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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May 16. 2018

연필 깎기와 장인이 된다는 것

데이비드 리스 -『연필 깎기의 정석』

 연필 깎기가 뭐?


  책을 추천받고 불현듯 흘러나온 대답이었다. 왜 하필 연필 깎기일까? 의구심은 책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증폭했다. 고객의 증언, 그에게 연필 깎기를 맡긴 사람들이 남긴 한마디가 담겨 있었다. 건설업자부터 작가, 심지어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까지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한 작가는 작가가 연필 깎는 행위를 다른 차원으로 바꾸어 놓는다고 평할 정도였다. 왜 이들은 작가에게 연필 깎기를 부탁한 것일까. 시중에는 연필깎이가 널려 있고 굳이 연필이 아니어도 대체할 물건을 널려있지 않은가. 나의 의문은 아래의 문장에서 폭발할 지경이었다.

불교 신자나 그 밖에 어떤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그렇듯 리스씨는 가장 보잘것없는 일이 때로는 가장 심오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연필 깎기와 깨달음이 같은 선상에 놓일 수 있을까. 연필 깎기에서 심오함을 찾을 수 있을까. 책을 모두 읽고 난 뒤 나는 추천사가 유효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장에서 작가는 연필 깎기를 위한 준비물을 소개한다. 연필 깎기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것부터 사포와 줄, 확대경, 심지어는 고객에게 보낼 인증서까지. 1장을 읽는 것으로 독자는 작가의 자세가 누구보다도 진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단순히 연필 깎는 방법을 소개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연필을 깎았다는 인증서까지 보내는 '장인'인 것이다. 그는 2장에서 연필의 부위별 명칭과 연필 촉의 유형을 소개한 뒤에야 3장으로 넘어선다. 이쯤 되면 독자는 내가 알고 있는 '연필'과 작가가 바라보는 '연필'이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우리는 연필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메모를 할 때 사용하고, 바닥에 떨어지면 부러지고, 깎아서 써야 하는 불편함을 가진 그것. 우리가 연필을 바라보는 시선은 용도와 형태에 그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오랜 시간 깊게 바라본 적이 없다. 이 지점에서 작가와 연필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연필을 깎을 때 확대경까지 쓰며 그 촉에 공을 들이지 않는다. 연필 깎기를 마친 뒤 그 날의 연필 깎기가 성공한 행위였는지 자평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가 하지 않는 이 모든 일들을 '하는' 사람이다.


  2장에서 작가가 연필의 명칭을 하나하나 소중히  다루는 모습에서. 연필 촉의 형태마저 유형을 나누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오랜 시간 '연필'과 함께했음을 느낀다. 그에게 연필을 깎는 일은 충분한 공을 들여야 하는 행위다. 자신의 이름을 건 '인증서'를 발행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연필에 한해 그는 스스로가 인정한 '장인'인 것이다.


  작가는 이제 연필 깎기를 다루기 전 중요한 의식을 거행한다. 그것은 몸을 푸는 일이다. 어떤 이는 왜 연필을 깎는 일에 몸까지 풀어야 하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엄연히 연필을 깎는 행위는 몸을 쓰는 일이며 이는 손목터널 증후군을 앓는 어느 기타리스트나 골프 선수와 다름없음을 말한다. 그는 단순히 연필 깎기를 한 번으로 끝내는 사람이 아니다. 기타리스트와 골프 선수가 원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몇 번이고 연습을 거듭하는 거처럼 그 역시 연필 깎기를 위해 그만큼의 시간과 공을 들인다. 그렇기에 몸을 푸는 일은 필수적인 것이다.




  본격적인 연필 깎기가 소개되는 것은 4장부터다. 4장을 시작으로 작가는 우리에게 다양한 연필 깎는 방법을 소개한다. 때로는 주머니칼로, 휴대용 연필깎이로, 우리가 흔히 쓰는 연필깎이 조차도 원리와 방식에 나누어 세밀히 다룬다. 그의 소개 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연필깎이의 역사가 흐르고 때로는 우리가 연필을 깎던 어린 시절의 그날을 포착한다. 우리는 문장 속에서 연필을 깎으며 그가 깨달은 현실의 문장을 발견한다. 폼을 잡지 않고 정직하게. 문장은 곳곳에 박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연필 깎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무엇을 바라볼 것인지. 다구형 연필깎이를 소개할 때 그는 불현듯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반면에 이 '마무리용 칼날'은 흑연 전용이고, 따라서 '초벌용 칼날'로 깎을 때처럼 나무가 길게 이어져 나오리라고 예상했다가는 잠시 혼란을 겪을 것이다. 띠처럼 생긴 연필 밥은 사실 아까 이미 다 나와버렸다는 걸 기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 게 인생이다. 영원히 계속되는 행진은 없다. 이제 연필깎이의 가느다란 틈 사이로 나오는 건 흑연 가루뿐이다. 그렇지만 이 부산물은 비록 매력은 덜할지라도 우리의 원대한 계획을 위해 너무나 중대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결코 폄하될 수 없다.


  다구형 연필깎이는 하나의 구멍이 아닌 여러 구멍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구멍으로 연필 깎기가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구멍을 거쳐 뾰족한 형태를 갖추는 것이다. 그렇기에 마무리용 칼날을 사용할 때 초보자는 혼란에 빠진다. 어째서 띠 형태의 연필 밥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익숙함을 벗어날 때 자주 삐걱거린다.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단계에 안주한다. 그 결과 마무리용 칼날이 흑연 가루용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한참을 돌리고 연필심이 형태를 갖춘 뒤에야 우리는 깨닫는다.

  마무리용 칼날이 흑연용이었구나.  

  작가는 연필깎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연필을 깎는 방법,  다양한 자세와 상황에서 연필을 깎는 모습을 소개한다. 연필깎이를 보지 않고 사용하기도 하고, 폭포 속에서 깎기도 하고 심지어는 이빨로도 깎는다. 그의 행위를 보고 있자면 엉뚱하다고 느끼던 마음이 어느새 경이롭다는 생각까지 도달한다.


  작가는 연필을 깎는 일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가 여러 도구를 거쳐 자신의 길을 개척했던 순간만큼의 다른 자극. 그 자극은 도구가 아닌 '방법'을 바꾸는 일로 가능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엉뚱하다고 여길지라도. 익숙한 것에 새로운 행동을 덧붙이는 일은 모험 그 자체다. 그 모험에서 우리는 불현듯 값진 체험을 얻다. 체험이 쌓이다 보면 더 큰 자극을 찾아 움직인다. 자극이 만든 체험이 행위를 완성하는 하나의 필수요소처럼 자리 잡는다. 자극에 집착하는 일을 경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본질을 잃고 그저 '진기함'을 추구하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방법을 소개하면서도 이 부분을 경계하며 조언한다.


여기서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리 예사롭지 않은 환경에서 연필을 깎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해 작업에 임하라는 것이다. 폭포수 아래든, 질주하는 버스 안이든, 동굴 속이든 간에 항상 작업대 앞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고 연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게 장인의 마땅한 자세다. 진기함의 추구는 해이해진 장인 정신에 대한 변명이 결코 될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만약 진기한 연필 깎기 기술을 수준 이하의 결과물과 연관 짓기 시작한다면, 모든 획기적인 시도 전체가 냉소를 받고 침몰할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나는 자주 유혹에 빠진다. 누군가의 잘 쓴 글을 보며 스스로의 방법을 바꾸려는 것이다. 쓰지 않던 기교에 힘을 쓰거나 어색한 화법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글의 본질을 놓친 채 형태와 방법에 치중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편협해진 글을 앞에 두고 결국 나는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그의 당부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그 진실을 깨달았다.


  몰두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연필 깎기의 장인에게서 우리는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일에 몰두하는 것처럼 그는 연필 깎기에 몰두하는 사람이다. 그가 누군가에게 연필을 깎아주며 인증서를 내밀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는 그 행위에 자신의 '장인정신'을 발휘한 것일 테니까. 불현듯 나는 그런 생각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왜 그는 '연필 깎기'에 몰두하게 된 것일까.


 우리는 모든 연필 촉에 수반되는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법을, 아니 어쩌면 더 나아가 향유하는 법까지도 배워야만 하고, 그러면서도 이상적인 형태를 향해 계속 정진해야 한다. 이는 인생의 공허함을 인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세상일은 어찌 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각자가 놓인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잘 생각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으며 그러면서도 현 상황을 개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연필 깎기 속의 불확실성과 불완전성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향유하는 법까지 배워야 한다고. 그의 말속에서 나는 왜 그가 마지막 챕터에 '마음으로 연필 깎기'를 소개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연필 깎기를 마음으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칼을 쥐고 연필을 깎는 행위 대신 입을 닫고 사색하는 시간에 대해 털어놓는다. 어떤 행위에 장인이 된다는 것은 곧 자신만의 '생각'에 도달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연필 깎기 장인으로서가 아니라 같은 인간으로서 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니 부디 새겨듣기 바란다.
  타협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완벽성은 오직 마음가짐과 노력의 완벽성뿐이다. 능력이 닿는 한 최고의 연필 깎기 전문가가 되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적절히 대책을 세워나간다면, 결과적으로 따졌을 때 다른 모든 부분은 용서될 것이라 확신해도 좋다.
나는 이러한 생각으로 모든 심리적 문제를 극복해왔다.


  우리는 완벽함에 몰두한다. 사실 그렇게 배웠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완벽한 것에 대해 물어본 다면 아마 우리는 어디선가 들었던 기준을 나열할 것이다. 그렇게 현실이 세워진 기준 속에서 '완벽'해질 수 없는 우리는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작가는 말한다. 타협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완벽성은 오직 마음가짐과 노력의 완벽성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 그것이 연필 깎기를 통해 그가 도달한 생각일 것이다.




- 연필 깎기의 정석_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 데이비드 리스, 정은주 옮김, 프로파간다

- 당신의 '연필'을 찾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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