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선생님은 두 명입니다
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에피소드 2: 선생님은 두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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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마포 제일초등학교, 5학년 3반 교실. 창밖으로 막 연둣빛이 번지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교실 특유의 아침 공기, 아이들의 몸에서 아직 빠져나가지 않은 잠기운, 가방 속 간식 봉지의 비닐 냄새, 바닥에 잔잔히 반사되는 형광등 불빛.
그 사이, 진유하는 한쪽 구석에 삼각대를 세우고 있었다. 그는 숨소리까지 녹음할 수 있는 지향성 마이크를 연결하며 다시 한번 메모를 확인했다.
“촬영 목적: 교사-AI 협업 수업 모델 사례 기록. 인터뷰 대상: 인간 교사 이수현. 촬영 시 유의사항: 아이들 얼굴 클로즈업 자제. 하루(HARU) 인식 LED 위치 고정.”
촬영 시작 5분 전, 교실 정면에 설치된 대형 패널이 서서히 점등되었다. 공간 전체에 낯선 생기가 돌았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의자에 앉아 정렬되었고, 그 순간, AI 교사 하루가 나타났다.
하루는 남녀의 구분이 없는 중성적 외형을 지녔다. 청량한 파란색 목소리, 인간의 눈높이에 맞춘 적당한 키, 부드러운 표정 근육이 이질감이 없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5학년 3반 여러분.”
하루의 인사에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오늘 수업 주제는 ‘감정의 온도’입니다.”
마루가 화면에 띄운 키워드는 세 가지였다.
‘어제 내가 느낀 감정은?’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나요?’
‘감정에도 온도가 있을까요?’
아이들 앞 책상 위엔 각자의 AI 단말기가 놓여 있었고, 정확하게 조율된 목소리로 하루는 질문을 던졌다.
그 교실의 뒤편, 이수현 교사는 말없이 서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연한 회색 가디건에 검정 바지, 머리는 단정한 반묶음, 그리고 발은 마루 바닥에 고정시키고 움직이지 않았다. 유하는 카메라를 그녀 쪽으로 천천히 옮겼다. 교실 한가운데선 하루가 질문하고 있었고, 앞자리에 앉은 서윤이 손을 들었다.
“저는요... 어제 속상했어요.”
“왜 속상했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나요?”
“엄마가 저녁에 너무 피곤해서 말이 없었어요.”
하루는 반응했다.
“서윤이가 느꼈던 감정은 ‘단절’ 혹은 ‘기대와 어긋남’일 수 있어요. 그 감정은 자연스럽고, 중요한 감정이에요.”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반응 속엔 이해보다 ‘습득’의 기색이 더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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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 아이들은 각자 단말기 속 ‘감정 일기장’에 짧은 글을 쓰고 있었다. 누군가는 이모지를, 누군가는 단어 몇 개를 붙여서 감정을 저장했다.
“선생님, 슬펐을 땐 이 색깔 맞죠?”
“하루 선생님이 이 색이랑 어울린다고 했어요.”
이수현은 미소로 답했다. 그러나 눈동자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횟수는 하루의 음성보다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아이들은 자신보다 기계를 먼저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끔, 내가 그냥 감정 교정기의 ‘보조자’ 같아요.”
수업 후 인터뷰에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카메라 앞에 계신 건 불편하시진 않으세요?”
“괜찮아요. 요즘엔 제 표정보다는 하루의 반응이 더 중요한 시대잖아요.”
그녀는 처음엔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그 웃음 뒤편에 오래 쌓여 있던 무게를 꺼내는 듯했다.
“처음엔 하루를 믿었어요. 아이들 감정도 더 잘 읽고, 어휘도 풍부하고, 무례하지 않죠. 그런데요?”
그녀는 마시던 보리차 잔을 내려놓았다.
“아이들이 저를 ‘기다리지’ 않아요. 그게 가장 무서워요. 예전엔 제가 말할 때, 아이들이 기다려줬거든요. 이젠 제가 멈추면, 하루가 이어서 해줘요. 저는 ‘잠시 멈춘’ 게 아니라, ‘지워지는 중’인 것 같아요.”
유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카메라 너머의 풍경이 무겁게 흔들리는 듯했다.
그날 밤, 진유하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녹음된 인터뷰를 다시 들었다. 이수현의 목소리는 단정했지만, 그 안에 담긴 결은 ‘사람이 한때는 누군가였고, 이제는 누군가의 그림자’라는 것을 차분하게 수용하고 있는 사람의 소리였다.
‘기계는 빈틈이 없고, 사람은 빈틈으로 숨을 쉰다.’
그 문장이 그의 수첩 한가운데를 채웠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이 문장을 큰따옴표로 묶어 새 프로젝트의 제목으로 적었다.
“두 번째 선생님: 빈틈으로 아이들을 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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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은 다음 수업 준비를 하며 하루가 출력한 감정그래프를 내려다봤다. 아이들의 이름 옆엔 ‘슬픔’, ‘기대’, ‘피곤함’, ‘안정’ 같은 단어들이 정확하게 붙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그것을 덮고, 자신의 공책을 열었다. 거기엔 오늘 수업 도중 서윤이의 미세한 한숨, 민재의 공책에 나타난 손글씨 떨림, 하윤이가 말을 꺼내다 삼킨 순간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기계는 보지 못했고, 그녀는 듣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교실 한복판이 아닌 그림자에 남아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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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 3화 민원창구의 미소
AI 민원 행정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며, 사람의 얼굴을 본 지 오래된 공무원 ‘정호진’의 일상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 정확하지만 말 없는 서비스, 그 속에서 잊혀지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과 시스템 사이의 벽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