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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모린 Oct 15. 2018

알마의 숲 _알고 보니의 세계

안보윤 - 『알마의 숲』

추락


  소년은 죽기 위해 산을 올랐다. 여자를 ‘알고 보니’의 세계로 끌어내리기 위해서. 소년은 이날을 위해 자살 매듭 묶기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확실한 죽음으로 ‘청소년 심리 상담가’인 여자를 나락으로 추락시키는 것이 소년의 목표였다. 죽음은 그녀의 ‘유명세’만큼 파급력을 가질 것이다. 여자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타인의 시선이 ‘알고 보니’의 탑을 쌓아갈 테니까.



유명 청소년 심리 상담사 알고 보니 열네 살 아들 자살도 못 막아.



  소년의 죽음은 가십을 소비하는 ‘그들’에게 먹이가 될 것이었다. 누군가의 기사 한 줄만으로도 여자는 충분히 파멸할 테니까. 죽기 위해 매듭에 목을 건 순간까지도 소년은 죽음을 확신했다. 시체가 언제 발견될지. 여자는 어떤 모습을 보일지. 소년은 알고 보니가 펼쳐질 미래를 상상했다.

  그런데 소년은 보랏빛 틈을 발견하고 말았다. 무심코 뻗은 손은 예기치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소년은 보랏빛 틈 아래로 추락했다.
그리고 살아버렸다.


노루


  소년은 틈에서 알마를 만났다. 알마는 소년이 ‘문’을 넘어왔다고 말했다. 보랏빛 틈 너머. 여자가 아닌 소년이 ‘문’을 넘어 추락한 것이다. 알마는 소년을 대뜸 ‘노루’라 부르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름을 전하려는 소년에게 알마는 말한다.


세상에 어떤 나뭇가지가 그렇게 온 목을 휘감아 상처를 낼 수 있겠어?
넝쿨이 아닌 다음에야.
너는, 죽고 싶었던 거지?
이유야 어떻든 너는 너를 삭제할 작정이었던 거잖아?
그런 사람한테 이름 따윌 물어서 뭐하게. 너는 노루야. 그걸로 됐어.


  소년은 그렇게 ‘노루’가 되었다.


  알마의 숲에서 소년은 세 사람을 만났다. 눈물을 흘리면 죽는 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녀 알마, 알마의 곁을 지키는 삼촌, 쉬지 않고 글을 쓰는 올빼미. 조금씩 알마의 숲에 적응한 소년은 그들에게 자신이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늪 너머


  여자는 소년의 방을 녹색 벽지로 꾸몄다. 그녀는 녹색 벽지가 소년의 가능성을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소년에게 녹색 벽지는 공포였다. 그녀가 만든 정해진 세계에서 소년은 녹색 벽지 속 소용돌이로 삼켜지는 기분이었다.

  

  어린 소년은 녹색 벽지가 두려운 나머지 '여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무섭다는 소년의 말에 여자는 '전문가'로써 상상력을 발휘한다.


  그림자, 책상, 액자. 어떤 대답도 정답을 맞히지 못한다. 그녀는 언제나 '부모'가 아닌 '전문가'의 입장에서 소년을 바라보았다. 덕분에 여자의 기준은 '소년'이 아닌 '또래의 어떤 아이들'이었다.


소년 : 벽지가 무서워요. 녹색인 게 무서워요.
여자 :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심술 난 거야? 열 살이나 먹어서 어리광은.


  늪은 소년을 짓눌렀다. 벽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소년은 숨이 막혔다. 몸을 타고 올라온 해초와 이끼들이 소년의 정신을 잠식했다. 그때마다 소년은 발작을 일으켰다. 커다란 재채기를 한 것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소년에게 알마는 물었다. 왜 자신에게 녹색 벽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소년은 알마에게 말했다.


그냥, 한 번쯤 얘기해보고 싶었어.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알고 보니의 세계


알고 보니의 세계는 청소년 범죄와 똑같은 룰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극적인 팩트만 있다면 이유는 상관없다는 식으로요.
풍선이 점점 커지는 과정 자체가 필요 없는 겁니다.
이들은 ‘알고 보니’ 다음에 그럴듯한 이유가 붙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겁니다. 그 애들은 이유와 과정이 없다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거든요.


  소년은 알고 보니의 현장에 있었다. 토끼를 보기 위해 자주 올라가던 그곳에서 하필 ‘알고 보니’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소년은 비슷한 시간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의심받았다.


  조사에서 소년을 빼낸 여자는 소년을 믿고 있다고 했다.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라고. 소년은 자신이 직접 겪었던 일에 대해 전하고 싶었지만 여자는 받아주지 않았다. 녹색 벽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 날처럼 자신 만의 ‘알고 보니’의 전말을 펼칠 뿐이었다.  


  과연 여자의 말처럼 ‘알고 보니’의 세계는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결국 여자 역시 소년에게 과정과 이유가 생략된 ‘결과’만을 강요한 것은 아닐까.


사실 소년에게 필요했던 것은 온전히 소년의 말을 들어주는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과정의 중요성이 사라진 세계. 알고 보니의 세계 속에서 소년은 언제나 발버둥 쳤다. 소년은 끝없이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알리고 싶었지만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엄마인 여자는 자신의 직업을 이유로 소년의 결과를 그저 '분석'할 뿐이었고 아빠였던 남자는 결국 '방관'을 택했다.


  그들이 결과가 지배한 세계에서 벗어나 소년의 '왜'에 집중했더라면. 소년이 어렵게 꺼내는 순간을 기다려 줬다면. 소년이 과연 알마의 숲에서 '알마'를 만나게 되었을까?




그럼에도 살고 싶었던, 알마


나는 아침마다 반 뼘씩 자라난 감정의 가지들을 쳐내는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래야만 이어나갈 수 있는 생이었다.
혹독하게 감정을 잘라낼수록 삶의 가능성이 커졌다.


  알마는 살아남기 위해 감정을 잘라내야 했다.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순간 알마의 앞에는 죽음의 문턱이 펼쳐졌으니까. 알마의 엄마는 꿈을 꾸다 죽음의 위기를 겪었던 어린 알마를 향해 외쳤다.


저 애가 꿈을 꾸지 못하게, 절대로 어떤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들어주세요.


  그런 알마의 앞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 했던 노루, 소년이 나타났다. 죽기 위해. 소년은 죽어서 '여자'에게 복수하고자 했다. 버티는 '삶'앞에 소년의 등장은 어쩌면 가장 잔인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소년과 달리 알마는 살기 위해 엄마의 죽음 앞에서 감정을 말려야 했다. 눈물 한 방울, 감정의 한 순간이 찾아오지 않도록. 냉정하게, 철저히 자신을 위해서 알마의 삶은 그래야만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병이 내게서 빼앗아간 건 인간의 영역이었다.
 나로 하여금 짐승의 영역에서 살도록,
이기심과 본능 외에는 필요치 않은
황폐한 영역에서 살도록 했던 것이다.
비겁하다, 비겁하다. 나는 그렇게 외치며 눈밭을 뛰었다.
그럼에도 나는,
살고 싶었던 것이다.


   살아버렸던 소년과 다르게 알마는 살고자 했다. 감정을 말려버린 현재가 지속될 지라도 스스로를 비겁하다 자책할 지라도. 그런 알마이기에 소년에게 말할 수 있었다.


돌아가, 노루. 네가 있던 곳으로



정어리


  소년은 숲을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는 일을 망설인다. 돌아갈 수 있는 때가 찾아왔는데도 말이다. 모두가 알아차린 그 눈발 앞에서 소년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전한다.


  소년은 어렸다. 아직 누군가가 소년의 등을 밀어줘야 할 만큼. 소년은 알마의 삶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알마의 삶을 '죽어버릴까 봐 조마조마한 삶'으로 여겼다. 그런 소년에게 알마는 말했다.


나는 이 위태로운 삶 자체를 소중히 여기고 있어.
언제 죽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오히려 생의 순간순간을 더욱 사랑스럽게 치장해주는 거야.
내가 가진 모순은 견디는 삶에 대한 게 아니야.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하고 선택한 삶인데도
마음껏 정열적으로 살아낼 수 없다는 게 억울한 거지.
감정과잉은 독이니까.


  소년은 알마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담담히 털어놓는 이야기 속의 '아픔'을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소년은 알마가 자신의 평온한 삶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등을 떠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년은 서툴었으니까. 여전히.


  떠나는 소년에게 알마의 삼촌은 자살 매듭이 남아있던 밧줄을 건넸다. 소년이 목숨을 버리려 했던 매듭. 아이러니하게도 매듭은 소년을 '현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열쇠가 되었다. 그렇게 소년은 죽으려 했던 그 날처럼 눈이 휘몰아치는 산을 홀로 오르기 시작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소년은 숲 속에서 만난 '그들'의 말들을 하나씩 떠올렸을 것이다. 위태로운 삶일 지라도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알마. 묵묵히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줬던 알마의 삼촌.

  그리고 올빼미.


  그래, 어리지. 그것뿐이다. 그러니 돌아가.
돌아가서 제대로 정어리를 먹는 거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남김없이 먹은 뒤에
비리거나 느끼하거나 토할 것 같단 생각이 들면.
뱉어. 뱉고 입을 헹궈.
삶이란 건 원래 그런 식으로 살아내는 거거든.
정어리를 먹고, 그게 맛이 없으면 뱉고,
그다음엔 고등어나 고래를 먹는 거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지.



소년은 이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정어리를 참고 억지로 삼킬지, 뱉고 입을 헹굴지.

 



- 안보윤, 알마의 숲, 은행나무

- 알고 보니, 정어리가 목에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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