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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Dec 15. 2022

망원동 산책

최근에 친구들이 아프거나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는 일로 많은 약속들이 취소되었다. 아이들에게서 해방되어 편해지고 자유로워지는가 했더니 이제는 우리가 아프거나 연로하신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할 일이 많아져서 이 무슨 슬픈 상황인가 싶다.


나도 최근에 담낭절제 수술을 받고 아직 소화가 안 되고 잘 먹지 못해 체력이 전 같지 않아 마음도 우울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친구들까지 그러니 참 속상하다.


그날도 이런 저런 이유로 약속이 미뤄졌지만 이왕 마음먹은 김에 어디든 나가고 싶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망원동에 가보기로 했다. 몇 달 전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후룩후룩 너무 맛있게 먹던 우동 집에 가보고 싶었다. 찾아보니 11시에 오픈이라 서둘러 나왔다.


지금 이사 온 집에서는 망원동이 많이 가까워졌다. 지하철을 타고 40분 정도면 망원역에 도착한다. 지하철역에서 그 우동 집은 한 7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11시 10분 전이었지만 벌써 두 팀 정도가 있었다. 내가 줄을 서자 갑자기 뒤로 긴 줄이 생겨났다. 11시 정각이 되자 문이 열렸다.


이 식당은 먼저 계산을 하는 방식이었다. 줄을 서서 주문을 하는데 잘 먹지도 못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돈가스도 먹어볼까 싶은 마음에 우동과 돈가스를 시켰다. 주문받으시는 분이 혼자냐고 좀 놀라는 듯 확인을 하셔서 창피했지만 2가지 음식을 주문했다.


자리에 앉고 음식이 빠르게 나왔다. 아~ 그분이 왜 다시 물었는지 알게 되었다. 돈가스가 엄청 컸다. 우동도 양이 만만치 않았다. 수술 후 아직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욕심을 부렸다. 그래도 우동은 정말 딴 곳에서 먹기 힘든 맛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다 먹었다. 돈가스는 그냥 흔한 분식집 돈가스였다. 1/3 정도만 먹었다. 양 옆에 바짝 붙어있는 좌석들에는 손님들이 두 명씩 앉아 있었는데 나와 같은 양을 시킨 것을 보니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정말 빠른 속도로 먹고 나왔다. 맛있었는데 맛을 음미 못한 것이 아쉽다.


부른 배를 안고 망리단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다시 지하철 쪽으로 걸어가 뒤쪽으로 한참 걷다 보니 망원시장이 나왔다. 우리 집 앞에 남성 시장이 있어서 늘 지나다니다 보니 시장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맛있어 보이는 간식들이 많았다. 우동집에서 두 가지 메뉴를 시키지만 않았어도 꽈배기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하며 걸어 다녔다.

망원시장


그렇게 한 참 가다 보니 망원동 티라미수 집이 나오고 거기를 기점으로 아기자기하고 예쁜 가게들이 보였다. 배가 불러도 커피는 마셔야 했기에 카페를 검색하고 예뻐 보이고 평도 좋은 79 founyard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고 화요일 오전이라 그랬는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내부는 빈티지한 물건들로 꾸며져 있었다. 아늑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와서 아주 좋았다. 커피를 시키고 음악을 듣고 있으니 행복했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났는데 매캐한 냄새가 나고 답답해졌다. 보니까 쿠팡으로 계속 주문이 들어오는 건지 손님이 없는데도 와플 굽는 냄새가 났다. 친구들이 같이 왔다면 이런 와플 저런 와플 시켜서 맛있게 먹었을 텐데. 다음에 내가 왔던 경로대로 친구들을 데려와야겠다 생각했다.

79founyard 내부


그렇게 앉아서 또 어딜 가볼까 검색해보니 1시에 오픈인 예쁜 잡화점과 독립서점이 눈에 띄었다.


카페에서 12시 50분쯤 일어나 제로 스페이스라는 잡화점으로 갔다. 5분 정도 거리였다. 도착하니 막 문을 열어주셨다. 안에는 내가 좋아하는 문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필요하지는 않지만 예쁜 물건들이 날 행복하게 해 주었다. 정말 예쁜 테이프들이 많았다. 포스터들, 예쁜 연필들, 다 예쁘고 특이한 문구들이었다. 택배 상자를 뜯을 작은 가위와, 미피 도장, 꽃무늬 마스킹 테이프를 사가지고 나왔다.

제로스페이스 잡화점


이제 <당인리 발전소>라는 서점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다시 망원역 쪽으로 걸어 나와 길을 건너 망원역 1번 출구 쪽 작은 골목에 생뚱맞게 위치해 있는 서점을 발견했다. 건물은 새로 지어진 듯 보였고 좋았다.

당인리 책발전소 서점


1층에는 서점 주인이 엄선해 놓은 듯한 책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다. 내가 서점 앱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던 책들이 많이 보여서 반가웠다. 나와 취향이 비슷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앱에서 보던 책을 실제로 한 권 한 권 들춰보고 몰랐던 새로운 책들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카페를 겸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권 사서 2층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고도 싶었지만 갑자기 배가 아프고 속이 좋지 않아서 급하게 집으로 가고 싶어졌다.


혼자지만 알차게 망원동을 구경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와서 만보기 앱을 봤더니 거의 9000걸음을 걸었다. 재밌게 구경도 하고 운동량도 채워서 보람되고 즐거운 하루였다.


이런 도시 구경은 친구들과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맛있는 것도 많고 예쁜 디저트 집도 많았는데 혼자서는 다 먹을 수 없어서 이기도 하고 예쁘고 아늑한 카페에서 수다도 떨어줘야 제 맛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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