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두려움

by 캄프카

지난 6월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몇 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여러 문화 콘텐츠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지만 이번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이지만 한국적이지만은 않은 콘텐츠로 유례없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다는 특이점이 있다.


이 작품의 인기 비결을 분석해 보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에서 갈등의 주원인이 되는 요소가 바로 소통의 부재다. 주인공은 본인의 비밀을 주변에, 심지어 자신의 아주 가까운 동료 및 친구들에게도 공유하지 못하며 갈등을 겪었다. 우리도 종종 접하게 되는 상황이다. 필요한 말을 제 때 하지 못해서 오해가 쌓이고 그게 원인이 되어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왜 그런 상황이 발생할까? 단 한 가지의 이유로 이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본인이 비밀을 공유했을 때 이해받지 못할 거라는 근원적 두려움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이해받는다는 것은 결국 공감을 말한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하는 근원적 욕구가 있다. 그것을 누군가가 받아들여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은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나에게 공감해 주는 사람과 더 깊은 관계를 맺게 되고, 그런 관계를 본능적으로 원한다. 하지만 관계의 단절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며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최근 공감의 중요성을 많이들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이는 우리 사회에 공감 능력이 필요해지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과거 사회에서는 타인에게 공감하기 위한 문턱이 조금 더 낮았다. 사회는 단순했고 사회 구성원들은 공동의 경험을 가졌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도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고 자신과 유사한 상황으로 인해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전통적 가치관이나 규범들은 가족이나 공동체 구성원 간의 관계를 강제하는 측면이 강했고 그러한 가치관이나 규범은 지금 사회에서 보다 구성원들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로 이행하면서 사회는 분업화, 다변화, 다양화되었다. 사회 구성원들은 이런 흐름과 변화에 맞춰가며 뿔뿔이 흩어졌다. 이 흐름은 사회의 양적, 질적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구성원 간의 상호이해를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는 상호 간 공감의 감소로 이어졌다. 게다가 과거처럼 관계를 강제하는 규범이나 가치관은 효력을 상실했고 오히려 이런 가치관을 여전히 옹호하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사회의 지속적인 변화는 구성원들이 여기에 계속해서 적응하도록 강제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현대사는 극단적 사회 변화의 기록으로 갈음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산업화를 이룩했고 그 이후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정보 통신 사회로 넘어갔다. 이러한 '바쁜' 상황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들이는 것에 야박하도록 만들었다. 텍스트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직관을, 콘텍스트보다는 정답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일반적인 상황이 됐다. 더구나 관계 형성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규범적 강제가 약화되니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의 불편함을 회피하거나 거부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2000년대 초반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네트워크를 통한 비대면, 간접적 소통이 스마트폰의 보급과 SNS 사용으로 더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이뤄지게 된 상황은 이해와 공감을 방해하는 또 다른 요소다. '비대면 간접'을 흔히 익명성이라고 이해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이 진짜 익명으로 이뤄지는지 여부보다 기술적 장치를 매게로 하는 특성이 더 중요하다. 이 비대면 간접 소통은 일반적 대면 소통에 비해 '쉽다'. 단순히 접근성이 좋다는 의미도 되지만 일반적 소통에서 개입하는 조건들 중 상당 수가 비대면 소통에서는 배제된다. 때문에 이 소통에서는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고 쉽게 소통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소통을 중지하는 것도 쉬워 이를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없다.


소통과 공감으로 우리가 얻게 되는 정서적 효과에는 상대방의 표정, 대화를 나누는 장소의 분위기, 상황에 따라서는 스킨십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들의 역할도 들어가 있다. 오히려 그러한 요소들의 역할이 더 큰 만족감이나 심리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비대면 간접 소통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모두 제거된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SNS에서나 특정 소통 공간에서는 좋아요 개수처럼 공감을 수치화해서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공감의 수량화는 소통의 본질을 변화시킨다. 소통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해서 상호 이해를 높이고 공감을 형성하는 과정이지만 SNS 상에서는 더 높은 공감을 얻기 위해 소통의 내용을 조정하거나 꾸미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소통이 높은 수치의 공감을 얻었다고 그만큼 높은 정도의 만족감이나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을까? 실제로 여러 연구를 보면 SNS 소통을 활발히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현실의 자아와 온라인상의 자아 간 괴리나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 그리고 정보의 과잉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효율을 중시한다. 성공을 위해 최단기간으로 최선의 방식을 선택해 최고의 결과를 얻어야 한다. 이것이 절대선이다. 반대로 불필요한 과정과 요소는 제거해야 하고 최고의 결과를 얻지 못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것이 상식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겁쟁이들의 사회다. 검증되지 못한 방식은 시도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안정된 길만 찾는 겁쟁이들이 대세를 이루는 사회다. 하지만 소통은 실패가 연속되는 과정이다. 인간은 시시각각 감정과 생각이 변하며 아주 다면적 모습을 지닌다. 그 순간순간에 소통을 해서 공감을 이뤄낸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속적으로 이를 시도해야 한다. 소통, 공감, 교류는 모두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지탱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며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쉽게 얻어진다면 그것은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쟁취해야 할 때도 있으며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얻을 수 있기에 '좋은 것'이다.


"No good thing ever dies (좋은 것은 절대 죽지 않는다)"

-쇼생크 탈출(The Shawshank Redemption) 中-

토요일 연재
이전 01화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