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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Apr 05. 2018

욕망의 대상

「애러비」- 제임스 조이스

인간은 욕망한다. 욕망이 대상으로 맺히는 순간 인간의 욕망은 보다 강렬해진다. 소설 속 플롯은 욕망의 단계를 철저히 따르고 있다. 무의식이 대상화되고 욕망에 따른 이상을 덧붙이고 그것이 발화되는 순간까지를 다룬다. 소설은 욕망과 맞닿기 시작한 소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독자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욕망을 엿보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 소년이 욕망을 실감하고 스스로가 한 행동을 깨닫는 순간 독자는 자신이 주인공을 통해 느껴버린 욕망의 두께를 실감한다.   


  소설은 소년의 시선을 따라간다. 고요하다 못해 냉담한, 그 공간을 바라보는 소년의 마음은 돌이 던져지기  호수처럼 잔잔하다. 그런 소년에게 파문을 던지는 것은 ‘그녀’, 바로 친구의 누나다. ‘그녀’는 이미 소년의 시선 속에서 대상화가 된 상태다. 성스럽다. 다가갈 용기가 나지 않는 미지의 존재. 소년은 거실 바닥에 누워 그녀를 바라본다. 소년 속의 욕망이 점차 두께가 생기며 무거워진다.


  플롯이 담아낸 욕망은 ‘성’적인 것다. 소년은 언제든 손을 뻗어 그녀를 잡고 싶었을 것이다. 성스러움과 '성'적인 경계 사이에서 소년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갈 기회를 소망했다. 그런데 성스러운 대상처럼 보던 그녀와 대화할 기회가 주어진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사제가 사용하던 곳다. 사제가 기도를 올리던 성스러운 공간에서 소년의 '성'적인 욕망이 튀어 오른다. 그녀가 첫 대화에서 꺼낸 한마디. 애러비에 갈 것이냐는 질문이었고 그것이 튀어 오른 소년의 욕망을 붙잡는다. 


  소년의 일상에 그녀가 짙어진다.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던 시기가 무너진다. 소년 안의 덩어리가 고개를 든다. 그녀가 처음으로 ‘애러비’에 갈 것이냐고 묻는 한마디에 덩어리는 형체가 되어 소년의 앞에 서는 것이다. 소년은 처음으로 '그녀'를 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느끼게 된다.


  관심조차 없던 ‘애러비’에 가는 일이 소년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것은 소년에게 희망고문과 같은 것이었다. 소년에게는 ‘애러비’는 그저 ‘애러비’가 아닌 처음으로 욕망의 존재에게 자신이 다가갈 수 있는, 더 나아가 가질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기회를 주는 ‘목표’가 된 것이다. 소년은 수업에 흥미를 잃는다. 그의 입가에는 수업보다도 '애러비'라는 마법의 단어가 맺힌다. 그녀에게 무엇이든 사주겠다고 말했던 장면이 소년을 집어삼킨다. 소년은 어떻게든 '애러비'에 갈 수 있는 돈을 마련하려 혈안이 된다. 평소에 할 수 없었던, 버거웠던 일들을 소년은 벌이기 시작한다. 예상과 다르게 '애러비'에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과감한 행동을 이끈다. 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돈, 딱 '애러비'에 갈 수 있는 돈이다.

 

  고생 끝에 ‘애러비’에 도착한 소년은 그녀가 자신의 손끝에 닿을 것만 같던 그때처럼 가게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녀에게 선물할 물건을 찾는다. 가게의 주인의 무심한 시선, 의무감에 던지는 한마디에 소년은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욕망을 잡기 위해 ‘애러비’에 도착했지만 결국 자신은 그녀에게 어떤 것도 선물할 돈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포켓 속에서 1 페니짜리 동전 두 개를 6펜스짜리 동전에 떨어뜨리면서 쨍그랑거렸다. 회랑의 한쪽 끝에서 불을 끈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홀의 윗부분은 완전히 어둠에 잠겨버렸다.

  소설은 소년이 자신에게 분노를 느끼는 장면으로 결말을 맺는다. 플롯의 마무리는 욕망의 덩어리가 응축되고 발현되는 그 순간까지 다루는 것이다. 나는 결말을 읽고 나서 소년의 다음을 상상했다. 내가 상상한 다음소년과 동화하며 느꼈던 욕망에 따른 것이었다. 당연할 것 같았던 결말이 빗겨나가는 순간 나는 소년만큼 자라난 내 상상을 실감했다.

  

  소녀에게 다가가고 싶었던 소년의 욕망은 응축된 만큼 소년의 두 눈을 가뒀다. 소년을 압도한 욕망은 끝내 소년을 무너뜨린 것이다. 정말 딱, 그곳에 갈 만큼의 돈을 들고 '애러비'에 들어선 순간.




-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진선주 옮김, 문학동네

- 단편선 중 「애러비」

- 욕망을 부정하고 있는 당신에게.



+ 또 다른 브런치,

김영하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https://brunch.co.kr/@kamori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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