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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Oct 31. 2022

도시인의 월든

박혜윤의 <도시인의 월든>이 출판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주문해서 읽었다. 보통 맘에 드는 작가가 있어 첫 책을 읽고 그 이후 출판되는 책들을 보면 첫 번째의 변주이거나 그만큼 내실이 없이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박혜윤은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는 작가다. 첫 책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읽고 너무 신선했다. 생각은 할 수 있으나 그 생각을 밀고 나가 그대로 생활해내기는 힘든데 그걸 해내고 현실을 통찰력 있게 파악한다. 또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한계 짓는 게 아니라 그냥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힘을 빼고 이야기하는 점도 맘에 들었다.


그 후에 <부모는 관객이다>, <오히려 최첨단 가족> 다 구입해서 읽었다. 이 저자의 육아방식이 맘에 든다. 내가 이렇게 잘 키웠더니 좋은 대학에 가고 부모를 사랑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햇살 같은 모든 부모의 이상적인 아이가 됐다가 아니라 아이의 성향과 기질을 잘 관찰하고 아이가 하는 대로 두고 보는 것이다. 방임이 아니고 아이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반응하는 아이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파악한 후 그것이 사회에서 그다지 받아들여지고 호감을 주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그대로 인정해주는 부분이다.


<도시인의 월든>도 우리가 책은 읽어보지 않았어도 미니멀리스트 자연주의자로 도인 같이 유유자적하게 살았을 것 같은 소로의 모습의 이면에 자신의 말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고 자신의 삶을 따라 하지 말라고 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더 집중하는 책이다. 소로에게 작가가 공감할 수 있었던 부분이 그거였던 듯하다. 현재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이러이러 한 면이 너무 좋으니 모두들 그렇게 해보라고 가르치고 권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생활 모습을 보여주고 실험해보고 본인이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지 확신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냥 살아나갈 뿐이다.


우리가 흔히 어떤 작가의 글을 보고 그의 모습을 이상화시키고 실제 만나보고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정말 말과 행동이 다른 가식적인 사람일 수 있다. 또 하나는 말의 한계 때문이다. 그러한 글을 쓸 때와 현재는 다른 사람인 경우다. 그 당시에는 그게 옳았고 그런 생각과 생활을 했을 수 있었지만 사람은 한시도 쉬지 않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이다 보니 현재는 또 다른 모습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 소로는 그런 본인의 모습을 보이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인물이었던 듯하다.


우리는 그런 언어의 한계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사람들을 규정하고 단정 짓는 실수를 끊임없이 저지른다. 내가 어떤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는 말을 막 하는 와중에도 이건 아닌데 하는 느낌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반대하고 있지만 과거의 내가 그랬던 적이 있었던 게 퍼뜩 떠오르기도 하고 말하다 보니 이게 아닌데 라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소로는 당시에도 그런 모순적인 태도 때문에 비판받고 힘들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본인의 모습도 담담히 인정하며 본인의 생각을 실험하는 삶을 계속 이어갔다고 한다. 박혜윤 작가의 삶의 모습도 그런 소로의 모습에 공감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현재 있는 그대로 어쨌든 살아나가는 것, 어떤 틀에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결정 내리지 않는 것. 그런 삶의 태도는 그의 육아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런 부분들이 나에게 많이 와닿았다.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 자란 현재도 25년 이상 교육자로 살아왔으면서도 아이를 틀에 가두고 싶은 욕구는 수시로 솟아올라 나를 힘들게 한다. 교육적 지식 이전에 내가 규정한 나의 삶의 모습이 뭔지 알고 그것을 자세히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비폭력대화법을 구사하고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려 노력해도 내가 가진 삶의 틀이 강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으면 순간순간 아이의 삶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고 화가 나는 일이 일어난다.


아직도 내가 대학의 이름에 직업의 귀천에 어느 정도의 경제력은 갖추어야한다는 틀이 확고하다면 거기서 자유롭기 힘들다. 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거짓말은 이제 믿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그 모든 욕구를 만족시키며 사는 데에 지쳤고 자신의 행복이 뭔지도 모르게 됐다. 이미 많은 시간을 그런 사회적 압력과 그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그 신념을 버리기는 힘들다. 버리려고 해도 두려움이 날 압도한다.


나의 고정관념과 무의식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휘둘리며 아이를 대할 때는 나의 두려움과 무의식이 아이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지금은 매일매일 알아차리라는 책들을 읽으며 마음을 들여다본다. 박혜윤 작가의 책들도 그런 점에서 나의 고정관념을 깨 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 최근에는 셰팔리 차바리의 <깨어있는 부모>라는 책을 보고 있다. <깨어있는 부모>도 너무 좋은 내용이 많아 거의 대부분에 줄을 쳐서 필사하는데 한 달쯤 걸릴 것 같다.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만 가면 그만둬야지 했던 걱정이 대학생이 되어서도 일어날 때 나의 고정관념과 인식의 틀이 얼마나 견고한지 깨닫는다. 말로는 자신의 길을 찾아 묵묵히 가는 딸아이를 응원한다지만 마음속 불안의 일렁임에 녹초가 되도록 에너지를 쏟는 일도 빈번하다. 예전 같았으면 나의 불안을 아이들에게 전가하며 아이들을 괴롭혔을 텐데 지금은 글을 쓰거나 일기를 쓰며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지금 내 마음의 정체가 뭔지, 불안감을 잘 들여다보면 조금 희석된다. 내가 보기에 잘못된 길들처럼 보이는 일이 자신의 인생을 알차게 살아나가는 것으로 다시 보게 된다. 실패와 좌절이 없는 인생은 없다. 나도 분명히 그 시절에 게으름도 피워보고 괴로워하고 실패도 하며 살아왔다. 그걸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이 힘든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아이의 삶이라는 것, 그 고통과 어려움을 피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비현실적이라는 당연한 소리를 나에게 반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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