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이기는 아이로 키우자

- 아이 존중하기

by 박수종

우리 딸은 이번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뉴욕에서 보낼 예정이다. 유학 중인 친구가 2주간 본인의 숙소에서 묵어도 된다고 초대했다고 한다. 비싼 뉴욕에서 숙소가 해결되는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가고 싶다고 한다. 아무리 숙소가 해결된다고 해도 비행기 값과 이러저러한 비용을 합치면 큰돈이 들겠지만 가라고 했다.

오늘도 난 걷는다 블로그에서 가져온 타임스퀘어



같이 가는 친구와 비행기 표등 여러 가지를 의논한다며 나가는 딸이 부럽다. 12월 31일을 타임스퀘어에서 보내고 주변 빈티지 숍과 여러 유명 장소를 가보겠다고 설레며 이야기하는 표정이 예쁘다. 한편으로는 부럽고 질투가 나서 괜히 사람 많은 곳엔 가지 말라는 쓸데없는 말을 해본다.


내가 하도 부러워하니까 남편은 “친구들 미국에 많이 있잖아, 너도 가고 싶으면 가”라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사실 그렇게 가고 싶지도 않다. 어리고 젊었을 때 열병을 앓듯 가고 싶던 열망이 사라졌다. ‘가도 서울이랑 뭐가 그렇게 다르겠어?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지’ 이런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미국 드라마를 많이 보고 자라서인지 미국에 대한 동경이 크다. 그런데 아직 미국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20대 때 정말 가고 싶었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시기여서 주변 친구들도 해외에 나가는 일이 많았다. 친구들이 동남아라도 가보자고 계획을 했지만 나만 못 갔다. 이유는 엄마가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난 무남독녀로 자랐고 엄마는 안전에 대한 불안증이 심한 분이셨다. 친구들이 엄마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수종이랑 같이 가게 해주세요”라고 사정을 해도

‘우리 수종이는 안된다. 너희끼리 가라’ 하고 끊어버리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난 친구들과 여행 한 번을 못 가봤다. 아빠 지인의 딸이 스키장에서 사고를 당하는 일이 생기자 스키장도 못 가게 하셔서 친한 친구들이 방학마다 갈 때 나는 가지 못했다.


난 대학교 때 과외 알바를 해서 꽤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내가 용기가 있었다면 미국이나 유럽도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난 학습된 무력감의 예로 자주 등장하는 서커스단의 코끼리처럼 엄마에게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묶여 자라는 코끼리는 어른이 되어 풀어놔도 묶여있던 그 행동반경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크고 힘이 세도 조련사의 말에 순종한다고 한다. 그와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냥 내 선에서 “난 못가 안돼”라고 포기하고 엄마를 설득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난 그냥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고 반항 한번 하지 않는 딸이었다.


엄마는 강한 성격으로 본인의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관철될 때까지 본인의 의견을 주장하시고 강한 말투를 갖고 있어서 내가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그냥 순종해야 일상이 편안했기에 그렇게 길들여졌던 거 같다. 순종할 때는 나를 사랑해주시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내 친구 중에는 유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본인이 알바를 해서 천만 원을 모은 후 무작정 미국으로 간 경우도 있었다. 가서는 공부하느라 돈을 벌지 못해 결국 부모님이 도와주셨지만 공부를 마칠수 있었고 지금 교수가 되었다. 난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내가 번 돈을 싸구려 옷을 사고 술집에서 써버리느라 어떻게 썼는지도 모르게 다 써버렸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남편도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고자 했다면 국비유학도 있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을텐데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공부를 잘했지만 나처럼 모험을 하지 않고 편한 길에 안주하고 있었다. 삼 남매라 본인이 유학 갈 형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기 선에서 미리 포기한 것이다.


그 시대에는 딸들에게 그렇게 엄하게 통제하는 부모님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도 보면 9시 심지어는 8시까지 귀가해야 하고 알바도 못하게 하는 부모님들도 있었다. 부모님 세대의 한계는 이해한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그 나이에만 경험하며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을 스스로 커트하며 자신에게 한계를 두고 살아온 삶이 조금 아쉽다. 부모님과 트러블을 일으키며 까지 뭔가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가라고 스스로를 의심했다. 그렇게 길들여졌다. 그게 많이 후회가 된다. 원하는 일이 있다면 그냥 그 길을 가면 되는데, 방법은 찾아지기 마련인데 그걸 몰랐다. 부모님이 편안하도록 그 경계 내에서만 살았다. 자식은 나 혼잔데 내가 잘해야지 하는 책임감과 죄책감으로 평생 스스로 짐을 지고 살았다.


난 아이들이 살 세상을 잘 모른다. 나 자신이 이토록 편협하고 좁은 세상에서 살아왔는데 아이들이 살 넓고 큰 세상을 어찌 안다고 아이들을 가두겠는가? 불안은 내가 책임져야 할 감정이지 아이들이 해결해줘야 할 것이 아니다. 엄마의 불안을 평생 떠안으며 살아온 내 인생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그건 효도도 아니고 내가 착한 사람이라서도 아니었다. 치열하게 반항하고 쟁취해야 할 내 인생을 방치한 거다. 안락하고 편안함을 위해 그냥 내던져 버린 인생인 거다. 용기 없는 삶이었다.


지금에 와서 부모님 원망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님도 틀릴 수 있고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종한 내 잘못이었다. 난 그래서 부모 속도 썩이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실패까지 떠안을 수 있는 용기 있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 그럴 노력을 하느라 사실 힘들어 죽겠다. 내 불안을 다스리느라 내려놓으라는 책을 몇 번씩 읽고 필사를 해도 매일매일 새롭게 불안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용기를 내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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