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by 캄프카

문제는 판단이다. 판단은 참 특이한 녀석이다. 판단을 통해 말과 행동이 야기된다. 그런데 판단도 타인과 주변의 말과 행동에 의해 이뤄진다. 틀린 말과 부정한 동기의 행동은 잘못된 판단이 내려질 확률을 올린다. 말과 행동이 잘못되지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거나 해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또한 잘못된 판단이 내려질 확률이 올라간다. 그리고 잘못된 판단은 다시 부적절한 말과 행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확률이라 표현한 이유는 적확하고 정확한 말과 정당한 동기의 행동도 잘못된 판단을 야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은 필연적으로 부적절한 말과 행동으로 이어진다. 판단이 극단적 성격을 띤다면 당연히 극단적 말과 행동이 나온다. 잘못된 판단이 내려지는 경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경우는 소위 말하는 섣부른 결론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섣부른 결론은 정보의 부족이나 부재 때문에 발생하는데 문제는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인용한 바 있는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소크라테스의 격언은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지식과 상황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더불어 '더닝-크루거 효과'역시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효과는 적은 지식이나 낮은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자신을 과대 평가하는 경향이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말한다.


WYSIATI(What You See Is All There Is)

당신이 보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는 전부다.

-다니엘 카너먼 Daniel Kahneman-


이스라엘계 미국의 심리학자 다니엘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이라는 저서에서 시스템 1 (빠르고 직관적인 사고)과 시스템 2 (느리며 분석적인 사고)를 소개했다. 시스템 1은 필연적으로 내가 현재 알고 있는 정보로만 판단을 내리고 부재하는 정보는 고려하지 않는다. 바로 앞서 인용한 WYSIATI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반면 시스템 2는 점검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는 많은 비용, 즉 사고를 진행하는 과정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확실한 동기가 뒷받침 돼야 발동될 수 있다. 인간의 인지는 보통 시스템 1을 선택하게 되는데 이를 쉽게 이야기하면 현재 기준으로 적절한(하지만 부족한) 정보들로 '그건 이런 거야.'라고 틀린 대답을 내놓는 것이 '그건 아직 잘 모르겠어.'라고 유보적 대답을 하는 것보다 수월하고 덜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여기서 오판의 부담을 생각의 다양성 등으로 포장한다. 때문에 무언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과 시간은 더욱 아깝게 되고 오판을 내렸을 때의 페널티는 크지 않게 된다. 더더욱 시스템 1이 활성화되는 조건이 갖춰져 있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판단을 내릴 때는 늘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떠한 사실을 인지하면 그 사실에 대한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감정이 판단을 내려버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일터나 학교에서 상사나 선생님의 지시를 받았을 때 그 일이 본인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면 이를 불필요한 일이거나 자신이 할 수 없는 일, 혹은 자신이 할 필요가 없는 일로 결론 내리고 지시에 저항하거나 항의하는 일들이 있다.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이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반하는 정보를 배재하거나 무시해 사실을 왜곡하고 이를 통해 결론 내리는 심리 패턴을 말한다. 여기서 주요하게 볼 점은 이러한 과정이 의식적으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Sapere aude

과감히 알려고 하라 /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러한 판단 미스를 줄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필자가 이전 글들에서도 자주 언급했던 것들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건 맞아.'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맞다고 생각하나 어떠한 조건 하에서, 혹은 어떠한 조건이 발생한다면 내가 틀렸을 수 있다.'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 불편함을 감수하고 진실을 탐구해 보는 것, 이기적이지 않고 윤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덧붙여 꾸준히, 끊임없이 지식을 습득하려 노력해야 한다. 칸트는 계몽을 논함에서 미성숙을 '타인의 이끎 없이는 자기 스스로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로 정의하고 계몽을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selbst verschuldete Unmündigkeit)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위에 인용한 로마 시대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서간집'에 실린 경구를 인용했다. '용감히 알려고 하라.' 당연히 이런 태도를 견지하고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치 우리 스스로가 군자, 혹은 성인이 되어야 할 거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최첨단 기술의 혜택과 함께 맞이하게 되는 부수적이지만 심각한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첨단기술의 콘셉트와는 지극히 반대되는, 지루하고 힘들며 쉬운 쪽을 선택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태도를 요구한다.


한 가지 더 언급해 보자. 우리가 일상에서 내리는 판단의 대상은 대부분 '타인'이다. 타인은 우리 주변의 지인과 유명인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부류의 타인을 평가하는 기준을 우리는 보통 같이 잡고 가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 이는 구분 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타인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기준으로 삼는다. 어떤 상황에서 일어난, 혹은 어떤 순간에서 발생한 말과 행동을 가지고 평가의 기준을 삼는데 지인을 평가할 때는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유명인(정치인을 비롯한 공인이나 언론인 등)을 판단할 때는 오류를 야기할 수 있다. 이전에 맥락에 관련된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과 궤를 같이하는데 지인의 경우 우리에게 쌓여있는 그들의 사전 정보(맥락 정보)로 인해 그 순간의 말과 행동으로도 나름의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반면 유명인의 경우에 우리는 그들의 맥락 정보를 충분히 축적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고 이는 개개인마다 매우 차등적인데 이러한 판단을 통해 나오는 견해는 동일하게 '여론'으로 취급된다.


우리가 유명인, 특히 정치인이나 언론인과 같은 공인, 준공인을 평가할 때 필요한 것은 그들의 행동에 대한 맥락적 이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저서에서 반복된 행위의 습관(hexis)을 통해 진정한 성품이 드러난다고 했다. 공인을 판단을 할 때 단순하게 과거의 행적을 참고하거나 이를 단편적으로 쪼개서 확증편향의 근거로 써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한 과거 행위들의 방향성과 연속성을 이해하고 그 선상에서 지금의 행동과 말을 이해해 판단해야 한다.


우리가 공인에게 기대하는 것은 최소한의 공적 마인드, 공익적 가치의 추구이다. 그것이 사적 이익의 추구로만 향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두가 이것을 전제로 대상의 언행과 행위를 평가한다. 하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공적 가치 추구와 사적 이익 추구를 구분할 것인가? 극단적 예시를 든다면 누군가가 수십 년간 목숨을 걸고 어떠한 행위를 이어왔다면 이는 사적 이익 추구로 보기 매우 힘들다. 이익 추구의 정점에는 나의 안위가 위치하기 때문에 목숨을 거는 행위가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삼기 힘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는 과거의 말과 행동이 가졌던 방향성과 그로 인한 사회적 결과물이 그 사람의 사적 이익과 결부되었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의 배제나 부재 속에서는 맥락의 몰이해가 발생하며 이는 현재 발언이나 행동에 대한 잘못된 평가와 판단 미스로 이어진다.


세 번째의 판단을 굳이 따로 다룬 이유는 앞서도 말했던 것처럼 이 판단 미스는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 가지의 판단 오류의 해결책은 기본적으로 같은 궤적 안에 존재한다.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감정이나 예단에 판단을 끼워 맞추려 하지 말아야 하며 판단에 대한 업데이트, 즉 지식의 축적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맥락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전제를 항상 가지고 실제로 판단 미스가 있을 때 이를 수정하는 용기다. 사회적 사건에 대한 판단이나 공인에 대한 판단 미스가 있을 경우에 특히 이런 태도가 필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사회적 소란, 혼란과 사회 발전 지체에 내 의도와 상관없이 기여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판단뿐만 아니라 판단의 수정 또한 나의 내면적 성향을 결정짓는 요소로 축적된다. 이에 대한 태도는 미래의 나를 규정짓게 되는 중요한 요소다. 결국 판단을 수정하는 용기는 나 자신의 존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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