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나보다는 나아졌지만...

by 박수종

예전의 나보다는 조금의 발전이 있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제법 많이 있다. 여전히 못 쓰는 글이지만 어떤 작가님이 달아주신 댓글처럼 맨 처음에 올린 글보다는 나아졌을 거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런 거 같고, 여전히 내 감정의 일렁임에 실언과 실수를 하지만 예전보다는 그 횟수가 줄었고, 가족들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진 거 같다. 그리고 살림이나 나 자신을 돌보는 일도 나름 능숙해졌다.


그런데도 그걸 깨닫는 순간은 찰나로 지나가 버린다. 지나쳐버린다.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이렇게 우울의 늪에 빠져있거나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 그래도 희망을 가져보려고 억지로 기억을 더듬거나 생각을 헤집어보면 그런 발전의 순간이 없지는 않았구나 하고 깨닫는 거다.


강의할 때 아이들을 절대 남과 비교하지 말고 예전의 아이 상태와 비교해서 발전했으면 격려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면서 스스로에게는 그러지 못한다. 너무도 당연한 이 내용을 왜 나 자신에게는 적용시키지 않는 걸까? 남과 비교하지 말고 이전의 나와 비교해서 발전된 것을 기뻐하고 나아가야 하는데 그런 하루하루의 달팽이의 걸음과도 같은 흔적을 잘 이루어나가다가도 어느 날 저 멀리 훨훨 날고 있는 새와 나비 같은 존재들을 볼 때면 난 결국 이 낮은 둔 턱 하나 넘지 못한 채 죽을 텐데 뭐 하러 이러고 있나 라는 자괴감을 피하기 힘들다.


오십 년을 살면서 인생이 그다지 대단하지도 않고 남 보기에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도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인생이란 누구에게도 쉽지도, 보이는 거처럼 단순하지도 않다는 걸 알지만 난 늘 나의 가장 나쁜 것과 다른 사람들이 애써 감추고 보여주는 최대치를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그래도 이렇게 논리적으로 스스로를 납득시켜 가며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갖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을 때는 순식간에 그런 비참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었다. 지금도 자주 그런다. 사실 그래서 글을 올리라고 종용하는 브런치의 알람을 받을 만큼 글을 쓰지 않았다. 일기장에는 썼다. 글을 올리는 일의 무용함에 대해. 나에게 자주 댓글 달아주시는 다정하고 좋은 작가님들의 글을 볼 때마다 어마어마한 수준차이가 느껴져 내 글이 부끄럽다. 좋은 글을 보는 눈은 있어서 같은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것조차 말이 안 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냥 예전의 나와 비교하면 되는데 그리고 글을 잘 쓰시는 분과 다르게 나에게는 또 다른 장점이 있을 텐데 이렇게 위로해 봐도 이런 이야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 실력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도 있는 거 같다.


사람들의 일상이 블로그나 브런치, 인스타그램 등에 낱낱이 공개되면서 나 같이 느끼는 사람이 적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더 심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냥 내 주변과 소소하게 왕래하며 살았다면 그냥저냥 만족하며 살았을 텐데 SNS에는 살림도 예술의 경지로 하고 인테리어를 잡지책처럼 해놓고 사는 사람, 글 잘 쓰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그런 사람들의 결과물이 동기 유발이 되기도 하지만 아마추어도 저렇게 대단한데 난 정말 하찮구나라는 생각이 삐죽이 고개를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요리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29년을 하다 보니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수 있고 매일매일 생존을 위해 밥을 한다. 그런데 같은 요리도 좀 더 맛있게 하고 예쁘게 차려 내놓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가족들에게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게 아닌 걸 아는데도 보면 마음이 그렇다. 이 나이에도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니. 특히 내 성향이 보여지는 것에 민감하다 보니 그런 거 같다. 남편이나 아이들은 그런 거에 무심한 편이라 아무렇지도 않고 별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난 예쁘고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많고 싫증을 잘 느끼는 편이라 새로운 것을 추구하다 보니 쓸데없는 비교와 열등감을 느끼는 일 또한 남보다 빈번한 거 같다.


텔레비전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중년 연예인과 비교하며 이러고 있으면 안 되나 필라테스라도 하고 얼굴에 시술이라도 받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비이성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주변 피부과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사실 십 년 전 미니멀라이프를 하면서 옷도 많이 버리고 화장품도 간단한 크림 한 가지 정도만 바르고 있고 외적인 것에 초연해진 줄 알았다. 글을 쓰고 피아노 치는 일도 그림 그리는 일도 남이 뭐라고 하던 수준이 떨어져도 내가 즐거우면 된다는 생각을 하며 즐거웠다. 이런 생각할 시간에 오늘도 글 한 줄이라도 쓰고 그림을 한 장이라도 그리는 게 훌륭한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난 가끔 기분이 우울해지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 생각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어느새 남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 속에는 인정욕구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피아노에 관심을 갖고부터 피아노를 다시 치는 분들이 쓴 책들을 여러 권 읽었다. 김겨울의 <아무튼, 피아노>, 이나가키 에미코의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이런 책들을 읽었는데 모두 대단한 실력자였다. 이런 분들은 어릴 때부터 계속 쳤으면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보였다. 취미로 해도 이들은 이렇게 대단하구나 그러면서 오히려 피아노 치기를 멀리 하게 됐다.


사실 이런 생각이 나만의 성향이거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그런 생각들이 존재하고 난 어릴 때부터 그런 시선과 무언의 압력을 받았기 때문일 거다. 내가 아무리 책을 읽고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다독여도 평생 내면화되어 온 그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때때로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남보다 스스로를 더 혹독하게 평가하고 가장 가혹한 목소리를 낸다. 오히려 주변의 친구나 후배들은 나를 격려해 주고 칭찬해 준다. 그런데 그 말도 믿지 못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아무리 “넌 훌륭해, 넌 예뻐, 충분해”라고 해도 커 가면서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에 만족하지 못하는 거처럼. 자기혐오와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사회가 문제인 걸까? 늙어서 늙어 보이는 건데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이 되는 그런 시선과 사회적 분위기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다.


오늘도 이런 나를 달래기 위해 글을 써본다. 그냥 묵묵히 내가 할 일을 하고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내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거를 알려주기 위해. 나의 취향과 나의 삶의 모습이 꼭 남의 경탄을 사야만 의미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만을 비교하고 앞으로 걸어 나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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