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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종 Mar 03. 2023

‘수종사’ 가는 길

- 남양주 하루 여행

고생했던 여행이나 경험이 더 오래 남는 거 같다. 주 전 친구들이 남양주에 있는 수종사라는 절이 아주 좋고 그 주변에 좋은 카페들도 많으니 가 보자고 했다. 십몇 년 전에 남편과 다녀왔는데 아주 좋았다고 가보자는 친구 말에 내 이름과 같은 절이네 좋다 그러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다. 대청마루라는 식당에서 맛있는 보리밥 한상과 감자전으로 든든히 점심을 먹고 수종사로 향했다.

WHERE IS WHALE 블로그에서 가져온 대청마루 식당 음식 사진


차로 거의 절 정문까지 갈 수 있어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다 해서 잘 됐구나 하고 차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산 입구에 도달했고 금방 올라가면 나온다는 친구 말에 태평하게 있었는데 웬일 인지 가도 가도 절은 나오지 않고 엄청난 경사에 바로 옆은 낭떠러지인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운전을 하던 친구도 가봤다는 친구도 말이 없어지고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멀지?”라는 당황하는 소리만 간신히 들렸다. 나도 뒤에서 손에 진땀이 나고 무서웠지만 운전하는 친구가 그렇지 않아도 당황한 것 같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가파른 경사로를 서너 번 더 오르고 나서야 절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가파른 경사로를 오를 때 앞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네비로도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너무 무서웠다고 절에 도착해서야 운전했던 친구가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했다. 전에 와봤다는 친구도 그제야 이럴 줄 몰랐다, 전에 왔을 때는 이렇게 멀고 위험했던 기억이 아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고 젊을 때라 무서운 줄도 몰랐던 거 같다고 당황해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당도한 수종사는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어서 경관이 정말 좋았다. 절은 작았지만 다른 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 있었다. 산꼭대기에 지어진 오래된 절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다. 절 내부 여기저기를 다니는데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500년 됐다는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서 경사로를 내려가야 하는데 다리가 떨려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저 멀찌기서 사진만 찍어댔다.

수종사에서 내려다 본 경관과 500년 된 은행나무


이렇게 아름다운 절의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도 내려갈때는 또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절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낄 수가 없었다. 내려갈 때가 더 위험할 것 같아 차라리 차를 두고 가자고 했다. 아까 보니까 절 셔틀버스가 있던데 그걸 타던지 걸어서 내려가고 차는 나중에 대리운전사나 셔틀버스 운전사에게 웃돈을 주고 갖다 달라고 하자고 했다. 친구는 그래도 내려가 봐야지 하며 비장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다행히 내려가는 길은 시야가 확보되어 괜찮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가팔라도 앞이 보이니 낭떠러지 반대편으로 붙어 천천히 가니  안전했다. 그렇게 산을 내려오자 온갖 시름이 다 사라졌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얼굴에 웃음이 다시 나타났다. 올라갈 때는 너무 무섭고 위험하게 느껴져서 사람이 이렇게 준비 없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내려오니 그저 재밌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갑자기 친구들이 말이 많아지고 웃음이 나왔다.


그 길로 파이가 맛있다는 마담파이라는 카페로 가서 드립커피와 호두파이를 먹으며 살아있음을 만끽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래도 절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뒤늦게 수다를 떨며 즐거운 추억이 됐음을 느꼈다.


그렇게 위험해 보이는 산길을 가야 나오는 절인데도 주차장에 차가 엄청 많았다. 절에 도착해서도 계속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겁이 없는거 같다. 나와 내 친구들이 겁쟁이들인 건지.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절이 너무 좋았던 거 같고 불안감 때문에 그 멋진 경관을 즐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기도 하다. 다시 간다면 절대로 차를 타고 가진 않을 거지만. 집에 와서 절에 대해 찾아보니 운전미숙자는 절대 차를 가지고 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마담파이 카페 내부


그 당시는 힘들었지만 이렇게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되는 경험과 여행이 있다. 많은 여행을 했지만 좋은 호텔에서 순조롭게 관광하고 쇼핑이나 하고 특색 없는 맛있기만 한 음식을 먹은 여행보다는 고생스러워서 그 당시에는 화가 나고 불편해서 힘들었던 여행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이렇게 글을 쓸 만큼 스릴 넘치는 나들이였다. 기억이 조작 됐는지 무서웠지만 절은 너무 매력적이고 좋아서 자꾸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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