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종 Feb 02. 2023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를 읽고

소설이 아닌데도 소설처럼 흥미롭고 독특한 책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도서관에 예약자가 9명도 넘었다. 엄청난 인기였다. 인기에 걸맞게 가독성도 좋아 이틀 만에 다 읽었다. 흥미로워서 쭉쭉 진도가 나갔다.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인생에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책이다. 인생에 의미가 없다면 그럼에도 어떤 목표를 세우고 끝까지 몰두해서 그 일을 해내는 유형의 사람에 대한 작가의 집착에 가까운 탐구에 같이 동참하는 기분으로 따라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물고기 분류학자의 인생여정을 파헤치며 자신의 의문을 대입해 보는 형식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밀고 나가는 힘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작가의 아버지가 이야기하듯 세상이 무의미하고 인간이 개미보다 나을 게 없는 존재라면 그렇게까지 밀고 나가는 힘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늘 궁금했다. 난 조금만 힘들어져도 이게 그렇게까지 의미가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어 늘 중도에 포기하곤 했었다.

이 책의 저자도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인생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는다. 그 말의 답을 찾기라도 하듯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집착을 보이며 그의 인생 여정을 따라간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비현실적인 추동력에서 어느 정도의 자기기만, 교육계의 중요한 화두인 그릿 등 긍정적인 면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추동력이 인생 후반에 가서는 잘못된 믿음을 합리화하기 위한 악행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 믿음에 반하는 증거가 쌓여 있는데도 자의적인 믿음을 왜 그토록 버리지 못한 걸까?


믿음이 진실보다 중요한 무엇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 믿음을 놓아버리는 것은 다시 현기증 나는 무질서한 인생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상실감에 가득 차 떨고 있던 어린 소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 세상을 전혀 이해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무력한 아이로 되돌아가는 느낌일 거다”는 것이다. 작가 자신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그가 자연의 질서라는 비전을 그토록 단단하게 붙잡고 늘어진 이유이다. 도덕과 이성과 진실에 맞서면서까지 맹렬하게 수호한 이유이며 바로 그 때문에 그를 경멸했음에도 어느 차원에서는 작가 역시 그가 갈망한 것과 똑같은 것을 갈망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놓는다. 이해하기 싫지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특히 세속적 성공을 거둔 사람들 중에 그런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성공했기에 자신의 모든 행위를 합리화하고 면죄부를 받는다. 진실을 찾고 따르려는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 때문에 폭력을 저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듯 행동한다. 그의 우생학에 대한 집착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밀어 넣는다. 작가인 룰룰 밀러는 우생학 이론의 희생자인 애니와 메리를 찾아간다. 지능이 낮고 인간의 진화에 안 좋은 유전자를 물려준다는 이유로 불임시술을 받게 된 애니가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어머니를 대신해 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의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으로 존재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인생의 의미가 반짝이는 순간을 경험한다. 이들을 만난 후 비로소 룰룰 밀러 자신의 인생에서도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보게 된다.


“이것이 다윈이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 지구에서 이 사회에게 서로에게 중요하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성공적인 인생으로만 보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의 노력이 한낱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대반전을 찾아내게 된다. 그가 그토록 매달렸던 일의 질서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야 한다”라고 룰루 밀러는 이야기한다. 절대적 진리는 없다는 것, 늘 현실 속의 인간을 돌아보고 상황 속에서 자신의 명제를 확인하는 작업을 끝까지 놓지 않아야 함을 알려준다.


나와 다른 종족인 듯 부러워하며 늘 궁금했던 종류의 인간에 대한 작가의 탐험이 흥미로웠다. 타고난 소명이기나 하듯이 어린 나이에 이미 뜻을 세우고 평생 그 길을 한 눈 팔지 않고 살아가고 결국에 성공을 거머쥐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존경의 마음이 있었다. 그들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인물의 안 좋은 예를 보여줌으로써 그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준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마주하기 두려운 현실을 회피하는 고집스러움으로 본인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고통을 주게 되었다. 그 결과 자신은 인정하지 못해도 그야말로 허무한 결말을 맺게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좋아하는 것들만 갖고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