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장면이 나를 말해준다.

by 박수종

얼마 전 광화문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명동쯤 왔을 때 담쟁이가 연두색의 여린 잎들을 한창 펼쳐내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튤립과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가득 피어있는 담벼락을 보게 되었다.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핸드폰을 꺼내고 카메라 앱을 찾는 사이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집에 와서도 그 예쁜 담장 생각이 계속 났다. 그렇게 마음속에 담쟁이로 덮인 담장 생각을 갖고 있다 보니 내가 사는 아파트 주변에도 담쟁이가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은 의식하지 못했는데 아주 많았다. 그중 특히 예쁜 담쟁이 사진을 찍어두었다. 나중에 어디선가 예쁜 튤립 꽃밭을 발견하면 찍으려고 주위를 살핀다. 두 가지 사진을 찍어 처음에 보았던 담쟁이 담과 꽃밭을 그림으로 재현해 볼 생각이다.

아파트 단지에 있는 담쟁이 담장


마음을 끄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마음이 다시 솟아올랐다. 주변에서 마음을 끄는 장면을 찾는 일을 다시 해보려고 한다. 그림은 그리는 행위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장면들을 수집하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점이 좋다. 기술적으로 잘 그린 그림 보다 이런 마음의 일렁임을 쫓아 자유롭게 그려보는 그림이 더 아름다울 거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장면을 찾는 순간부터 인생이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그림으로 그려볼 대상을 찾고 포착하는 일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그런 대상은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흔한 예쁨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그 예쁨은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고 남들에겐 시시한 장면일 수 있다. 나에게만 와닿는 장면과 사물과 대상이 있는데 쉽게 나타나지 않아서 더 귀하다.


생활 속에서 예술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스칠 때 행복감이 커진다. 얼마 전 다녀온 이중섭 전시회에서도 그의 유명한 그림이나 각 잡고 그린 것 같은 작품들보다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지와 엽서에 그린 소박한 작은 그림들에 더 눈길이 갔다. 그는 일본에 떨어져 살게 된 아내와 두 아들에게 그렇게 자주 그림엽서와 편지를 보낸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이중섭 전에서 본 편지와 엽서


그 전시회를 보면서 친구 한 명이 “너도 옛날에 이렇게 엽서에 그림 그려 주곤 했잖아”하고 나도 잊고 있던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그랬던 기억이 떠올랐다. 친구가 서울 한 복판에 살면서 우연히 본 박쥐 이야기를 해주었을 때도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재밌어서 그 박쥐로 캐릭터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나 엽서에 그리기도 했었다. 더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 카드, 생일 카드 등을 만들고 그걸 받을 친구나 부모님을 생각하며 설레고 기뻤던 기억도 떠올랐다.


우리도 어릴 때 그런 편지와 그림엽서를 누군가에게 그려준 적이 있었는데... 너무 편리해진 시대가 생활 속에서 예술을 창작해 내고 즐길 기회를 앗아가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카톡 이모티콘으로 그 마음을 쉽게 전달할 수 있지만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직접 만든 카드나 편지에 비해 그 울림이 크지 않을 것 같다.


무료하고 답답한 일상에서 잠깐이나마 설레는 경험을 하는 순간들을 더욱더 많이 만들어내고 싶다.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라는 책에서는 삶의 영역에 예술을 들여놓으라고 한다. 삶의 영역에 예술을 들여놓은데 3가지 특징이 있다고 하는데 첫째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행위들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 행위를 하는 사람과 행위 사이에 일치감이나 몰입이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그 행위의 결과물이 가시적인지 비가시적인지를 막론하고 내면이 충만해지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의무와 책임감만이 가득한 생활에서 벗어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몰입감을 더 많이 경험하고 싶고, 내면이 충만해지는 일을 자주 찾아내고 싶다. 가만히 나를 들여다봤을 때 내가 행복하고 가슴 가득 맑은 공기가 들어오는 것 같은 순간은 버스 안에서 담쟁이덩굴로 뒤 덮인 담벼락을 보던 때나 발아래 가득 떨어진 꽃잎과 초록색잎 회색돌의 조화로운 장면을 찾은 때 같은 사소한 순간이었다. 대단할 필요도 없었다.

카페 마당에 떨어져 있는 꽃잎들


그런 경험을 자주 하는 것도 저절로 이루어 지는 일은 아니었다. 평소에 그런 자세로 나를 조정하고 예민하게 감각을 벼르고 있어야 되는 일이다. 그렇게 잘 관찰하고 아름다움을 찾겠다는 자세로 살아나갈 때 찾을 수 있다. 바쁘게 살 때는 주변의 그런 작은 아름다움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남들이 다 꽃이 예쁘다고 할 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하늘이 파랗다는 것도 자주 잊고 있었다.


내가 좋아서 자꾸 찾는 장소들, 사람들, 책들, 잡지들이 나의 취향과 내가 살아갈 방향을 알려준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내 취향을 따라 살아가는 것, 나를 충만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취하고 즐기면 되는 거다. 인생은 그런 것이다. 늘 뭔가를 더 이뤄야 된다고 생각한 것 그러지 못했을 때 내 인생이 너무 하챦게 여겨지는 것 다 잘못된 생각이다. 사는 건 하루하루의 순간들을 무의미하게 흘러 보내지 않고 붙잡아 들여다보고 그렇게 하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