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집들과 오래된 골목길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서 <만희네 집>이라는 그림책과 오래된 구멍가게들을 찾아 그린 이미경 화가의 그림들을 다시금 찾아보았다. 이미경 작가가 처음 잉크 펜화로 구멍가게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경기도 퇴촌으로 이사 가게 되면서 동네 구멍가게의 추억으로 시작해 위로와 공감, 감동이 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즐기는 베짱이 놀이터> 블로그에서 가저온 이미경 화가의 그림 이 작가의 그림은 추억을 소환한고 아련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한 구멍가게의 풍경을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림 속의 작은 디테일들을 감상하는 기쁨도 크다. 화려한 대형마트가 대세가 되고 코로나 이후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바로 문 앞까지 배달되는 편한 시대지만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 드나들던 구멍가게의 추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돈 10원만 생겨도 찾아가 하드나 쫀드기 같은 간식을 사 먹던 곳.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런 구멍가게들을 찾아 그림으로 구현해 낸 작품들이 너무 아름답고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만희네 집>이라는 책이 있다. 옛날 주택의 곳곳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자세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은 이런 곳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들이 사셨겠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겠지만 나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성을 자극하는 책이라 지금도 가끔씩 들여다보곤 한다. 줄을 이어 만든 빨랫줄에 널은 이불에서 나는 햇볕 냄새, 옥상에 있는 항아리들, 작은 꽃밭의 꽃들 그런 것들이 나를 끝없이 과거로 소환한다.
<Two*맘의 행복육아> 블로그에서 가져온 사진
옛날 느낌이 남아있는 골목길 탐방을 좋아한다. 얼마 전 부산여행에서 방문한 흰여울 문화마을과 보수동 헌책방골목도 그런 의미에서 참 좋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70,80년대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들을 가보고 걸어보고 그 집들을 한참 동안 쳐다보는 일이 재밌다.
오래된 집의 담벼락을 손으로 만져보며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새겨진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느낄 수 있을까 싶어 오래도록 쳐다보곤 한다. 그 집이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거기에 있었다는 거에 신비한 기분이 든다. 나보다 더 오래 있었을지도 모르는 돌들이 신기하다. 새 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어떤 과거가 거기에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래된 주택들을 가만히 오랫동안 쳐다보곤 한다.
궁궐에서도 그 방이나 마루를 바라보며 거기서 움직이며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가만히 떠올려본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지만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 좋아서 옛날 골목길이나 궁궐에 자주 찾아간다.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단숨에 뛰어넘어 바로 거기 그 시간에 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해 주어서 좋다.
남들이 직접 지은 집이나 인테리어 구경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런 TV프로나 책들을 찾아보곤 한다. 어떤 프로그램이었는지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집을 지을 때 창문이나 문을 오래된 집의 것을 떼어다 다는 장면을 보았다. 너무 운치 있고 예뻐 보였다. 세월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창틀과 문이 새집과 어우러져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을 내뿜을 것 같다.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의 집을 꾸밀 때 내 손때가 묻은 아끼는 가구를 하나씩 가져가면 좋겠다. 사실 내가 그러고 싶었다. 부모님 집을 정리하면서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게 너무 안타깝다. 내가 좋아하던 책장이 있었는데 그걸 가져오지 못한게 후회가 된다.
오래된 거리를 걷는 것이 좋고 오래된 식당도 좋아한다. 세련되진 않지만 몇 십 년간 사용한 흔적이 있는 무거운 의자가 있는 교대역 근처에 있는 곰돌이 국숫집이나 명동 돈가스집 같은 식당들이 새로 리모델링해서 번쩍거리고 세련되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감성을 좋아하기 때문에 익선동이나 경주의 황리단길, 성수동 등이 옛날 모습을 조금 남겨두고 현대 감성을 잘 믹스해 힙한 장소로 탈바꿈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곳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처음에는 좀 신기하고 외관이 예쁜 곳이 많아 혹 하긴 했는데 정이 가진 않았다.
몇 번 가보니 거기가 익선동인지 황리단 길인지 다 비슷한 느낌이 되고 말았다. 오히려 촌스러워도 그냥 경주만의 그 느낌이 사라진 기분이 들어서 두 번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다. 다 똑같이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에 이탈리안 음식이 있었고 젊은이들은 사진 찍기에 바쁜 그런 감성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난 그냥 그 자리에 정말 몇 십 년간 별다른 치장 없이 음식 맛으로만 또는 커피 맛으로만 남아있는 그런 곳이 좋다. 그런 곳은 몇 십 번, 몇 백번을 찾아도 한결같다. 이제 그런 곳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어서 슬플 뿐이다. 곰돌이 국수도 아들이 물려받았다고 하던데 그래선지 거기에 거의 20년간 다니며 보았던 아주머니들도 안 계시고 미묘하게 음식맛과 분위기가 바뀐 거 같았다. 명동 돈가스도 그렇고...
이대 앞에 있던 오리지널 떡볶이도 원래 있던 자리에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기고 나서는 그곳의 시그니처인 오징어튀김과 고구마 맛탕의 겉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왠지 맛이 달라진 거 같아 친구들과 실망하고 나왔다. 가미분식도 코로나로 2층이 없어지고 리모델링을 한다는 거 같던데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점점 나와 함께한 추억의 장소들이 사라지고 있어서 서운하다.
이번에 일본에 갔을 때 호텔 근처에 간단하게 식사도 가능한 카페가 있었다. 정말 내가 딱 원하는 분위기의 카페였다. 오래 되어 보이는 진한 갈색의 낮은 가구들이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고 일하시는 나이가 좀 있는 여성분들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음식은 가격대비 너무 맛있었고 정성이 가득해 보였다. 그곳이 일본에서 간 다른 유명 맛집들보다 더 좋았고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이틀 내내 그곳에서 아침을 먹었다.
나중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그런 식의 레트로 카페를 킷사텐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다. 네이버에 찾아보니 킷사텐은 찻집, 카페, 홍차 등 음료나 가벼운 식사를 제공하는 음식점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카페가 바로 킷사텐 같은 분위기였다. 근데 일본에서도 코로나 이후로 이런 카페가 문을 닫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미경 화가나 <만희네 집> 그림책 작가처럼 그림으로 남길 능력은 없지만 좋아하는 오래된 장소들을 부지런히 사진과 글로 남기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글을 쓰면서 든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서울의 골목들을 좀 더 활발하게 누비고 다녀봐야겠다. “아 좋다, 좋아!”만 연발했는데 사진도 많이 찍고 좀 더 자세하게 관찰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