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나도 사랑할 수 있을까?

by 박수종

가끔 핸드폰 사진첩을 본다. 2년 전쯤에 가본 친구네 농장 사진이 있었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보니 그때 만난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대학동창으로 나와는 그다지 친한 편은 아니었다. 친한 친구를 통해 안부를 듣고 가끔 동창들 모일 때 얼굴을 보는 정도였다. 서울에 살고 있는데 남편이 농사짓는 걸 좋아해서 경기도 쪽에 땅을 조금 사서 주말농장으로 가꾸고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 오랜만에 들어온 친구와 3명이서 그 친구네 농장으로 갔다.


그곳은 넓진 않았지만 여러 과일나무들과 야채들을 키우고 있었다. 움막 같은 집도 있었고 간단한 살림도구들도 갖추고 있어서 팥빙수도 만들어 먹었다. 산딸기도 몇 바구니나 따고 농장체험을 제대로 했다. 학교 다닐 때 친하진 않았어도 50 넘어 만나니 스스럼없이 편하게 웃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농장주인 친구는 말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처음 보는 남편과 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한다.


그런 사람을 보면 부럽다. 자신을 변명하기 위해 숨차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얼굴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진중히 앉아있는 모습이 기품 있게 느껴졌다. 난 늘 조급하고 나서서 자신을 변명하려 한다. 조금의 흠이라도 잡힐까, 내가 뭘 놓쳤나 전전긍긍 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좀 실수했어도, 좀 바보같이 굴었어도 그냥 흘러 보내면 되는데 곱씹고 자신을 비난하고 변명한다. 내가 그동안 그랬다는 게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확 느껴졌다. 내가 통제욕구가 강하다는 것도. 내가 그 친구 상황이었으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와 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주제를 찾아 이야기를 건네고 남편이 불편하진 않은지 또 그런 남편 때문에 친구들이 불편하진 않을지 이리저리 상황을 살피느라 녹초가 되었을 거다. 그 친구는 남편이 뭘 하든 우리가 뭘 하든 그냥 편안하게 미소 띤 얼굴로 최소한의 말만 건넸다. 그런데 그게 불편한 게 아니라 너무도 편안했다. 의례적인 말을 하지도 않았고 너무 배려해 주어서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았다.


말이 많고 남 앞에서 별 두려움 없이 이야기한다는 것이 장점일 수도 있다. 강의하면서는 내가 말을 못 하지는 않는구나 적성에 맞는 구나라고 알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말을 하다 보니 실언도 많이 한다. 특히 술이라도 한잔 마시면 폭주기관차처럼 속에 담아놨던 이야기, 평소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거 같은 이야기들까지 막 쏟아낸다. 그런 날 밤에는 후회와 창피함으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니 평상시에는 의식을 깨우고 그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어느 날은 내가 왜 그렇게 나를 정당화하고 변명하느라 목이 쉴 때까지 떠들어 댔나 자괴감이 몰려온다. 그냥 내 판단대로 행동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거로 됐는데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설명을 하고 이러니 저러니 나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 애썼나 싶다.


얼마 전까지도 나는 비밀을 이야기하고 감추는 게 없어야 친해진다고 생각했다. 나의 단점이나 심지어 가족들의 단점까지 쉽게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아무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고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긴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때에 따라서는 나의 흠이 되고 나를 동등한 관계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걸 경험했다.


나는 나대로 내 그릇대로 인생을 꾸려나가면 되는데 애처롭기까지 하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툭 던지는 말에 파르르 하면서 구구절절 설명하곤 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 수다스러운 나는 안쓰럽다.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그렇게 주절대는 거 같다. 겸손해 보이고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거 같다.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날 사랑하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좀 유치해도 잘난 척해도 사랑해 주겠다. 말이 좀 많아서 실언도 하고 여전히 괴로운 밤을 보내겠지만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해 주자고 결심해 본다. 그래도 나이 들수록 말은 줄이는 게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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