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개학이다!
코로나 전에는 방학이 있어도 방학의 끝이 있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위로하며 참을 수 있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되고 지금 2023년까지 방학이 계속되는 느낌이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니고 남편도 매일 출근할 때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시간이 있었던 거 같다.
남편과 아이들이 8시 정도에는 모두 나가고 한적한 오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일하러 나가지 않는 날에는 그렇게 한가하고 아름다운 오전 시간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커피 한잔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너무 행복해서 웃음이 나온다'라는 일기를 여러 번 쓴 기억이 난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애들 친구 엄마들과 만나 방학 동안의 돌밥과 아이들 일정에 맞춰야 하는 생활의 힘듦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코로나 이후로 그런 자유가 없어진 느낌이다.
아이들이 대학교에 가고부터는 학교 가는 시간도 제각각이고 시간표를 오후로 짜곤 해서 오전 시간이 늘어지고 애들 밥 챙겨주다 보면 금방 1,2시가 된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수업도 많아서 집에서 듣는 수업이 아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식구 모두가 아침에 쫙 나가는 한적한 시간이 별로 없다.
주부들은 이 심정을 이해할 거라고 생각한다.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전쟁 같은 아침 시간이 지나고 가족들이 다 빠져나간 후의 한적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겨울 방학이 계속 이어지는 거 같은 심정이다. 지금도 공강인 아들은 자고 있고 대학원 마지막 학기라 수업은 거의 없어서 본인의 스케줄에 따라 나가는 시간이 매번 달라지는 딸은 느지막이 일어나 나갔다. 다행히 남편은 새벽같이 나갔다.
코로나로 가족들이 많이 붙어 있다 보니 아이들과 더욱 친밀해진 거는 좋았다. 9월이면 군대에 갈 아이와 대학원 졸업 후 자신의 일을 찾아 바빠질 큰 애를 생각하면 지금의 시간을 즐겨야 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주부의 일생은 참 끝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김혜자 배우님이 연기한 엄마가 혼자 오피스텔을 얻어 집을 나가는 설정에 공감했다. 그때 극 중 엄마가 “내가 밥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이런 대사가 있었다. 내가 딱 그런 기분이다.
결혼생활 30년 가까이 되고 보니 내 식사만이 아니라 늘 누군가의 식사를 신경 써야 하는 티 나지 않는 집안일의 굴레에서 해방되고 싶다. 사실 애들도 다 크고 손 가는 일도 줄고 결혼 후 가장 한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새삼 이런 살림과 밥의 굴레가 답답하게 느껴진다. 너무 오래 해와서 이제 한계에 도달한 건가 보다. 최근 6~7년간은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을 돌보는 일까지 사실 힘든 일들이 많았다. 계속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끝없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시어머님이 뇌종양이셔서 항암치료를 받으시던 때 몸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시면서도 “할아버지 밥 차려야지” 하며 숟가락과 반찬을 챙기시려는 모습을 보고 기가 막혔던 적이 있다. 멀쩡한 아버님은 식탁에 가만히 앉아계시고 그렇게 중병에 걸리신 시어머니는 아픈 몸으로도 편히 식탁에 앉아계시지 못했다.
친정엄마와 같이 살 때 밥을 챙겨드리는데도 혼자 밥 걱정을 하고 내가 차려드리는 밥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으신 것 같았다. 본인이 움직이지 않는데 밥이 차려지는 걸 신기해하셨다. 치매로 많은 걸 잊으셨어도 밥에 대한 생각에선 떠나지 못하 신 거 같았다.
밥 해 먹고 빨래하고 집안 청소하는 것 같은 기본적인 생활을 지혜롭고 단정하게 하는 사람들 블로그나 책을 보고 의미를 가져보려 하고 '생활의 기본부터 정성을 들이고 잘하는 일이 인생의 중요한 일이다'라는 주문을 애써 외워보며 좋아해 보려 했지만 사실 그저 부담스럽기만 하다.
난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이나 읽고 친구들이랑 좋은 곳에 훨훨 놀러 다니고만 싶다. 나는 그냥 간단하게 고기 한 조각이나 김밥 한 줄 사다 먹어도 된다. 식구들에게 가사를 분담시키고 다 큰 애들이니 식사도 알아서 해결하게 하라는 조언을 듣지만 내가 별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쉽지 않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한 일인데 뭐 그리 징징대느냐고 그럼 네가 돈을 벌어오라고 하는 내면의 소리를 아직도 멈추지 못한다. 이제 충분히 했고 내가 밥 안 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도 이런다. 봄이 다가와서 그런지 뭐 하나 걸리는 거 없이 자유롭고 가벼워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