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민주제

by 캄프카


과거,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법은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 국가는 곧 왕을 뜻했으며 왕의 지위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었다. 백성들의 존재 이유는 그저 그 국가의 안위를 보전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법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백성이 국가의 질서(왕위)를 어지럽히지 않게 하고 국가의 도구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했고 불필요했다. 더불어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기 위한 기술 또한 필요가 없었다.


근대로 넘어오면서 법의 역할은 민주제가 도입되고 안착되는 것과 깊은 관련을 가지게 된다. 신과 신의 권한을 몰아낸 자리를 인간이, 정확히는 인간의 이성이 차지하게 되면서 국가=사회는 이성을 가지고 있는 개개의 집합으로 재정립되었다. 국가=왕이 가지고 있던 권력과 권한, 권리는 백성=시민에게 이양되어야 했다. 거의 모든 사회적 개념들이 재정립되었고 새로 탄생하면서 이를 조정하기 위한 장치로 도입된 것이 근대의 법이다.


다만 근대 초기 이 기틀을 만들던 소위 지식인들은 일반 대중에 대한 일말의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를 심어 두었다. 현재 몇몇 민주제 국가들의 선거제도에 들어가 있는, 현대 민주제의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제도들은 그 흔적들인 경우가 있다. 이들은 일반 대중이 충분한 이성적 역량을 지니지 못했고 그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위험으로 봤다. 동시에 이들은 인간 이성을 사회에 확대 도입시키기 위해서 계몽주의를 주창했다.


하지만 1, 2차 세계 대전과 같은 인간 이성의 실패,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편적이고 거대한 담론 형식의 이성에 대한 회의를 통해 다원적이고 상대적인 요소들, 쉽게 이야기하면 다양성의 중요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편적 인권은 그러한 다양성의 기초하에 있으며 현대의 민주제가 그 위에 서게 되었다.


1, 2차 세계 대전의 기초가 된 파시즘과 이를 선도한 국가 권력을 견제하고 다양한 시민 사회의 의견을 보호하라는 것이 현대(포스트 모던) 법의 가치다. 이 부분을 현재 한국의 판검사를 위시한 법조인들이 인지하고,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국 정부가 수립되고 87년까지 사실상 계속해서 이어졌던 독재의 역사에서 대부분 판검사들의 행태를 생각한다면 그들이 과연 지금의 권한과 현재 요구하고 있는 권한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데다 시민들의 힘으로 회복한 그들의 권한을 시민 사회를 위해서 그동안 잘 써왔냐 하는 부분에도 물음표를 제기하게 된다.


그렇게 과거로 갈 거 없이 이전 정부 때를 생각해 보면 시작부터 탄핵될 때까지 반민주적으로 운영된 정부 하에서 법조인들은 어떤 식으로 행동했으며 탄핵 정국과 그 이후에 어떤 행동을 했나? 오히려 그 권력에 부역했던 자들이 정권이 바뀐 다음에 국가 권력을 견제한다며 법관의 권한과 수사권을 운운하고 민주적 다양성을 부르짖는 것은 오히려 반민주적이었던 이전 정권의 성격을 이들이 이어받아 연속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는 있을까?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게 된 또 다른 중요한 깨달음은 역사는 진보하는 것(fortschreiten)이 아니라 발전=변화(entwickeln)하는 것이라는 점, 그래서 누군가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대중의 뜻이 민주제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서구 정치 선진국의 여러 정치적 위기 상황은 앞서 언급한 초기 근대적 시스템과 인식이 포스트 모던적 인식•요구와 합치되지 못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현재 한국에서 시민들의 뜻은 확고하다. 이를 어기려고 하고 한국의 현대적 민주제를 방해하는 자들은 엘리트주의에 빠진, 하지만 심지어 엘리트적이지도 않은, 한 줌도 안 되는 법조인들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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