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생각
이민자들은 관계에 굶주려 있다. 모든 이들이 다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좀 과장될 수 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다 그런 것 같다. 키위들은 사귀기 어렵다. 여기 있는 한국인들은 사귀기 어렵다. 뭐 이런 등등의 여러 이민 선배들이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것은 한국인이냐 키위냐의 문제가 아니라 뉴질랜드라는 나라 구조 자체가 관계를 그렇게 만든다. 따라서 한국에서 경험했던 관계 방식을 기대하고 내가 원하는 관계를 찾으려고 한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내가 원한 관계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 관계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도 그런 관계를 원했다. 그냥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 터놓고 내 속을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관계, 함께 부담 없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관계,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그런 가족 같은 관계 말이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오직 가족 안에서만 가능하다. 나이 들면 초등학교 동창이고 중학교 동창이고 사느라 바쁘기에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은 추억 속에나 있지 그런 관계를 만들기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관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 안 되는 것은 안된다고 빨리 인정하고, 이 나라 방식의 관계구조를 이해하는 수밖에 없다.
이 나라는 항상 목적에 부합하는 관계만이 계속 유지된다고 생각한다. 안 그런 관계가 어디 있겠냐 마는 이 나라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사실 뉴질랜드의 삶이 어떤 면에서는 한국의 삶보다 더 바쁜 것 같다. 물론, 해외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이 나라도 월화수목금토일 계속 일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한국에 비하면 토요일과 일요일에 쉬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일이 최소 금요일 오전에는 끝나야 하고 보통 목요일까지 끝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수요일까지 끝내면 조금 부지런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어떤 만남이든 그리고 일이든 간에 최소 한 주 전에 약속을 잡아야 하며, 어떤 행사를 하려면 최소 3주 전에 계획해야 하고, 조금 큰 행사라면 그래도 한 분기 전에 계획해야지 그나마 원활하게 행사가 진행된다. 그 분기를 Term이라고 부르는데 1년은 총 4 term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텀 중간마다 2주의 방학이 있다. 이런 식으로 생활이 돌아가다 보니 어떤 직업, 특별히 학교 청소라던가 학교 업무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정교사나 청소 매니저가 아닌 이상은 방학 동안 주급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 기간 동안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한다.)
이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가족을 돌봐야 하고, 직장을 다녀야 하고, 취미생활을 해야 하니 이런 정해진 목적에 따라 달려가는 열차의 레일을 바꿔서 친구를 찾는 외로운 이민자의 관계의 욕구를 풀어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목적의 철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철로 밖에서 왜 이 나라 사람들은 거리를 두는 것인가, 왜 정이 없는 것인가, 키위들은 마음을 열지 않는다라고 외쳐봐야 내가 원하는 친구를 만들기란 정말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라, 아무런 목적도 이득도 없는데 이미 짜인 시간표를 바꿔가면서 내 시간을 줄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민자는 같은 상황에 처한 이민자를 만날 수밖에 없고, 같은 이민자끼리 뭉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같은 목적을 갖는 수밖에 없다.
교회를 예를 들어보자.
교회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곳이 아니다. 한국에서 부목사로 일을 할 때 사무실을 똑똑 두드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돈이 없어서 그러는데 만원만 주시면 저녁 한 끼 먹을 수 있는데 하면서 돈을 요구한다. 그러면 만원 주는 무조건적인 예수님의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배고프시면 제가 지금 밥을 사드릴게요, 지금 중국집 갑시다. 마침 저도 밥 안 먹었는데", "여기 조금만 더 걸어가시면 경찰서가 있거든요, 거기에서 돈 좀 달라고 하세요", 아니면 "동사무소 가셔서 기초수급자를 위한 식사 티켓이 있으니 신청하셔서 식사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돈을 주지 않으면 성질을 내면서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각 교회마저도 금전적인 도움을 받으려면 관계가 어느 정도 있어야지 공식적인 루트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아무나 그냥 돈을 주는 곳이 교회가 아니기에...) 그런 사람들은 교회의 충성된 멤버들로서 그 교회의 비전과 목적을 그래도 최소 몇 년 동안 함께 섬기면서 쌓여 있는 관계가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꼭 도움을 받으려고 이런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목적을 갖고 그 교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길을 걸어가던 사람이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도움을 주고받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말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면, 먼저 같은 목적을 이해하고 그 목적에 감동하여 같은 목적을 품고 시간을 들여 그 목적을 성취하는 가운데에서 관계는 자연스럽게 맺어지게 된다. (여기서 목적이란 어떤 음흉한 동기나 꼭 돈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냥 개똥철학을 주저리 읊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