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오늘 2024년 12월 3일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 벌어졌던 날이다. 사상 유례가 없던 현직 대통령의 친위쿠데타가 있었고 전 세계 근현대사에 찾아보기 힘들 게 정상적 민주제 시스템의 작동으로 이를 저지했다. 거기에는 역시 전례가 없었던 시민들의 적극적 내란저지 행동이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사이에 한국의 역사와 민주제는 극과 극을 오고 갔다. 그 시점 기준 최종 결론이 내란 저지로 이어졌기에 비록 저 밑바닥을 맛보기는 했지만 장밋빛 미래가 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란에 대한 정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너무나도 많은 오르내림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지난 1년 동안 내란의 진상규명과 처벌을 지연시키거나 막아온 세력은 대한민국에서 그동안 성역으로 여겨졌던, 동시에 정의 실현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겨졌던 법원이었다. 누군가는 저들 중 일부의 농간이라고 말하지만 그 내부의 다른 생각을 지닌 자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려오지 않고 있음에 '나머지 대다수'를 따로 옹호할 생각은 없다.
현 상황은 우리의 사법이 그간 행해 왔던 사회적 정의를 전면 재고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정의는 땅에 떨어지게 됐을까? 핵심을 말하자면 한국의 민주제에서 시민의 뜻이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2,30여 년 전, 필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던 무렵에 몇몇 학자나 정치인들은 직접 민주적 요소의 도입을 주창했었다. 일견 당시의 위정자나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직접 민주적 방식을 거부하고 외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지만 필자는 다른 한편으로 왜 다른 민주제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요구가 없는가를 궁금해했다. 이미 그들에게는 이런 요소가 도입이 되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가?
십수 년 전 독일의 정치 시스템을 비롯한 다른 나라 정치, 민주제 시스템을 알게 되면서 몇몇 의문이 풀렸다. 헌법적으로 시민의 사회 참여를 충분히 보장해 주면서 오히려 시스템적으로는 시민의 주권참여를 견제하는 장치들이 들어와 있었다. 민주제를 처음 도입하면서 이 시스템을 만들던 자들이 경계했던 중우정치에 대한 대비책 때문이었다. 즉, 이들 나라들은 직접 민주제적 요소의 확대를 지양했고 대신 활발한 시민들의 의사표현과 사회 참여로 부족분을 메우고 있었다.
한국의 민주제는 최초에 저들과는 다르게 쟁취된 것이 아니라 도입된 것이었고, 때문에 위정자들이나 시민들 모두에게 민주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들은 민주적 시민의식을 가지기 시작했고 위정자들의 중세적, 구시대적 통치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87년 6월 항쟁이 그 배경에서 일어난 민주적 시민의식의 발로였다.
문제는 위정자들과 엘리트들에게 있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민주화되지 못했고 시민을 대중이나 심지어 백성 취급했다. 87년 이후 대한민국에는 절차적 민주제가 일정정도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이들의 의식이 바뀌지는 않았다. 추가로 이 위정자와 엘리트층에 속하려고 노력하는 개개 시민들의 지지(욕망)로 오히려 이 의식은 전 사회적 헤게모니로 자리 잡았다.
위정자들, 엘리트들, 그리고 여기에 편입하려는 시민층의 의식은 일반 시민들의 의식과 지속적으로 벌어져 갔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잘 알려진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으로 처음 촉발된 촛불집회와 미국 소고기 광우병 사태에서의 촛불 집회, 2016년 말부터 17년까지 이어진 촛불 혁명과 작년 12월 3일 이후 벌어진 빛의 혁명까지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민주적 의식을 완성시켜 갔지만 저들은 이러한 활동을 중우정치의 위험으로 바라봤다.
이러한 의식하에 있는 자들에 의해 - 빛의 혁명이라는 위대한 민주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 지난 1년 동안 사회적 정의가 매듭 지워지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평가 및 반박은 아래 네 가지로 할 수 있다.
1) 민주제는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시민의 뜻으로 작동해야 하는 시스템이며 설령 대다수 시민들의 뜻이 잘못된 방향을 향하더라도 반대되는 뜻을 가진 소수가 민주적 방식으로 공론화하면서 해결하거나 추후에 선택에 대한 결과의 문제가 발생하면 수정해야 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권한이나 권능으로, 더군다나 시민에 의해 부여받은 권한으로 이를 저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2) 민주제 시스템이라는 것은 시민들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함에 존재 근거가 있다. 때문에 이 시스템의 내용이나 시스템적 장치를 근거로 절대다수 시민의 목소리와 요구사항을 제약하거나 외면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못함을 넘어 반민주적이다.
3) 정의라는 것은 상대적 기준으로 세워지는 가치로 민주제 사회에서의 정의라는 것은 그 사회 내 시민들의 보편의식에 근거해야 하고 이를 대표하는 것이 헌법이다. 헌법 재판소에서 이 행위에 대한 판결이 이미 내려졌고 시민의 대다수가 이에 동의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통령까지 선출된 상황에서 절차적 정의의 탈을 쓰고 벌어지는 사회적 정의를 지연시키거나 방해하는 모든 행위는 반민주적이고 부정한 일이다.
4) 사법권을 위시한 모든 공무적 권한은 사회적으로 부여된 권한이며 시민들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 예컨대 삼권분립과 같은 시스템 또한 절대적 가치는 아니다. 오히려 시민들의 권리 보장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이들의 권한 행사가 반민주적, 반시민적이라면 언제고 회수되거나 조정될 수 있는 가치다.
작금의 상황이 매우 지난하게 흘러가고 있고 때문에 답답함과 때로는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상황에 대한 평가만 놓고 하자면 좋은 이야기를 할 게 없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현재 상황은 거대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최근 대부분의, 특히 민주제 선진국이라고 하는 모든 나라들은 민주제의 위기를 겪고 있다. 때문에 많은 나라에서 우리의 빛의 혁명을 벤치마킹하고 있고 분석하려고 하고 있다. 이 일의 매듭을 우리가 확실히 짓게 된다면 다시금 그들에게나 우리 스스로에게 큰 의미가 있을 시금석을 마련하게 될 것이며 이를 발판으로 우리 사회는 더욱 발전적 민주제가 작동하는 사회로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버티는 힘과 속이 타들어가더라도 관심을 놓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