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모린 May 29. 2018

환상을 받치는 실감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 도입부의 실감


  한 남자가 운전을 하고 있다. 빨간불.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른 차들이 그러하듯 남자 역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다. 파란불이 되어도 움직이지 않는 차. 불만이 가득한 경적 소리가 공간을 메운다. 그곳에는 처음으로 눈이 먼 남자가 있었다. 시력이 나쁜 것도 아닌데 하필 그 순간 갑자기 남자의 눈은 멀어버렸다. 소설의 시선은 처음으로 눈이 멀어버린 남자의 앞에 선다. 갑자기 멀어버린 눈에 대해 남자는 어둠이 아닌 새하얀 빛이 온 시야를 삼켜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에 생각과는 다르게 남자의 눈은, 그의 시야는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그는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는다. 어떤 부분도 손상되지 않은 정상적인 상태. 원인을 알 수 없는 실명. 의사는 애써 남자에게 방법을 찾으려면 보다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단 한 사람의 불행으로 느껴지는 순간 실명은 전염병처럼 그와 접촉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퍼진다. 하필 그들 중에 그를 진찰했던 의사 역시 눈이 멀어버렸고 그는 의사적 소명을 다하고자 보건당국에 이 사실을 알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염. 두 가지 요건 만으로도 원인을 알 수 없는 그 '실명'은 '전염되지 않은 사람'들의 공포를 샀다. 그들은 곧 '눈이 먼 사람들'을 격리하기 시작한다.



  도입부에서 작가는 ‘눈이 멀었다’라는 설정을 공고히 하기 위해 단계를 밟는다. 이야기 속에서 주된 활약을 하는 주인공이 아닌 처음으로 눈이 먼 남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로 인해 독자는 소설 속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을 인식한다. 실제로 눈이 멀었을 때의 '어둠'이 아닌 '모든 것이 새하얀' 실명. 독자는 작가가 설정한 세계로 빠르게 건너간다. 소설의 세계는 지극히 환상적인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독자는 어째서인지 그 실명이 현실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의사를 통해 작가는 현실을 놓치지 않는다. 환상을 붙잡기 위한 장치를 덧붙인다. 눈은 정상적이지만 눈이 멀어버린 상태. 접촉했던 사람들이 눈이 멀고 있다는 전염성.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판단이 환상과 현실 사이를 받치고 있다. 병은 실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마치 그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감을 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눈이 먼 남자와 접촉했던 도둑, 의사, 병원의 환자들이 눈이 멀면서 독자는 작가의 환상에 압도된다. 작가는 눈이 멀었다는 환상을 구축하기 위해 지극히 현실적인 서술을 끌어와 독자에게 그것이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든 것이다.      




- 시점을 통한 실감


  작가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초반부에서는 인물이 처음으로 눈이 먼 남자와 접촉한 뒤 어떤 상황에서 눈이 멀게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인물들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전지적 작가 시점이나 인물들에게 밀접한 것이 아닌 거리를 두고 있다. 이름이 아닌 각 인물의 특징을 명칭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는 실제 격리된 인물들이 선택한 서로를 부르는 방식과 일치한다. 격리된 현실 속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다. 그저 서로를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이 필요할 뿐이다.



  격리가 된 이후 작가는 유일하게 그 현장을 볼 수 있는 ‘의사의 아내’에 집중하게 된다. 이때부터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을 하고 있으면서도 유일하게 이 모든 것을 목격할 수 있는 아내의 시선을 따라간다. 눈이 먼 사람들이 사이 그녀는 모든 것을 목격하는 존재다. 작가는 그녀의 눈을 통해 아직 눈이 멀지 않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드러낸다. 식량을 배급하던 군인들이 눈이 먼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는 것, 건너 병동의 ‘보균자’들이 언제 눈이 멀까 두려워 ‘눈이 먼 사람들’의 병동을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가 유일한 목격자이기 때문에 드러낼 수 있는 시각이다. 모든 일들을 지켜보고 견뎌야 했던 그녀는 차라리 눈이 멀었으면 좋겠다고 자문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눈이 멀어버렸지만 그 사이에서 또 다른 계급과 권력, 범죄가 발생한다. 눈이 멀었을 뿐 그들은 여전한 '인간'이다.



  작가는 그녀에게 몰두하지 않는다. 그녀가 바라본 현실을 묘사할 뿐이다. 이입하지 않기에 독자는 두 가지의 시선을 느끼게 된다. 목격하고 있는 '의사의 아내'와 그 사실을 냉철히 풀어내는 '작가의 시선'. 이로 인해 독자는 이 '환상'을 다각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구성을 통한 실감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눈이 멀어버린 증상이 퍼져가는 과정, 이들이 격리된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기까지의 과정, 마지막으로 살았던 도시로 돌아와 눈이 멀었던 사람들이 다시 눈이 보이기 시작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다. 다르게 말하면 증상의 발발, 증상의 심화, 증상의 해결로도 볼 수 있다.



  증상의 발발을 다룬 도입부의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 이것이 단순한 질병의 수준을 넘은 전염병이며 치료법조차 알 수 없음을 강조한다. 더불어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관한 현실이 함께한다. 전염병일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이야기에도 공무원은 믿지 않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은 원장은 자신이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후에 눈이 먼 사람들이 늘어난 뒤에야 그들은 질병을 받아들이며 대책을 세운다. 그들의 명목은 아직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감염된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것이었다.



  증상이 심화되는 과정은 격리된 이후의 전개에서 엿볼 수 있다. 당장 눈이 멀었다는 충격에 힘들어했던 이들은 눈이 먼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성이 바닥을 드러낸다. 최후에 이르러서는 똑같이 눈이 먼 사람들이 식량을 독점하여 다른 이들을 협박한다. 여기서 그들은 군인들이 눈먼 이들을 총으로 겨누며 위협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무기를 들고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협한다.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고 심지어는 여자들을 강간하기에 이른다. 도덕의 경계를 벗어난 추악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남은 것은 당장의 욕망을 해결할 수 있는 ‘현재’ 뿐이다.



  격리된 정신병동을 나와 그들은 자신이 머물던 ‘사회’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이 소용없어졌음을 깨닫는다. 그들이 가졌던 재산, 사회적 지위, 살았던 마을 모든 것은 이미 무너진 상태다. 지옥 같던 정신병동이 이미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그들을 격리하고 밀어내던 사람들조차 눈이 멀어버렸다. 그들은 점차 ‘보였던 것’들이 무너졌음을 깨닫는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소유’의 경계는 사라졌다. 격리된 정신병동과 다른 것은 그들에게 자유가 주어진 것뿐이다.



  ‘의사의 아내’는 자신이 보인다는 사실을 그제야 드러낸다. 또 다른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음식을 얻고자 상점과 집을 찾아다닌다. 그곳에서 조차 음식을 가진 자와 빼앗으려는 자들이 부딪치고 있다. 익숙해진 사람들은 또다시 정신병동에서의 모습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애써 자신들이 살았던 집을 찾는다. 익숙한 구조.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던 곳에서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현실이 무너져 버렸음을 실감하는 것이다.



  시스템이 붕괴해버린 현실에서 작가는 그럼에도 '작가'인 누군가는 이 현실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음을 비춘다. 그 신호와 함께 더러워진 그들을 씻어주는 비가 내린다. 의사의 아내처럼 현실을 마주한 자가 드러나는 순간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절망만이 흘러갈 것 같던 세계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피어오른다.




- 마무리


  눈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처음으로 눈이 먼 남자였다. 그의 눈에는 빛이 아닌 어둠이 찾아왔고 조금씩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력을 잃었던 순서대로 그들은 다시 시력을 되찾았다. 갑자기 돌아온 행복에 그들의 아침식사는 잔치가 된다. 눈이 멀었던 사람들의 입에서 눈이 보여라는 외마디가 터져 나온다. 눈이 멀어버린 환상성은 결말에 이르러 다시 눈이 보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의사의 아내는 일어나 창으로 갔다. 그녀는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 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 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보였다. 내 차례구나. 그녀는 생각했다.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눈길을 얼른 아래로 돌렸다. 도시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461p



  결론을 통해 작가는 눈뜬 현실을 실감하게 만든다. 이때 그저 ‘눈이 잠시 멀었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라 다른 장면을 통해 독자에게 눈이 멀었던 ‘현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 없어지지 않는 현실을 그들은 이제 눈 뜬 채로 마주해야 한다. 일순간 그녀는 새하얀 하늘을 보았다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드디어 자신의 차례인가. 그러나 눈이 먼 사람들의 모든 것을 목격한, '인간'을 마주한 그녀의 눈은 멀지 않았다.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정영목 옮김, 해냄

- 당신은 눈을 뜨고 있나요?


+장편소설 브런치

https://brunch.co.kr/@kamorin/3


https://brunch.co.kr/@kamorin/12   


매거진의 이전글 연필 깎기와 장인이 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