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자신에게 필요한 걸 딱 맞게 알고 있었다.
- 유아의 잠재력을 믿는 법
아이를 키워보니까 사람은 태어날 때 자신에게 잘 맞고 편한 걸 가장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라면서 사회에서 좋다는 걸 부모가 선생이, 미디어가 권하니까 거기에 자신을 끼워 맞춘 거였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자라온 시간을 되짚어 봤을 때 그냥 놔두고 스스로 찾도록 믿어주고 기다려 준다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천천히 알아나갈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먹는 음식만 봐도 그렇다. 둘째는 어릴 때는 브로콜리와 나물류 등 뭐든지 잘 먹는 아이였다. 내가 권하면 조금이라도 먹어보려고 하고 잘 먹는다고 칭찬하면 정말 잘 먹었다. 난 아이가 좋아해서인 줄 알았다. 그러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고 본인의 의견을 주장하게 되자 야채를 거의 먹지 않고 고기 치킨, 과일만 먹었다. 그래도 다행히 188cm에 63kg로 좀 말랐지만 건강한 20대로 컸다.
싫어했으면서 그때는 왜 그렇게 잘 먹었냐고 물었더니 야채와 나물류를 잘 먹으면 엄마뿐 아니라 어른들과 선생님들도 칭찬해주는 게 좋아서 그랬다고 한다. 결국 칭찬도 아이를 조종하는 한 수단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아이가 본인의 생존을 위해 먹는 일을 칭찬할 필요는 없는 거였다.
아이들 식사 교육을 할 때 새로운 음식을 아주 조금씩 맛보게 하는 게 좋다고 배운다. 그리고 야채는 무조건 좋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소화력이 떨어지게 되자 위장에 좋다는 브로콜리나 양배추가 오히려 속을 불편하게 한다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생야채는 거의 소화가 되지 않고 변비가 생기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고포드맵 음식은 장이 약하고 소화력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소화가 안 된 채 장에 머물며 발효가 되면서 가스를 유발해 좋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플랜트 패러독스>라는 책에는 우리가 항암식품으로 맹신하는 마늘이나 파, 양파 같은 식재료의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렇게 음식에 대한 견해도 학자에 따라 각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기에 어린 유아들에게 내가 좋다는 음식을 무조건 권하는 게 옳은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첫 아이의 입시 과정도 지나고 보니 아이 말이 다 옳았다. 수시, 정시, 논술을 다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뭐든 안심할 수 없기 때문에 내신, 스펙도 챙겨야 하고 정시, 논술도 다 준비해야 한다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진로지도를 해주셨다.
그런 이야기를 듣자 불안해져서 내신도 신경 쓰고, 여러 대회에도 나가 스펙을 만들자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내신 잘 받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거까지 외워야 하는 소모적인 공부는 하기 싫다고 논술과 정시만 준비하겠다고 했다. 최상위는 아니었지만 성적이 좋은 편이라 너무 아쉬웠다. 수시는 원래 본인의 성적보다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좋은 기횐데 그 기회를 날린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글도 잘 쓰는 편이라 대회에 나가면 상도 탈 수 있을 텐데 왜 그러냐고 애원을 해도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고 딱 잘라 거절 했다. 그렇게 논술준비에만 몰입했다.
나는 말을 듣지 않는 아이가 원망스러웠지만 주관이 뚜렷한 아이를 억지로 시킬 수 없었다. 원하는 논술학원만 보내고 수능최저를 맞추기 위해 부족한 수학 공부에만 집중했다. 결국 아이가 옳았다. 논술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내가 애 태우고 아이하고 실랑이할 필요가 없는 쓸데없는 짓이었다는 게 지금에서야 보인다. 그 당시에는 학교 선생님조차 논술은 사실 거의 기대할 수 없다고 얼마나 겁을 주시는지, 학원 설명회에서도 입시 컨설팅 선생님도 한결같이 하나라도 놓쳐서는 대학 가기 힘들다고 불안을 부추겼다.
그런 와중에 당사자인 아이가 결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이것저것 다 하다가 결국 번아웃이 오고 무기력에 빠졌을 수 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신을 챙기지 않았던 아이는 고등학교 시절에 아이들과 재밌게 잘 지냈다. 본인이 가장 자신 있다고 확신하는 논술에만 집중하고 수능최저를 맞추기 위한 공부는 열심히 해서 논술로 입학할 수 있었다.
사실 난 그냥 아이가 필요하다는 학원에 돈만 내주고 마음 편히 밥만 해주면 되는 거였다. 여기저기 불안을 유발하는 소리들에 흔들리고 아이를 설득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물론 결과가 좋았고 다 지나고 나니 하는 한가한 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내가 그 과정들을 지나고 보니 결국은 아이가 다 옳았다. 자기 자신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거였다. 단 자신을 믿을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불필요한 불안을 부모가 유발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