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4화

에피소드 4: 기본가정 실험마을

AI시대 2030 대한민국 - 기본의 나라


에피소드 4: 기본가정 실험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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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강선마을 3단지 A블록. 정문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기본가정 실험마을. 당신의 육아, 함께 돌보겠습니다.”


국가 주도로 운영되는 AI 기반 돌봄 특화형 주거단지. 전 세대는 맞벌이 가정으로 구성되어 있고, 아이당 1대의 돌봄 AI '마루 키즈케어'가 보급되어 있다. 수면, 식사, 정서 모니터링, 응급 상황 대응까지 ‘돌봄의 자동화’가 일상화된 공간. 이 마을에선 ‘육아’가 아닌 ‘관리’가 주된 언어였다.


정윤서는 UX 디자이너였다. 출퇴근은 엘리베이터로 45초, 직장은 단지 내 공유오피스 ‘워크존 3호관’. 그녀의 하루는 정돈되어 있었다.


아침 8시 20분, 아들 지안은 AI 돌봄봇 ‘마루 케어-K’와 인사한다.

“지안아, 오늘은 노란 공룡 티셔츠 어때요?”

“응! 노랑이 좋아.”


옷을 입히는 건 마루였고, 체온을 체크하고, 아침식사로 샐러드볼을 준비하는 것도 마루였다. 윤서는 출근 전, 단 한 마디만 했다.

“지안아, 오늘도 잘 지내. 마루 말 잘 듣고.”


그 말 속엔 따뜻함도 있었지만, 피로와 자동화된 죄책감도 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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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PD 진유하가 이 마을에 도착한 건 오후 2시. 하늘은 환했고, 아이들은 조용히 키즈존에서 놀고 있었다. 모래놀이터엔 마루봇이 네 대 배치되어 있었다. 하나는 기분 분석 중, 하나는 놀이 피드백 중, 다른 둘은 주변 온도와 자외선 수치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 아이들은 정확하게 웃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았고, 다투지 않았다. 그 풍경은 정확히 ‘관리된 이상’이었다.


진유하는 윤서를 인터뷰했다.

“편하겠어요.”

“네. 정말, 편해요. 지금 이 시스템 없으면 아마 회사도 못 다녔을 거예요.”

“아이는 어떻게 느끼는 것 같아요?”


그 질문에 윤서는 잠시 멈췄다.

“지안이는 잘 지내요. 감정 로그도 안정적이고, 밤에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 그런데요?”

“문득, 이 아이가 진짜 ‘어딘가에 속한 느낌’을 가질까, 생각하게 돼요. 저 없이도 너무 잘 지내니까.”


그녀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지안이 혼자 앉아 블록을 쌓고 있었고, 마루봇은 칭찬 멘트를 반복하고 있었다.

“완벽해요, 지안. 당신은 훌륭하게 조립했어요.”


그날 저녁, 지안은 식사 중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윤서는 스푼을 들고 앉아 지안을 바라보았다.

“지안아, 오늘은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


지안은 고개를 기울였고, 마루가 대답했다.

“오늘 지안이는 블록 시간에 기쁨지수 87%를 기록했어요. ‘성취-놀이형 정서’ 반응입니다.”


윤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대답은 그녀에게 무엇도 가르쳐주지 못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지안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는 엄마가 되어버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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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남편 장도영이 출장에서 돌아왔다. 대기업 전략기획팀 과장, 주중엔 얼굴 보기 힘들고, 지안의 생일도 종종 마루의 알림으로 기억하는 아버지.

“지안이 어때?”

“괜찮아. 마루가 일지 정리해줬어.”


그는 태블릿에 띄워진 보고서를 훑었다.

“근데 가끔... 이 녀석이 나랑 진짜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는지 잘 모르겠어.”

“당신도 그렇구나. 나도 그래.”


그날 밤, 둘은 말없이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잠들었다. 그들 사이엔 정리된 육아와 정리되지 않은 거리감이 놓여 있었다.


며칠 후, 지안이 처음으로 말을 거부하는 장면이 발생했다. 아침에 마루가 말했다.

“지안, 일어나요. 오늘은 노란 티셔츠 어때요?”


지안은 베개를 끌어안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싫어. 마루 말 듣기 싫어.”


윤서와 도영은 그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놀랐다.


그날 밤, 지안은 엄마 품에 안겨 말했다.

“마루는 항상 똑같아. 나... 그냥, 안 그러고 싶어.”


그 말은 짧았지만, 둘에게 깊게 꽂혔다.


그날 이후, 윤서는 시간을 조금 조정했다. 출근 전 15분, 지안과 같이 그림책을 읽었다. 도영은 토요일 오전, 지안과 함께 장을 보러 갔다. 그 시간 동안, 마루는 대기모드였다. 아이의 말은 서툴렀지만, 서툴러서 아름다웠다. 윤서는 일기장에 썼다.

“기계는 울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는 울 때 사랑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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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유하는 그 가족의 변화를 담았다. 마루의 데이터가 멈췄을 때, 비로소 살아 있는 표정이 시작된 풍경. 다큐멘터리의 클로징 장면엔 지안이 엄마에게 안겨 조용히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오늘은 마루보다 엄마가 더 좋았어.”


그 장면은, AI 시대의 돌봄이 다시 ‘사람에게’ 되돌아오는 시작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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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예고 : 5화 AI와 함께한 고3의 봄


입시 대신 적성 기반 AI 이력서 시스템이 도입된 교육 현장. 한 고3 학생은 AI가 작성한 ‘미래 예측 보고서’를 받아든다. 꿈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라, 확률로 제시된다. 그는 과연 자신의 가능성을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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