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국수를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by 박수종

한동안 잔치국수를 안 먹었다. 저탄고지 다이어트 한다고 탄수화물을 줄이면서 특히 밀가루 음식은 거의 안 먹었다. 잔치국수, 칼국수, 짜장면, 라면, 파스타 같은 면은 가장 기피해야 할 음식이었다. 몇 년간 손에 꼽을 만큼만 먹었는데 담낭제거 수술 후 살이 빠지면서 기운이 없고 입맛도 없어서 일단 기운을 차리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소화 잘 되는 음식 위주로 아무거나 먹기 시작하면서 면요리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면요리가 아닌가 싶다.


한동안 입맛도 없고 소화도 안 됐는데 잔치국수는 소화가 잘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은근히 손 많이 가는 국수를 나 혼자 먹자고 만들 엄두가 안 났는데 어느 날 딸도 잔치국수가 꼭 먹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다.


그렇게 몇 년 만에 잔치국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선 멸치와 다시마, 무를 넣고 다시 국물을 만들었다. 국물이 우러나면 건더기를 건져내고 국간장으로 심심하게 간을 한다. 그다음엔 고명으로 올릴 호박볶음을 만든다. 소금에 살짝 절였다가 꼭 짜서 기름을 두르고 아삭한 식감이 남아있게 가볍게 볶아준다. 잔치국수에 가장 중요한 김치무침도 만든다. 김치를 잘게 썰어 설탕과 참기름, 깨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준다. 마지막으로 계란지단을 만들어 가늘게 썰어놓는다.


먹는 데는 5분, 심지어 남편은 2~3분 만에 먹는 거 같은데 만드는데 꽤 손이 가는 음식이다. 여기에 각자 넣어먹을 간장 양념장을 만든다. 고추를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참기름 설탕 한 꼬집과 깨를 넣는다. 고명과 멸치 육수를 붓고 마지막으로 김가루까지 뿌리면 완벽하다. 집에서 만든 김밥만의 맛이 있듯 흔한 잔치국수지만 집에서 만든 음식만의 맛이 있다. 사실 처음에 딸이 잔치국수 만들어달라고 할 때 분식집에서 그냥 한 그룻 사 먹으라고 했다. 밀가루 음식을 한 그릇 다 먹는 거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집에서 만든 국수가 꼭 먹고 싶다고 졸랐다. 집에서 거의 밥 먹을 일이 없는 딸의 특별한 부탁이기도 해서 만들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어릴 때부터 먹던 그 맛이었다.


이 레시피는 친정엄마의 레시피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잔치국수를 자주 해주셨다. 어릴 때는 비빔국수를 더 좋아했는데 크고 나니 멸치육수의 담백하고 깔끔한 잔치국수가 더 좋아졌다. 어릴 때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의 어머니 근황을 묻다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엄마가 잔치국수를 만들어 주셨는데 너무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친구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잔치국수를 먹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 잔치국수, 김밥, 잡채는 엄마가 잘해주시던 음식이다. 할머니 음식을 많이 먹고 자란 아이들도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다. 엄마가 자주 하시던 호박죽, 고구마튀김을 어릴 때는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호박죽이 먹고 싶어서 늦가을 늙은 호박이 나올 때면 만들곤 한다. 아이들도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어릴 때 먹던 음식이 자꾸 먹고 싶어 진다. 남편도 시어머님이 자주 해주시던 고구마 반찬이라는 음식과 어묵을 넣은 고추장찌개를 먹고 싶어 한다. 결혼 후 시댁에서 먹어봤던 기억을 되살려 흉내 내어 만들어 주었다. 고구마를 삶아 얇게 썰어 고추장과 간장, 물엿에 물을 조금 넣고 조려주는 음식이다. 달고, 짜고, 매콤한 밥반찬이다. 사실 이게 무슨 맛인가 싶고 난 별로 손이 가지 않는데 남편은 고구마 반찬 하나 만으로 밥 한 그릇을 뚝딱 먹는다. 어묵찌개는 거의 국물 떡볶이 같은 맛이다. 멸치 다시국물에 어묵과 감자를 넣고 고추장과 국간장을 넣어 끓인 찌개다.


이렇게 나만의 반찬 레시피가 조금씩 늘어왔다. 시어머니 음식, 친정엄마의 음식, 그리고 새로 개발한 나만의 음식들,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어떤 음식을 먹으며 나를 기억하게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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