싶다. 어느 날은 희망에 차서 드디어 집이 되었나 싶다가도 또 어느 날은 그게 모래성이었다는 깨달음에 절망하고 무의미의 반복인가 싶지만 다시 힘을 내본다. 그 수고들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벽돌 하나를 들고 어느 부분에 쌓을까 대보기도 하고 망설이며 다시 내려놓기도 하며 그 주위를 서성인다. 자꾸자꾸 쌓아가면 어떤 세계가 만들어질지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기분 좋은 설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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