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군가와 늘 소통하고 싶었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바로 공유하곤 했었다. 내 이야기도 많이 하고 의견이 다르면 설득하려고도 했다. 그렇게 같은 마음이 되어야 친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감정이 상하는 경험을 하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타인을 변화시킬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뒤로 평범한 일상의 일들은 이야기하고 표현하지만 좀 더 민감한 정치나 종교, 각자의 아이를 키우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는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젊을 때는 가치관이나 생활 방식 등이 확고하지 않은 상태라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영향을 받을 수 있고 내가 침범받는 느낌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지금 내 나이 50대 이상은 거의 그럴 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벽이 존재하는 느낌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 긴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으로 쌓인 확고한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부정하는 일이 되어 감정이 상하게 된다.
강한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상대편을 욕한다. 나와 비슷한 성향인데도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으면 힘이 든다. 정치뉴스나 골치 아픈 뉴스는 안 보려고 한다. 내가 보고 화를 낸들 변하는 건 없고 내 정신건강만 해친다. 투표 때 내 의견을 표현하거나 정치적 행동은 조용히 하면 된다. 주변사람들과 침 튀기며 이야기해 봤자 가까운 사람과 감정이 상하거나 피로감만 쌓인다. 현실 정치에 바뀌는 것은 없다.
내 취향에 맞는 작가들의 책을 읽으며 공감과 위로를 받는 일이 많다. 작가가 나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하다. “맞아, 맞아. 나도 그랬는데”하며 상처가 치유되기도 한다. 어떤 해결책이 제시되서가 아니라 나의 상황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거를 읽는 거만으로도 위로받는다.
실바니아 인형 상자 속에 들어있던 작은책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기는 어렵다. 심지어는 부모자식 간이나 부부사이도 그렇다. 가깝지만 어쩌면 서로에 대해 가장 잘 모를 수도 있다. 어떤 상황의 일부분을 이야기했을 때 상대는 그 부분만으로 나를 판단하고 해결책이나 충고를 하는데 그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상대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는 서로 그런 실수를 저지른다. 나의 스토리의 일부만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망과 오해가 쌓여간다.
이제는 그저 듣기만 하려고 노력한다. 그냥 조용히 공감만 해주고 옆에 있어주려고 하는데 나이가 들어선지 자꾸 뭔가 해줄 이야기가 나오지만 입을 틀어막으려 노력 중이다. 나에게도 그래주면 좋겠다. 해결책을 바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냥 현재의 이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다. 해결책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몰라서 그렇게 행동하는 게 아니다. 아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만큼 답이 없는 경우가 많고 그냥 참고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일들이 많은데 그 순간을 공감받고 싶어 표현한 것뿐이다.
그럴 때 책이 그런 역할을 해준다. 엄마라면 누구든 아이에 대해 화가 날 때가 많다. 아이를 존재만으로 사랑해야 하는 걸 알지만 중간고사 시험점수에 화가 나기도 하고 옆집 아이는 안 그런다는데 우리 집 애는 왜 저러는지 비교하는 마음이 자꾸 들기도 한다. 알지만 지식과는 다르게 달려가는 마음을 가진 엄마의 여러 심리를 알려주는 글을 읽다 보면 “아 내가 나쁜 엄마라서가 아니구나, 나에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구나. 아이를 키우며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구나”하며 죄책감을 내려놓고 문제를 찾아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나도 몰랐던 혼란스러운 마음에 대한 글이 많은 위로와 공감이 되었다. 그 저자들도 실제로 만난다면 그 부분을 제외한 현실의 생활방식이나 대화 방식은 안 맞을 수 도 있다. 그렇게 모든 인간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을 수는 없다.
책을 읽으며 내 생각을 확인받거나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고, 나의 모호했던 생각이나 감정에 이름이 붙여지는 과정이 좋다. 책을 읽으며 외부의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도 좋지만 나를 명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게 되었다는 게 가장 좋다. 모호했던 감정들, 불쾌했던 느낌, 인간관계에서 느껴지는 이유 없는 껄끄러움 이런 것들이 심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느 정도는 인간의 본성임을 알고 이해받는 느낌이 든다.
소설 속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심리묘사를 읽으면서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애써 숨겨오고 눌러왔던 진짜 감정과 심리들을 비로소 꺼낼 수 있었다. 도덕적 판단이나 사회적 시선 때문에 그런 감정들은 없고 느껴본 적 조차 없는 척하며 살아왔는데 인간에게는 숭고한 마음 저편에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추악하고 치사하고 지질한 면이 있다는 걸 이해하면서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남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될 때도 이제는 그냥 “It’s human”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다. 몇 년 전에 본 <Younger>라는 미드에서 약혼자가 죽었는데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친구가 토로할 때 주인공이 한 말이었다. 본인의 추악한 비밀을 약혼자가 알게 되기 직전에 사고로 약혼자가 죽게 되자 안도감을 느끼는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친구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난 그 긴 시리즈에서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았고 뭔가 통쾌함을 느꼈다. 보통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자신의 죄를 밝히고 슬퍼해야지’ 등등의 도덕 교과서 같은 말을 남발하며 자신은 그런 상황에서도 깨끗하고 고고하게 행동할 것처럼 남들을 손쉽게 단죄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봐 왔는지... 하지만 인간은 남에게는 그렇게도 도덕적이면서 정작 본인의 상황일 때는 얼마나 많은 사연과 변명을 들이대며 합리화하는가? 그때 솔직하게 “그러는 것도 인간의 본성이지 그럴 수 있지”라고 툭 진실을 밝힐 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