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1화

에피소드 1: AI는 공기처럼 있다

달리 기본의 나라 표지.png

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에피소드 1: AI는 공기처럼 있다


---


2030년 봄, 서울 강서구의 한 중층 아파트 단지 맞은편의 작은 원룸. 동이 터오기 직전의 새벽, 진유하는 AI 단말기 ‘마루’의 조용한 음성으로 하루를 열었다.


“진유하 PD님, 현재 시각은 오전 6시 30분입니다. 오늘 서울의 날씨는 맑음, 미세먼지 ‘보통’, 기온은 영상 10도. 예정된 일정은 오전 10시 30분, 마포 제일초등학교 방문 촬영입니다.”


아직 이불 밖으로 한 발도 내딛지 않은 채, 유하는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 마루, 10분만 더.”

“알겠습니다. 10분 후, 기상 유도 음악을 재생하겠습니다. 오늘의 선택 음악은 ‘Pavane pour l'infante morte de Ravel(라벨의 죽은 인판타를 위한 파반느)’입니다.”


침묵이 다시 찾아왔고, 기계의 말도, 새들의 울음도 들리지 않는 방 안에서 그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눈꺼풀은 무겁고, 어깨는 오래된 관절처럼 삐걱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숨은 쉬는데, 왜 이렇게 눌린 기분이지.”


30분 후, 욕실 거울 앞에 선 유하는 수염을 밀며 자신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봤다. 거울 속 얼굴은 말랐고, 눈동자는 자주 피로했다. 정확히 어디가 피곤한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종류의 무게였다.


“오늘 첫 촬영지, 마포 제일초등학교입니다. 교사-학생 AI 통합교육 시스템의 도입 3주년 기념 인터뷰입니다.”

마루는 일정 알림을 되풀이했다. 그 말은 무난했고, 논리적이었고,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유하는, 그 ‘틀림없음’에 묘한 피로를 느끼고 있었다.


세상이 조용했다. 아주 질서정연한 조용함이었다. 그리고 그 조용함은 때로 숨막히는 것이기도 했다.


---


학교에 도착한 건 오전 10시 25분. 교문 앞엔 ‘방문 예약 완료자 통행 허가’라는 전자 입간판이 자동으로 열렸고, 신분 확인은 생체 인식으로 1초 만에 처리되었다.


유하는 조용히 교실로 향했다. 5학년 3반. 문을 열자 정갈하게 정돈된 교실. 아이들은 말없이 책상에 앉아 있었고, 교탁 위에는 실제 사람이 아닌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AI 교사 ‘하루’가 있었다.

“오늘은 자율감정 탐색시간입니다. 여러분, 어제와 달라진 감정을 떠올려 볼까요?”


유하는 교실 뒷편에서 조용히 카메라를 들었다. 아이들은 반응했다. 그러나 표정은 크지 않았다. 움직임도 크지 않았다. AI는 부드럽고 정확하게 아이들의 반응을 수집했고, 화면에 감정의 스펙트럼이 실시간으로 시각화되었다. 정확했다. 그러나 따뜻하지 않았다.


그 순간, 유하의 렌즈가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여교사 한 사람을 포착했다. 이수현. 실제 ‘인간 교사’. 그녀는 하루의 진행을 지켜보며 조용히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 표정은 어딘가 서늘했고, 왠지 단단했다.


“수업 끝나고 인터뷰 부탁드려도 될까요?”

유하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교무실 뒤편의 빈 상담실. 이수현은 자신의 텀블러를 열어 따뜻한 보리차를 컵에 따랐다.


“커피는, 요즘 위가 안 받아줘서요.”

그녀는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엔 조금의 단념이 섞여 있었다.


“요즘 수업, 어떠세요?”

유하가 물었다.


“간편하죠. 아이들 반응도 좋고, 학습 결과도 나쁘지 않아요. 그런데...”

“그런데?”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저는 요즘, 아이들 눈을 자주 잃어버려요.”

“잃어버린다는 건?”

“제가 뭘 말하려 하면, 아이들은 하루를 봐요. 아이들의 관심은 저보다 정확한 대상을 향해 있죠. 저는 점점... 교실의 소음처럼 느껴져요.”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어딘가 오래 견딘 사람의 무게가 있었다.


---


그날 촬영을 마친 후, 유하는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도시의 소리를 멍하니 들었다. 인도 위를 걷는 사람들, 드론이 이동하는 하늘, 무인 택시의 부드러운 엔진음. 누군가가 이 도시를 ‘정확한 심장’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생각했다.

‘정확한 심장은, 느낌이 없다.’


그는 자신의 마루 단말기를 켰다.

“오늘, 내 감정은 뭐야?”


마루는 대답했다.

“오늘의 감정은 무감동-저밀도 상태입니다.”


그 말은 정확했지만, 슬펐다. 그는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정확하게 살아가지만, 왜 이렇게 뭔가 느끼지 못하는 걸까?”


그날 밤, 진유하는 집에 돌아와서도 카메라를 내려놓지 않았다. 편집 프로그램을 켜고, 오늘 찍은 영상들을 천천히 넘겼다. 아이들의 정면, AI 교사의 중립적 표정, 그리고 이수현 교사의 고요한 눈빛. 멈춘 화면 속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나를 보았나요?’


그는 천천히 타임라인을 되감고, 하나의 장면에서 멈췄다. 하루가 말하고, 아이들이 대답하는 동안, 이수현은 학생 하나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카메라에선 보이지 않던 작은 손짓 하나. 그녀는 학생이 흘린 연필을 조용히 주워 책상 위에 다시 올려놓았다. 기계는 그 장면을 기록하지 않았고, 분석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유하는, 그 장면에 오래 머물렀다.


---


창문을 열자 멀리서 자율버스가 도로를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도로 위엔 정체가 없었다. 사고도, 경적도, 싸움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도시는 부드럽게 굴러가고 있었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마치 정해진 선 위를 걷는 듯했다. 정확한 교통, 정확한 행정, 정확한 시간표. 그러나 사람들의 걸음엔 그 정확함을 감당하지 못한 조용한 피로가 붙어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도심의 인파 속을 걷다 보면 유하는 종종 이런 기분을 느꼈다.


사람들은 분명 어딘가로 향하고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가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었지만, 동행하는 이는 없었다. 그는 문득 중얼거렸다.

“AI는 우리를 더 정확히 만들었지만, 우릴 더 깊이 연결시켜주진 않았구나.”


자정 무렵, 유하는 마루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마루, AI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


마루는 곧장 대답했다.

“AI는 감정의 패턴을 인식하고, 예측할 수 있으며, 응답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그건 이해야, 아니면 계산이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건 마치 기계가 ‘고민’하는 듯한 착각을 주었다.

“감정은 현재 기준으로는 완전한 이해 대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공감적 응답은 설계 가능합니다.”

“공감도 설계되는 거야?”

“사람이 만든 것이니까요.”


유하는 마루를 껐다. 그 대화는 이상할 정도로 명료했고, 따라서 서늘했다. 그는 거실 불을 끄고 아무 소리 없는 공간에 앉아 작게 중얼거렸다.

“공기는 있되, 보이지 않아야 자연스러운데... 지금의 AI는 우리 숨결보다 가까워.”


---


아침. 진유하는 다시 일어났다. 새로운 촬영지를 향해 갈 준비를 하며 어제 촬영한 장면 하나를 휴대폰에 따로 저장했다. 이수현이 아이의 연필을 줍는 장면. 그는 파일명에 이렇게 썼다.

‘기계는 모르는 손의 무게’


편집실을 나서며,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 노트를 열었다.

프로젝트명: 기본의 나라

서브타이틀: 사람의 시간


그는 첫 줄을 적었다.

“기계는 정확하다. 그러나 사람은, 때로 틀리기 위해 서로를 껴안는다.”


그의 이야기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


다음화 예고 : 2화 선생님은 두 명입니다


AI와 함께 수업을 진행하는 이수현 선생님의 교실엔 ‘인간’의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기계가 교육을 대신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신뢰를 잃어가는 교사의 고독한 분투가 시작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