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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Apr 06. 2018

닿지 않는 현실

『나의 미카엘』- 아모스 오즈


만남은 운명 같았다. 계단에서 미끄러진 한나를 붙잡아준 미카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매혹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야기의 시작에 배치된 강렬한 서문과 두 사람의 만남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반대의 현실을 담는다. 30대의 한나는 사랑하는 힘을 잃어버렸고, 20대의 한나는 막 사랑에 빠져 있었다. 만남이 쌓이고 결혼에 이르기까지, 한나의 일기는 빠르게 흘러간다. 그러나 결혼을 시작으일기는 현실과 속도를 마주한다.


  한나는 학업을 포기한다. 낯선 일을 시작하고 병을 얻는다. 첫 아이를 임신했지만 기뻐하지 않는 남편의 얼굴을 마주한다. 심지어는 제니아에게 미카엘의 삶을 망치지 말라는 저주 섞인 말을 듣는다. 이야기의 속도를 줄인 만큼 한나의 일기는 그와 그녀의 간극에 다가선다. 미카엘은 그녀가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고, 한나는 자신의 곁에 누워있는 그가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카엘과 결혼하기 전 만남에서 한나는 그를 마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 같다고 말했지만 결혼을 한 이후에는 오히려 그를 낯선 사람이라 규정하는 것이다. 일기가 결혼 생활의 현실에 집중할수록 전반부와 후반부의 일기의 차이가 단어 하나로도 극명히 드러난다.


  미카엘은 학자가 되겠다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한나는 딛고 설 현실이 없다. 덕분에 한나는 그 결핍을 다른 것으로 채워간다. 새로운 옷을 사 모으고 의도적으로 낭비하는 삶을 지속한다. 그녀는 이를 통해 그의 자제력을 깨부수고 싶어 한다. 자제력은 그녀가 느끼는 그의 벽이다. 미카엘의 삶은 절제되어 있다. 그는 자신이 정해둔 기준을 좀처럼 넘으려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내밀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그 밑바닥은 여전히 감춰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부부에게는 싸움이 사라진다. 큰 목소리 대신 묵묵부답이 공간을 메운다. 회피를 통해 시간을 조금씩 유예시킨다. 그러나 회피는 감정을 없었던 일로 만들지 못했다. 부부의 거리는 계속 멈춰있다.

작가는 일기의 형식을 통해 한나의 내면으로 독자를 이끈다. 나열되는 일기에는 시간에 따라 변해가는 한나의 감정, 시선, 그녀를 둘러싼 환경까지 세밀하게 흘러간다.

 

  작가는 서문에서 40년 전 완성한 나의 미카엘을 40년 뒤인 지금은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소설을 쓸 때의 자신은 ‘한나’에게 이끌리듯 소설을 완성했다고. 그만큼 소설은 한나의 감각을 따라간다. 긴밀한 서사가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이 아닌 한나의 감각이 서사를 만든다. 그 감각은 어떤 순간에는 시적으로, 어떤 순간에는 그녀의 ‘한 마디’로 드러난다. 이것은 ‘한나’의 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만약 미카엘과 한나의 일기를 번갈아 서술했다면, 혹은 서사 중심의 부부가 분열해가는 방식의 전개를 택했더라면 드러날 수 없는 지점이다. 한나의 일기여야만 그녀의 감각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


  미카엘과 한나의 사이에는 한 장의 현실이 있다. 둘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언어를 해석하는 방향이 다르다. 한나는 미카엘의 논문을 보며 ‘건조하고 사실적인 문장’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카엘은 그 의미를 반대로 해석한다. 한나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미카엘은 그녀 역시 그의 연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녀와 그의 언어적 차이는 ‘왜’와 ‘어떻게’로 극명히 갈린다. 그녀는 현실을 기억하며 또한 기록한다. 왜를 생각하며 그녀는 자신의 현재를 바라본다. 반면 그는 현실을 그저 살아간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자신의 성취를 이룰 것인가에 대한 방법이다. 그는 그저 자신의 연구를 완성하고 가족과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것에는 ‘왜’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 미카엘에게 한나는 자꾸 뒷걸음치는 존재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현실에 좀처럼 발을 딛지 않는 사람이다. 그녀가 그에게 던지는 의문은 그에게는 불필요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언제나 ‘한 사람은 항상 듣기만 하고 아무 말도 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나의 일기는 어느 순간부터 환상과 악몽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악몽이라는 단어로 등장했던 장면들은 뒤로 갈수록 한나의 현실과 가까워진다. 현실 속에 튕겨져 나갈수록 그녀는 자신이 악몽이라 명칭 했던 것을 현실의 경계로 당긴다. 결국에는 미카엘이 이스라엘 군 징집을 앞둔 날, 자신이 고의로 차가운 얼음을 욕조에 받고 그 속에서 환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환상의 세계에서 ‘이본 아줄라이’가 된 그녀는 환상 속에서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는다. 새벽의 악몽은 때때로 전쟁, 홍수, 철로 사고. 길 잃음. 그 속에서 그녀는 주로 강한 남자에게 구조되었으나 곧 배신당한다. 이러한 악몽과 환상의 반복은 어쩌면 그녀의 현실과 닮아 있기도 하다. 금방이라도 어그러질 것 같은 현실 속에서 그는 어쩌면 구조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미카엘은 언제나 그 기대에 반하는 대답을 돌려주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악몽과 환상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처음으로 두 사람이 떨어져 살아가게 된다. 사실 이 부분에서 나는 어쩌면 미카엘도 한나도 서로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어 다른 전개가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나는 미카엘도 자신도 허공에 떠 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비관론자라는 말로 되갚는다. 참다못한 한나는 미카엘에게 자신의 ‘왜’를 던진다.     


말해 봐요, 미카엘.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죠?
당신의 질문은 무의미해.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사는 게 아니야. 그냥 살고 있지. 그걸로 끝이야.
미카엘 갠츠, 당신은 태어났을 때와 똑같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죽을 거예요. 그걸로 끝이에요.

미카엘은 자신이 원하던 논문을 완성한다. 어떻게를 완성한 그는 또 다른 목표였던 ‘이사’를 이루어낸다. 그 과정에서 미카엘은 한나가 예상했던 것처럼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된다. 한나가 앞서 상상했던 것이 그대로 미카엘에게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결론에 이르러 한나는 미카엘에게 작별을 고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에게 인사를 건네며 생각한다. 미카엘과 자신은 두 사람이지 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미카엘에게 노력해달라는 말을 건넨다. 미소 짓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좀처럼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한나는  환상으로 건너간다.


- 아모스 오즈, 나의 미카엘, 최창모 옮김, 민음사

- 삐걱대는 관계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당신에게.



+ 고전 장편소설 브런치

허먼 멜빌, 모비딕 https://brunch.co.kr/@kamorin/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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