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을 하지 않는 저주

by 캄프카

어린 시절 나는 내가 글을 꽤 잘 쓴다는 자뻑에 빠졌던 적이 있다. 나름의 자신감을 가지고 SNS에 글을 수시로 개제하기도 했고 글감을 구하기 위해 책이나 영화를 보기도 했고 시사 정보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 착각은 내가 글로 먹고살아야겠다는 또 다른 착각, 망상으로 이어졌다. 그다지 근거가 있지는 않았다. 내 능력에 대한 과신이었는지,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였는지 조차 지금은 알 길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내 글은 그리 팔릴만한 정도의 것은 아니라는 걸 자각하게 됐다.


난 내가 말이야. 스무 살 쯤엔 요절할 천재인 줄만 알고

어릴 땐 말이야. 모든 게 다 간단하다 믿었지.

-Happy Day (song by 체리필터) 中-


우리는 왜 착각을 할까? 한 연구에서는 우리의 두뇌가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부의 정보를 과거의 경험에 의거해서 처리하거나 단순한 프로세스로 처리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우리의 두뇌는 현실을 항상 예측하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괴리라고 설명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원시 시대부터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는데 그 과신이 생존 확률을 높였던 경험으로 지금도 착각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설명한다.


요컨대 착각은 두뇌의 오류로 인해서 벌어진다. 그 때문인지 착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 우리의 일상에서 착각은 보통 실수를 야기하기 때문에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더불어 자기 스스로에 대한 착각, 과도한 자기애나 허세를 부리는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우리는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이기심으로 이어지거나 이 착각으로 인한 실수가 나에게도 피해를 끼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착각은 나쁘기만 한 걸까? 착각과 실수로 여러 유용한 기술들이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을 거다. 우리 일상에서도 착각은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떤 임무를 해낼 수 있다는 생각, 저 사람이 내게 호감이 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나 내가 적극적으로 구애를 하면 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내가 선택한 길이 올바른 길이라는 생각 등은 적어도 그 생각을 하는 단계에서는 착각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착각을 해서 우리는 여러 일을 시도하기도 하고 도전하며 여러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착각은 우리의 삶을 다채롭게 해주는 요소다. 더 중요한 것은 착각을 통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밝은 미래를 확신하거나 예측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가지곤 하는데 이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것이건 상황에 대한 낙관적 인식 같은 것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근거 없는 자신감'에 기초를 둔 희망이라는 착각은 우리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노력을 경주하게 만들어 준다. 때문에 적절하게 관리되는 착각은 우리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Hope, It is the quintessential human delusion, simultaneously the source of your greatest strength and your greatest weakness."

"희망. 그것은 전형적인 인간의 망상임과 동시에 너희들의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이자 나약함의 원천이지."

-The Matrix Reloaded(메트릭스 리로디드) 中-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들은 착각을 조금씩 덜하게 된다. 여러 경험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이나 주변 상황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데이터가 쌓이게 되니 흔히 하는 말로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험의 축적에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긍정적 가치를 부여하지만 이렇게 연륜이 쌓이게 되면 착각은 덜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어떠한 일을 조금은 무리해서 도전하거나 그 도전이 성공할 것이라는 근거가 부족한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줄어들게 된다.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없듯 여러 경험이라는 값진 가치를 얻는 대신 치르게 되는 비용은 착각하지 않는 저주다.


한국에서는 이 저주에 걸리는 사람들의 연령 폭이 훨씬 넓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는 높은 수준의 유동성과 변동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구성원들은 상대적으로 획일적 삶의 양식을 추구한다. 사회 변화가 과도하게 일어나 불안정성이 높은 가운데 많은 구성원들이 안정성을 추구하기 때문인데 여기에 많은 가치들이 수량화와 정량화가 돼버린다. 교육과정에서나 학교 이후의 삶 속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지속되며 구성원들에게 내재화된다. 모든 것이 수량화되고 정량적으로 판단 및 평가를 하게 되면 미래에 대한 '계산'이 빨라진다. 그리고 착각할 여지는 점점 줄어든다.


한국이 착각하지 않는 사회임을 보여주는 수치가 바로 자살률이다. 착각을 하지 않으니 삶의 진행에 대한 예상이 쉬워진다. 더군다나 성패로만 평가받는 한국 사회의 특성 하에서 내 인생이 '패'의 길로 접어들었다면 삶을 이어갈지 말지에 대한 판단은 상대적으로 쉽게 내려질 수 있다. 한국 사회의 자살률은 전 연령에서 세계 최고이며 40대까지의 전 연령에서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는 현실이니 사회적으로 여러 대책을 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담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등 자살이라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것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내에서 다양한 삶의 양식이 가능해야 한다. 삶의 다양성이 확보된다면 인생의 성패에 대한 판단은 유보적이게 될 수 밖에 없고 그것 자체가 삶을 살아갈 기대나 희망을 가질 이유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지방 분권이나 지방 경제 활성화와 같은 정책들은 의외로 정치적이기보다는 이런 노력과 연관이 있다. 각 지역들이 가지고 있는 지리적, 문화적 특색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활성화시킬 수 있게 장려하거나 기폭제가 될만한 계기를 마련해 줘 성과를 낸다면 거기서 자연 발생적으로 지역 특성에 맞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다양한 삶의 방식이 사회적으로 마련된다면 자신의 적성을 정확하게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이러한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교육의 역할이 필요해진다. 이런 교육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교육 개혁(교육 서비스 제공자들의 선발 방식과 이들의 재교육을 포함한) 또한 필수적이다.


착각을 하지 않으면 삶은 효율적일 수 있겠지만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에 그러한 삶을 견디지 못한다. 대부분의 착각은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 성취하고 싶은 마음 등에서 생겨난다. 이 착각을 지우고 '효율'의 길을 택한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며 이때 성취가 따라오지 못한다면 더더욱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된다. 무조건 현실을 낙관적으로 보거나 자기 과신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빠른 포기와 단념이 꼭 현명하거나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인생은 실패를 통해서 배우게 되는 것이 더 많은 과정이다. 오히려 착각은 여러 시도를 가능케 하고 여기서의 성취뿐만 아니라 실패 또한 우연한 길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우리가 모든 이성과 효율을 고려해도 인생에 존재하는 모든 변수는 고려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예측도 완벽하게 해 낼 수 없다. 착각으로 여러 시도를 해보고 이를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는 삶의 태도가 더 필요한 이유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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