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3화

에피소드 3: 민원창구의 미소

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에피소드 3: 민원창구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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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 서울 서대문구청 민원실. 오전 9시 정각. 출입구 센서가 부드럽게 열리고, 은은한 음악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민원인 만족도 평균 94.7% 달성’

‘무인 민원처리율 전국 1위’


이곳은 더 이상 줄이 서지 않는 청사였고, 누구의 고성이 오가지 않는 장소였다. 그 대신 사람들은 조용히 무인 단말기 앞에 섰고, 정확하게 안내된 경로에 따라 몇 번의 터치만으로 민원을 해결했다. 정확하고 빠르며 실수 없는 행정. 모두가 그것을 원했고, 이제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모든 조용한 시스템의 뒤편에 한 남자가 있었다. 정호진. 63세, 민원행정 전담 팀장 출신. 지금은 ‘민원 지원 감시 보조관’이라는 어딘지 모호한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일 아침 8시 45분에 출근했다. 습관처럼 말끔한 셔츠에 남색 조끼를 걸쳤고, 구청 1층 가장 구석진 책상에 앉았다. 창구는 없었다. 전화도 없었다. 그의 주요 업무는 AI 민원 단말기의 정기 오류 감시, 민원 만족도 응답률 검토, 노인 및 외국인 응대 시 보조 동행 가능 여부 판단 등이었다.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은 AI 시스템의 로그를 읽어내는 30분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7시간 30분은 대체로 조용했다.


“오늘도 고장 난 단말기는 없네요.”

그는 스스로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그의 책상 위엔 종이 일기장이 놓여 있었다. 그는 종종 그 안에 짧은 문장을 적었다.

“나는 오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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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구청으로 들어왔다. 진유하. 기본사회 5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인 PD였다.


“정호진 선생님이 맞으신가요?”

“네. ‘호진씨’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그는 조용히 웃었다.


“촬영을 해도 괜찮을까요?”

“네. 카메라가 조용히 있다면, 저도 조용히 있으니까요.”


카메라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용한 민원실의 움직임,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 민원인들, 단말기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노인의 모습. 그리고 창구 뒤 가장자리에 앉아, 누구보다 조용히 이 시스템을 지켜보는 정호진의 뒷모습. 그 장면은 설명 없이도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촬영 후 인터뷰. 진유하는 물었다.

“AI 시스템이 도입되고 나서, 어떤 점이 달라지셨나요?”


정호진은 잠시 생각했다.

“불만이 줄었어요. 항의도 사라졌죠. 무표정한 얼굴들이 많아졌고, 사람 대신 기계가 감정을 정리해줬죠.”


“좋은 변화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나쁠 건 없어요. 그런데 가끔은, 불편한 얼굴 하나 없다는 게 더 무섭더라고요.”

“무섭다고요?”

“네. 저는 사람들의 불편한 얼굴 덕분에 제 일이 존재한다는 걸 느꼈거든요. 지금은... 제 자리만 남아 있어요. 저는,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지 그 자리에 ‘필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 말은, 쓸쓸했지만 단정했고, 오히려 더 명료했다.


그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 유하에게 보여줬다. 20년 전, 민원창구 앞에서 자신과 민원인이 함께 웃고 있는 모습.

“이 분, 자주 오셨는데... 창구 오기 전에 항상 외투를 벗고 정리하고 오셨어요. ‘공무원 앞에서는 예의 지켜야 한다’고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요즘엔... 민원인들이 저를 못 알아봐요. 저는 단지, 화면 속 ‘무표정한 사람’일 뿐이죠.”


그날 오후, 복도에서 80대 노인이 길을 헤매고 있었다.

“이, 이거 어디서 하는 건가요? 아들놈이 서류 떼오라 했는데... 난 이게...”


정호진은 조용히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노인은 고개를 들었고, 오랜만에 누군가의 미소를 마주했다.


그날 저녁, 정호진은 일기장에 적었다.


“오늘 하루, 내 이름이 불렸다. 그것만으로 나는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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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진유하는 영상을 편집했다. 정호진이 단말기 뒤에 앉아 조용히 웃고 있는 장면. 그의 손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기록지 한 장이 들려 있었고, 그는 한 노인의 이름을, 또박또박 입력하고 있었다. 그는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민원창구의 미소, 말이 사라진 공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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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 4화 기본가정 실험마을


AI 육아돌봄 시범지구로 지정된 ‘기본가정 실험마을’에서는 맞벌이 부부와 AI가 함께 아이를 키운다. 하지만 아이의 웃음은 진짜일까? 가정의 의미가 재정의되는 사회에서, ‘부모’라는 존재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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