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실현하고 싶다.
- 나를 잘 키우는 일은 어떻게 하는 걸까?
나를 차분히 들여다보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글을 쓰거나 간단하게라도 일기를 쓰는 일이 필요한 거 같다. 그래야 마음속이 불편한 이유를 잘 구분해 낼 수 있다. 내가 몸이 피곤해서 불편한 건지 누군가의 어떤 말이 날 불편하게 했는지 알아봐야 한다. 불편하게 했다면 그 이유가 나에게 해결되지 않은 어떤 문제 때문인지 그 상대가 정말 이기적이고 무례한 거였는지 구분해 내야 한다. 그런 연습을 자주 하면 평상시에도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순간을 잘 포착할 수 있다.
밖에서 부산스럽게 돌아다닐 때는 그 소리들을 무시할 때가 많다. ‘가만히 있어봐. 지금은 사람들하고 있잖아’ 하며 외면했다. 집에 와서도 TV 보고 바쁘게 살림하다 보면 나를 마주하지 못했다. 의도적으로 나를 만나는 시간을 꼭 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배가 고픈 게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고, 힘든데 힘든지도 모르고 해야 하는 일에 몰려 몸을 혹사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고 힘든 이유를 그냥 술과 몸에 나쁜 음식들에 묻어버리려 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남편도 자신의 힘듦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다. 저 사람이 요즘 힘든 일이 있나 보다 하고 알아볼 수 있는 신호는 과자나 단 음식을 심하게 많이 먹고 집에 있을 때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본다는 거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나도 긴 세월 그랬다. 마음의 소리뿐 아니라 몸의 소리를 예민하게 들을 줄 몰랐다. 배가 부른데도 또 차리기 귀찮으니까 먹었고 피곤한데도 쉬지 않고 일하고 돌아다녔다. 힘든데도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그냥 혼자 있는 시간의 공허함과 마음의 부대낌이 싫어서 그 시간을 자꾸 피했다. 왜 힘든지를 살펴봐야 했는데 심지어는 힘들다는 것도 몰랐다. 몸살이 나고 너무 살이 찌고 위에 탈이 나서야 내가 좀 피곤했구나 스트레스가 많았구나라고 뒤늦게 깨달을 뿐이다. 오히려 주변에서 "그때 힘들지 않았어?" 이렇게 물어보면 지나고 나서야 그때 힘들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유유상종인지 내 주변에는 나보다 더 힘든 상황에도 씩씩하게 표현하지 않고 해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뭐가 힘들다고 엄살을 부려'라는 생각이 있었다.
마음에 걸린 가시 주변에 상처가 나고 곪아있던 자리를 차분히 들여다보고 그 가시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일이 꼭 필요했다. 그래서 그 가시를 빼내고 이것 때문이었다는 걸 나에게 이해시키고 버리면 금방 회복될 수 있었는데 가시가 박히지 않은 척하며 살았다. 임시방편으로 약을 바르고 상처를 덮어두고 괜찮은 척을 했다. 그걸 바라보고 빼내는 순간 너무 아프겠지만 빼내야 낫는다. 나를 돌본다는 게 그런 거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나를 돌보는 일을 할 줄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다 내 선택으로 하는 행위들이라 나를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나에게도 시간과 관심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걸, 산다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잘 키우는 일이라는 걸 몰랐다. 늘 밖에서의 활동과 인간관계를 잘해나가는 일에만 신경 쓰고 성공이나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에만 골몰했었던 거 같다. 나를 알고 잘 키우는 일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자아실현이라는 말의 의미가 세속적 성공이나 직업을 찾는 일이 아니라 본연의 나를 찾고 진정한 내면의 소리에 따라 잘 살아나가는 일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동안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키우고 좋아하는 직업도 있었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며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심에 있어야 할 나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 외부에서 부여하는 기준과 사람들이 좋다는 것들이 당연히 나에게도 좋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육아서도 읽어보고 고민한 만큼의 반의 반도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고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남들이 가는 길로 따라갔다. 내 인생의 방관자로 살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고민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 그런 일들이 주는 압력을 피하기 바빴다. 빨리 결정 내리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어려운 상황을 피하려고만 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는 나를 내 아이처럼 아끼고 관심 갖고 잘 키워보려고 한다.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면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곁에 오래 두지 않았을 거고 아닌걸 아니라고 항변할 줄 알았을 거다. 난 늘 남보다 자신을 의심하고 내가 문제가 있겠지라고 생각한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그래서 우선 내가 고치려 하고 상대에게 맞춰주는 식으로 관계를 맺어왔다. 자기 확신이 부족했다.
상대방의 이기적인 요구나 나를 잘 알지 못하고 하는 말들, 안다고 해도 굳이 남에게 지적질당해야 할 이유가 없는 나를 규정하는 이야기들을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참아왔다. 비굴하게 변명하고 그게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맘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럴 필요 없었다. 그런 무례한 사람들과 힘든 관계를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아이가 그런 친구를 만나고 있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했을 텐데 난 왜 그랬을까?
나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하듯이 나에게 독이 되는 관계는 끊어버리는 게 맞는 일이다. 내가 참아야 하고 즐겁지 않은 관계를 이어가느니 혼자 지내는 편이 훨씬 낫다.
이제야 삶이 편안하다. 내가 나를 잘 알아나갈수록 삶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는 거 같다. 내 마음의 소리를 믿고 나를 의심하지 않고 나를 가장 우위에 두고 살아나가야겠다. 그건 이기적이거나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나를 무시한 채 남에게 휘둘리며 살아온 삶은 허무하고 의미 없었다. 사소한 것은 양보하고 대세에 따르고 배려할 수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나의 내면의 소리를 믿고 따르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 반대로 살아온 거 같다. 사소한 일에는 삐지고 짜증 내고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결정이나 선택은 남들이 하는 대로 주변에서 더 좋다고 하는 것을 따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