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이 바꾼 나
엄밀히 말하면 나는 이민 1세대다. 이곳에서 학교를 졸업했지만, 학교를 위한 학교가 아닌 비자를 위한 학교 수업이었기에 그저 아무런 절박함 없이 학교를 즐기고 그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어 가는 자녀들을 바라보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쓰럽기도 하다.
사실 목사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이민이라는 경험을 통과하기 전까지 나는 나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지 못했다. 다시 말해 나의 생각이 나의 환경과 주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생각임을 깨닫지 못한 채 그 생각이 내 생각인 줄 알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사실 대학의 목적은 나의 주관을 확립하고 세상을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어야 할 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졸업해서 결국엔 교단 과정에 들어가 목사가 되었다.
아마도 하나님과 나 자신을 찾는 신학함이 아닌,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의 자격증을 따기 위한 목적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리라.
그 이후 따라왔던 부작용은 많은 이들이 경험하다시피 어디에서 어떤 사람이 교회를 부흥시켰다 하면 세미나 좇아 다니고, 저곳에서 어떤 사람이 대단한 제자훈련을 한다 하면 그쪽을 좇아 다니고, 또 부산에서 어떤 사람이 대단한 양육시스템을 만들었다 하면 그곳에 좇아 다니면서 '내 생각'을 정립하기보다는 이런저런 세미나나 컨퍼런스를 찾아다니며 방법론만을 찾기에 급급했던 시절을 보냈었다.
내가 스스로 성경을 읽고, 내가 스스로 기도를 하면 될 텐데, 항상 누군가를 의존하고 뭔가 그 사람에게 대단한 비밀이 있는 양 따라다녔던 지난시절은 사실 '내 주관'이 없는 이들에게는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뭔가 영적으로 갈급할 때 그 충만한 분들의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충만해지는 느낌이 들었기에 열심히 그분들의 설교를 들었고, 뭔가 생활이 내가 세운 윤리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예전에 듣고 눈물을 흘렸던 설교들을 반복해서 듣고 나면 뭔가 다시 채워지는 듯한 착각으로 살아왔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많이 읽었다. 하지만 내 뚜렷한 주관으로 성경을 읽어본 적은 돌아보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어! 성경이 읽어지네, 혹은 통으로 읽는 성경 등등의 성경 맥락과 더불어 매일 성경 같은 묵상집을 통해서 성경을 읽었지만 역시 그것도 더 큰 목마름을 불러올 뿐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의 원인을 나는 앞에서 언급했던 데로 '내 주관'을 확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생각한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기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읽어야 한다는 반론은 다루지 않겠다. 이것은 나도 안다. 이 글의 전체 맥락상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웬만하면 다 아실 것이라 생각하고 넘어간다.)
이런 내 주관 없음과 신학 없는 열심, 그 공백을 채우는 여러 영적인 지도자들의 설교로 형성된 영적 신학과 더불어 부교역자는 이래야 한다라는 원리 아래에 정말 최선을 다해 신학생 때부터 교회를 섬겼다. 예를 들면, 담임목사님은 보이는 하나님이다. 부교역자는 담임목사의 종이다. 담임목사의 허물은 부목사가 대신 지고 가야 한다라는 등등의 원칙들 말이다.
이런 세월들이 아깝지는 않다. 돌아보면 하나님은 나에게 '내 생각'을 갖게 하시도록 수없이 많은 기회들을 주셨지만 그 기회를 날려버린 것은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내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 물음의 대답에 자신 있게 "Yes"라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확실히 친구들로부터 이제 사람 되었다는 말을 듣는 것을 보면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이민의 경험은 나의 많은 생각들을 바꿔놓았다. 목회자의 아들이요, 목회자의 사위로서 사실 감리교의 수레바퀴를 떠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감리교인이 아닌 이민자로서 살아왔던 시간은 인생의 참맛이 무엇인지, 그리고 신학함이 무엇인지를 삶으로 배우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런 생각들의 변화를 기록한다는 것, "김혜원 님,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라는 페이스북의 물음에 적당한 대답이 아닐까? 그런 생각의 변화를 나누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