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인터넷이 막 보급될 무렵인 2000년대 초반 '정보의 홍수'라는 표현을 많이 했었다. 당시 이 말은 기대감과 우려를 동시에 포함하는 말이었다. 수많은 정보에 일반 개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벌어질 기득권의 붕괴와 부당한 통제의 해체를 기대했고 많은 양의 정보를 대중들이 잘 선별하여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함께 있었다. 물론 최근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가지는 감정처럼 기술 자체가 가져올 사회 변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우려도 있었다. 어쨌든 그 당시에는 대략 20여 년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대비를 할 수는 없었다.
인터넷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폰과 SNS 등의 도구와 플랫폼은 세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그들은 시민들의 사회 참여를 이전과 형식적으로 완전히 바꿔버렸고 이로 인해 사회 참여가 극적으로 확대되는 등 많은 사회/정치의 변화를 야기했다. 연락과 정보의 교류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면서 조직화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고 과거와 같이 장기간에 걸친, 아주 강하게 형성된 연대 없이도 특정 사회 문제에서 불특정 다수가 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많은 사회에서 부정과 부패에 대항하는 시민들의 역동적 저항을 이끌어 긍정적으로 사회가 변화하는데 큰 동력이 되었다. '아랍의 봄' 운동이나 한국의 지난 '촛불 혁명'과 '빛의 혁명' 역시 이 연장선상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무차별적으로 유통되는 이른바 '가짜뉴스'의 문제와 확증편향의 강화와 같은 문제가 거의 모든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으며 이 영향으로 각각의 사회들은 민주제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사회의 기본 가치나 민주제적 가치를 부정하는 소위 '극우'가 세력화해서 정치나 사회에 실질적 영향을 행세하게 됐고 이로 인해 소위 정치/민주제 선진국이라는 국가들도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초창기 인터넷 보급 시기에도 부정확한 정보에 대한 우려는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발생한 문제라고 하면 대부분 개인적 차원의 것들이었다. 때문에 이 부분은 긴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시기에 언급되던 이슈는 특정 플랫폼의 정보(제공) 독점을 벗어나 개인들이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고 공유하는 것의 가능성 여부와 방법론에 대한 것들이었다.
이런 양상이 완전히 바뀌게 된 계기는 부정확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조직적으로 제작 및 유통하는 세력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가짜뉴스는 이들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독일의 AfD(Alternative für Deutschland 독일을 위한 대안 정당, 독일의 극우 정당)가 세력을 형성 및 확장하던 초창기에 틱톡을 위시한 SNS 플랫폼에서 유통한 콘텐츠들이나, 미국의 트럼프를 지지하던 극우 인터넷 매체들의 기사들이나, 한국에서 2012년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던 댓글 조작 사건들이 그 예시다. 이런 사례로 특정 세력이 조직적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렸을 때 얼마나 큰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엿볼 수 있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요인이 2010년대부터 대부분의 플랫폼들이 도입한 소위 알고리즘을 통한 콘텐츠 추천 기능이다. 이 기능은 소비자들에게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명목하에 도입됐다. 사람들의 수요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파악하여 필요한 정보를 검색을 통하지 않고도 추천 영상으로 제공해 편의성을 증가시켜 준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아주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이 이전의 검색 결과, 시청 기록, 구독 내역을 바탕으로 한 추천 콘텐츠를 시청하게 됐다.
조직적으로 생성된 가짜뉴스는 콘텐츠 생성량에서 자연발생적 콘텐츠 숫자를 압도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알고리즘 기반의 추천 방식에서 더 노출 빈도가 높아진다. 특히나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추천 알고리즘이 돌아간다고 해도 완전히 내 취향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내가 특정 정치 관련 콘텐츠를 소비했다면 정치와 관련된 가짜 뉴스가 같은 카테고리로서 추천되는 방식이다.
문제는 가짜뉴스의 확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엄선된' 콘텐츠 제공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확증편향에 빠져들게 된다. 우선 이 추천 방식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 관심사'에 기반해서 콘텐츠를 제공하기 때문에 시청자/소비자는 특정 내용이나 방향성을 가진 정보나 콘텐츠만을 지속적으로 접하게 된다. 게다가 이렇게 (편리함으로 표현되는) 일방적 추천 방식 덕분에 사람들은 콘텐츠의 퀄리티나 내용의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한 선별의 노력을 덜하게 되며 이런 콘텐츠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덜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더불어 이렇게 추천 콘텐츠를 소비한 후에도 다른 내용의 콘텐츠를 검색하여 소비하려는 수고로움을 굳이 감수하려 하지 않게 된다.
사실 인간에게 확증편향은 본능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부족 사회를 이룰 무렵부터 그 집단이 공유하는 가치와 의식에 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도 집단에서 퇴출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집단의 결속을 높여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공동의 가치나 의식에 본인의 생각을 맞춰가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를 수정하는 과정은 늘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며 기존 견해가 옳다는 정보를 계속 축적해 나가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더불어 인간은 새로운 정보를 취득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스트레스를, 기존의 정보와 같은 맥락의 정보를 얻을 때는 안정감을 느낀다고도 한다.
"All lies and jests, still a man hears what he wants to hear and disregards the rest."
"모든 게 거짓이고 실없는 소리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나머지는 무시해 버리지"
- The Boxer (song by Simon & Garfunkel) -
흔히 가짜뉴스의 문제로 인해 많은 사회에서 민주제가 위협받고 사회 혼란이 가중된다고 하지만 확증편향만으로도 비슷한 현상은 나타날 수 있다. 확증편향은 그 자체로 다양성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감소시킨다. 때문에 확증편향이 심할수록 타인에 대한 배타성, 공격성도 증가한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마저 생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쉽게 상대를 악으로 규정할 수도 있게 된다.
확증편향의 문제는 반대되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이런 접근은 본질을 흐리게 할 수 있다. 이미 확증편향에 빠진 상태에서 반대되는 이야기나 정보는 의미를 가지기 힘들다. 이는 정보의 옳고 그름 문제와도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확증편향은 게으름의 문제에 더 가깝다. 정보를 접할 때 더 깊이, 더 폭넓게 생각하려 하지 않고 쉽고 편리한 선택을 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다. 그것이 앞서 말한 인간의 본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 문명은 대부분 그 본성을 거스르거나 통제하면서 일궈낸 것들이다.
인류가 그간 만들어낸 유무형의 성과물들을 봤을 때, 이들이 창조된 결과로 편리한 삶이 이뤄진 적은 있어도 편리함만이 목적이 되어 성과물들이 얻어진 경우는 없다. 늘 더 나은 삶이 함께 추구되었으며 그 과정은 항상 불편함과 복잡함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가짜뉴스 문제는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확증편향의 문제는 제도나 사회적 접근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의 노력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 이미 우리를 확증편향으로 쉽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시스템이 '편리'라는 이름으로 우리 생활 속에 안착돼 있고 이를 제도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쉽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