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꼭 드는 물건을 사고 사용할 때 그 만족감이 생각보다 크다. 가격이 비싼지 싼 지는 중요하지 않다. 신중하게 골라서 쓸모에 맞아 사용할 때마다 느껴지는 좋은 기분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요즘 자주 느낀다.
젊고 어릴 때는 물건을 사서 실패하는 일이 많았다. 옷가게에서 입어 볼 때는 분명 예뻤는데 그곳의 거울이 사기였는지 달라도 너무 달랐다.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 옷들도 모델과 너무 다른 외모 때문인지 사진과 달라 실망하고 안 입는 옷들이 많았다. 그렇게 쏟아부은 돈 덕분인지 이제는 한눈에 나에게 어울릴 옷인지, 옷 자체는 예쁘지만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을지 알게 됐다. 지금도 반품하는 일이 없지는 않지만 인터넷이나 홈쇼핑에서 싼 옷을 사도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들을 고를 수 있게 됐다.
얼마 전에 양산을 하나 샀다. 지금까지 양산이 없었고 너무 뜨거운 날엔 가지고 있던 우산을 쓰곤 했었다. 사러 나가기 귀찮던 차에 홈쇼핑에서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양산 2개를 49900원에 팔고 있었다. 옷처럼 내 몸에 맞추는 것도 아닌데 괜찮아 보여 덜컥 주문하고 받아 펼치고 접어 보는데 너무 불편했다. 제대로 접히지 않아서 한 번 펼치고 접는데도 힘이 쭉 빠졌다. 이런 물건을 계속 쓰면 스트레스받을 게 뻔했다.
반품 요청을 하고 백화점으로 갔다. 요즘 백화점 물건들이 얼마나 비싼 줄 알지만 매일 들고 다닐 물건이라 좋은 걸 사자 결심했다. 세일 중인데도 홈쇼핑 두 개 가격보다 조금 더 비싼 가격에 하나를 샀지만 너무 만족스러웠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고 쓰고 다니면서 발걸음도 가벼웠다. 펼치고 접을 때도 쉽게 착 접힌다. 작고 가벼워서 가방 안에도 쏙 들어간다. 보는 사람마다 좋아 보인다, 예쁘다고 칭찬한다. 별것 아니지만 이 양산을 들고 다니면 늘 기분이 좋다.
새로 산 양산이 맘에 든다.
갑자기 양산을 사기로 결심한 이유는 피부과에서 잡티 제거를 하면서 얼굴에 신경을 좀 써야겠구나 생각하면서부터다. 몇 년 전부터 얼굴에 뭔가 도톨 도톨한 것들이 생겨났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요즘 면역력이 떨어지고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서 순식간에 얼굴에 쫙 퍼졌다. 화장을 하고 나가면 다행히 친구나 지인들도 노안이 와서 잘 안 보인다고는 하는데 화장할 때나 세수할 때 매 번 얼굴을 만져야 하는 나는 짜증이 나고 왜 이러나 걱정도 됐다. 그래도 아픈 건 아니니 귀찮아서 그냥 넘기고 넘기며 몇 년이 흘렀다.
최근에는 너무 심해져서 이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피부과 문턱을 넘었다. 역시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았다. 편평 사마귀, 비립종, 피지 낭종인지 뭔지 백 개도 넘는 것들을 제거했다. 간단하게 몇 개 제거하면 되겠지 하고 갔다가 마취크림을 바르고 레이저로 지지고 짜고 큰 시술을 받게 되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다고 2주간 듀오덤을 붙이고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다. 2주가 지나고 드디어 테이프를 떼었는데 너무 매끈해져 있었다. 아직 살짝 얼룩덜룩한 흉터는 있었지만 만져보니 너무도 매끄럽고 걸리는 것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로 재탄생해 있었다.
자질구레한 짜증을 유발하는 일들을 품고 살았다. 피부과 한 번 가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얼굴의 잡티들을 제거하니 시원하고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전세를 오래 살아서 집에도 항상 뭔가 고장 나 있거나 문이 제대로 꽉 안 닫힌다거나 하는 일들이 많았다. 언제 또 이사 가야 할지 모르는데 대충 살지 이런 마음이었다. 발에 뭐가 차여도 제자리를 찾아주면 되는데 그 불편함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삶을 이어나갔다. 이사하면서 인테리어를 하고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고장 난 곳 없이 모든 것이 딱딱 맞는 곳에 사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 아이들도 이사하고 나서 집이 너무 편리하고 좋아서 좋은 호텔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고 한다. 집이 호텔보다 좋다고 한다.
전세를 살아도 환경에 관심을 갖고 불편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고치고 해결하며 살 수도 있었는데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임시로 살 듯 그렇게 긴 세월을 살았다. 그런 태도는 모든 면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내 얼굴에 생긴 성가신 비립종들만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문제들도 그렇게 덮어둔 채 미뤄두고 지나쳐 버린 적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
집정리가 되고 마음 정리도 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사는 일이 이렇게 개운하고 행복하다는 걸 매일 새롭게 알게 된다. 고장 난 물건 하나, 신경 쓰이는 잡티들, 불편해서 쓸 때마다 짜증 나는 물건들이 나를 기운 빠지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잘 돌보는 일이 그래서 중요한 거 같다. 매일 일어나면 침대정리부터 하라는 자기 계발서의 말이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몇 시간 후면 또 흐트러질 텐데 뭐 하러 하나 이런 생각이었다. 이제는 그런 작은 행동 하나가 나의 기분을 순식간에 바꿔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나의 기분을 좋게 하는 일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순간들이 인생을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단정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신중하게 고른 아름답고 편리한 물건들을 사용할 때 삶이 만족스럽다. 그걸 알고부터 마음이 산란해지고 답답해질 때는 버릴 물건을 찾고 서랍의 물건들을 다 꺼내 정리를 한다. 문제는 내 공간은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아직 이런 개운함과 행복감을 모르는 카오스 상태의 아이들 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