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선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선택이라는 것은 인생의 진로를 결정짓는, 일정 시간 동안 고민을 야기하고 신중함을 필요로 하는 그런 것들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주 찰나의 순간순간에도 우리는 늘 선택을 한다. 이런 선택들은 순식간이 이뤄지고 지나가기 때문에 내가 선택을 내렸다는 자각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모든 선택들은 선택되지 못한 옵션과 선택하지 않았을 상황을 뒤로한다. 우리는 이를 기회비용이라고 부르며 이것을 최소화할수록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화'와 같은 작품이나 '미다스의 손'과 같은 신화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 아주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는 등장인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보통 이런 이야기 속에서는 주인공들이 과도한 욕심을 부려 부도덕한 선택을 하고 오히려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 하여금 독자들이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깨닫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우리가 맞이하게 되는 선택들은 그렇게 선악이나 경중이 명확하지 않다.
이런 이야기들 중에 확실히 현실에서도 의미가 있는 요소들은 있다. 바로 선택은 후회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결과물이 아무리 좋았더라도 선택이라는 것은 '그때 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이라는 IF의 요소를 지니게 된다. 때문에 뒤에 남겨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나머지 요소는 아쉬움이나 궁금함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이나 궁금함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뒤늦게 반대편 선택을 취한다 한들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 결과가 이전의 IF 루트의 것과 같다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택의 영역에서 항상 신중하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영향 때문인지 현대의 사회에서는 누군가의 성공담이 아주 쉽게 공유된다. 그리고 그러한 성공담의 주인공들은 아주 합리적이면서 결단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우리는 그러한 성공담을 열심히 귀담아듣는다. 거기에는 자신도 그러한 성공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투여되기도 하지만 조금 더 확실하고 안정적인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싶다는 심리가 반영되기도 한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성공한 사람들과 같은 선택을 한다고 성공이, 확실한 미래가 보장될까?
지금의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보통 시간이 지난 후에나 평가할 수 있다. 심지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평가는 변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매 선택의 순간 우리는 결정을 내린다. 이성적 상황 판단이건, 주변의 충고이건, 직감이건 간에 그 근거가 되는 요소들은 참 다양하다. 하지만 선택의 결과물은 추후에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선택은 그 순간 늘 불확실성에 놓여있게 되고, 우리는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근거로 삼을 고려 요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불안감은 더 커질 수 있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정보를 모아 고려해 보더라도 성패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택을 내릴 때 한 가지 확실한 부분은 내가 내릴 선택지의 반대편에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이 기회비용이 가져다 줄 대미지 또한 선택으로 얻어질 득실을 따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로 측정할 수 없다. 현시점에서 기회비용을 줄여보겠다는 노력들의 상당수는 그저 낭비될 수도 있다. 그 노력이 무조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과도하다면 실제 효과보다는 그저 선택을 늦추는 결과만 가져올 수 있다.
선택은 사실 등가교환이다. 선택을 내리는 그 순간, 특히 우리에게 고민을 가져다주는 선택이라면 두 선택지의 가치는 동등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의외로 합리, 이성, 손익이라는 개념이 개입할 여지가 적다. 그럼 선택을 내리게 되는 동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선택을 내리는 주체의 선호이다. 결정의 사유는 대체로 여러 가지 형태로 포장되지만 실상 그 핵심에는 개인의 호불호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과정을 대외적으로 드러내거나 추후에 드러난 결과를 가지고 반추할 때 여러 다른 요소의 탈을 씌울 뿐이다.
가끔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으면서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삶이 관성적으로만 흘러가고 있을 때가 첫 번째 경우다. 관성적으로 선택을 내리다 보니 고민도 적고 그 선택이 비이성적이거나 상황에 맞지 않더라도, 심지어 그런 선택을 내리고 있음을 알아채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권위나 권력을 통한 압박 속에 있을 때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때 선택지가 없다고 착각하는 이유는 굴복하지 않았을 때의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권위나 권력에 굴복할 것이냐 아니냐의 선택지 앞에 서 있다.
우리가 내린 과거의 선택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고, 그렇게 규정된 '내'가 미래의 선택을 내린다. 선택은 이처럼 오묘한 것이다. 선택이 올바르게 - 내가 원하는바대로 - 나를 규정할 수 있게 하고 미래의 내가 올바르게 선택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선택과 선택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늘 재차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정확하게 자기인지(Selbstbewusstsein)를 하게 하고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자존감을 높이게 한다. 때문에 내가 선택을 내렸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 혹은 인지하지 못하거나 -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를 외면하고 선택의 결과를 회피한다면 내가, 그리고 내 삶이 비굴해질 수밖에 없다.
"It is our [choices], that show what we truly are."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는 우리의 선택들이 보여주는 것이야."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 中-
선택을 내리는 건 늘 쉽지 않다. 불확실 속에서 불안을 유발한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내릴 때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이는 선택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 속성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조언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계속되고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미래의 내가 바라는 것이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그 갈림길에서 조금은 더 당차게 발걸음을 옮길 필요가 있다. 오직 필요한 것은 최선을 다해 그 길을 걸어갈 성실함과 그 길목에서 마주하게 될 중간 결과를 맞이할 용기다. 더불어 선택이 과거와 미래의 나를 연결해 주는 매개인 만큼 내가 어떤 사람인지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자각과 상상력이 있다면 과도하게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