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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카게살자 Oct 27. 2023

그래, 그해 겨울이었어...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스무 살 언저리 즈음 겨울, 재수를 끝내고 나는 강원도 태백으로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를 태백으로 택한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재수할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고향이 태백이었고 시험이 끝나면 꼭 한번 놀러오라는 그의 제안에 응했던 것뿐이었다. 대입 시험은 시원찮게 치렀고 여행을 떠날 돈도 없었서 그저 답답한 마음을 견디고만 있었다. 지금은 배낭여행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돈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을 무전여행이라고 했다. 먹고 자는 것이 해결 되었으니 어디든 안갈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없어진 통일호를 청량리역에서 타고 그렇게 태백으로 향했다. 몹시도 바람이 불고 춥고 눈도 많이 내린 겨울날이었다.      


  고향으로 빨리 달려가서 부모님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 사랑하는 애인을 보고 싶어 군대 면회를 가는 예쁜 아가씨의 조급한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차는 그저 느릿느릿 제 갈 길을 묵묵히 가고 있었다. 저녁에 도착한 태백역은 생각보다 좁았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많았다. 지금이야 모두 폐광이 되었지만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북, 고한, 태백 지역은 속된 말로 지나가던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지역경제는 흥청거린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번창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부터 유가가 안정되고 사회구조적인 변화로 인하여 석탄 수요가 감소하자 이 지역들은 서서히 황폐화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즈음에 나는 그곳에 잠시 있었지만 이미 어떤 마을은 곳곳이 비어가고 있었다. 대낮이었는데도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노인들만 지나가는 나그네를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처럼 대중교통이 원활하지도 못했고 당시만 해도 강원도 오지라고 여겨지던 태백 지역의 여행은 쉽지 않았다.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이런 동네를 내가 왜 왔지? 하는 후회만 가득했다.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는 않지만 이상하게도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실망은 버려버리고 나도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게 되었다.      


  이건 마치 이문열의 소설 “젊은날의 초상”에서 주인공 영훈이가 죽으러 찾아간 겨울바다에서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돌아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삶은 유지돼야 한다. 갈매기가 날기를 포기했을 때 그것은 이미 갈매기가 아니고, 존재가 그 지속을 버렸을 때 그것은 이미 존재가 아니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 이문열 작가의 소설 “젊은날의 초상” 제3부 “그해 겨울”에 나오는 구절이다. 아마도 그때 나는 영훈이가 되고 싶어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사상이 어떤지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 이문열 작가는 내 어리고 젊은 시절, 나의 우상이었고 선생님이었고 친구였다. 그의 소설들은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나의 목마름에 시원한 생명수였다. 소설 속에서 자살을 하기위해 유서와 독약이 든 약병을 품고 주인공 영훈은 바다로 간다. 그 중간에 칼을 갈고 있는 낯선 사내를 만난다. 그는 이념적인 문제로 투옥되어 십수 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자신과 동지들을 배신한 밀고자를 처단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하였다. 그가 힘든 감옥살이를 참고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출소하면 그 배신자를 찾아서 자기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영훈은 자살하기 위해서 바다로 가고, 사내는 복수를 위해서 바다로 가던 중 그와 다시 마주친다. 그러면 그는 그렇게 바라던 대로 결국 배신자를 처단했을까? 그러나 그는 복수를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한다. 사내는 복수를 위해 배신자를 찾아갔으나 그는 이미 심하게 병들어 있었고 자신보다도 훨씬 못한 모습으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다고 했다. 오히려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그를 보면서 차라리 살려두는 것이 그에게 더욱 심한 삶의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판단해서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 삶이란 때로는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할 때가 있다. 


  그렇게 사내가 복수를 포기하고 칼을 바다로 던지는 것을 보고 영훈도 약병을 바다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임을 깨닫는다. 그 사내와의 인연을 뒤로하고 영훈은 상행열차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복숭아 과수원에서 얼마 전 죽음에 대한 생각은 모두 버리고 화려하게 다가올 봄을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그해 겨울 쓸쓸하게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는 영훈에게 너무 많은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나에게도 그런 감성적인 시절이 있었구나.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런데 몹시도 그립다.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고, 절망이 내 인생에서 최고에 이르렀다고 혼자 마음껏 상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하다. 겨울은 한해의 끝이면서 또한 한해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겨울은 절망의 끝임과 동시에 희망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해 겨울, 그 여행을 통해서 “나”라는 존재를 깨닫고 다시 힘차게 삶을 시작해야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참 잘된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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