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工)자형의 인물>

-향원은 아니 되련다-

by 휴헌 간호윤

<공(工)자형의 인물>

‘거세개탁(擧世皆濁)’! 온 세상이 모두 더럽고 추하다는 의미다.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 해의 한자성어란다. 동감한다! 이 넉자 속에 나 또한 포함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이 ‘거세개탁’을 추천한 한신대 윤평중 교수께서 교수신문에 기고한 추천 이유 중, 한 구절이다.


‘지식인 사회의 과도한 정치 지향성은 한국 사회에서 이름깨나 있는 교수나 문인, 사회활동가와 지식인치고 특정 대선후보 진영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지 않은 이들을 씨를 말리다시피 하는 처참한 상황으로 귀결됐다’…‘.


‘지식인 사회의 과도한 정치 지향성’과 ‘처참한 상황’이 연결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한국사회를 강타한 ‘지식인의 정치인화’ 현상은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총체적으로 소진시키고 있다.”라고하며 지식인의 정치참여 행태와 방법에 대한 맹렬한 반성을 촉구하였다.


나 또한 공부랍시고 하며 상아탑(象牙塔)이라는 석 자에 은둔하여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글 따로 나 따로)인 사이비 향원류 지식인(?) 들을 참 많이 보았다. 그래 나름 ‘지식인’에 대해 생각해 본 글이다.(이 글은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2012, 조율)에 실린 글이다.)



<공(工)자형의 인물>


염치없는 지식인들이 어제, 오늘 신문지상에 이름 석 자를 들이댄다. 아니, 행태로 보아서는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영원무궁할 형세이다. 원하지 않는 진실이기에 매우 슬프다.


어릴 적에 장마철이 되면 할머니는 긴 빗자루로 호박꽃을 때리곤 하셨다. 호박꽃은 이 매질에 지고 잎은 찢기지만, 꽃에 있던 꽃가루가 빗자루에 묻어 다른 호박꽃잎에 옮겨 놓는다. 튼실한 열매는 여기서 맺히게 된다. 대추나무에 적당히 매질하는 이유도 같다. 지금이야 병원균이 밝혀져 대추나무 빗자루병이라고 부르고, 치료방법 또한 현대적이지만, 예전에는 이를 매질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하나마나한 소리이련마는 공부는 우리를 바로 잡아 튼실한 삶을 만들어주는 저 빗자루요, 도지개다. 도지개란, 틈이 나거나 뒤틀린 활을 바로 잡는 틀이란 의미이다. 그래 저렇듯 빗자루 공부, 도지개 공부를 착실히 한무릎공부해낸 이들이 ‘예의’, ‘윤리’, ‘염치’, ‘정의’ 따위의 옷을 갖추어 입고, 우리 사회를 이끄는 지식인이 된다.


허나, 공부가 출세의 수단으로 격하된 지금, 지식인들에게 ‘예의’, ‘윤리’, ‘염치’, ‘정의’는 심각한 토의 끝에 내리는 합의사항으로 변해버렸다. 물론 저들의 성품으로 미루어 합의는 꽤 요원한 일일 것이니, 이미 지식인으로서 사망선고는 내린 셈 아닌가. 붉은 글자로 ‘지식인’이란 만장(輓章)이라도 써야하려나 보다.


그래,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지식인상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그려본다.


공부(工夫)의 ‘공(工)’자형의 인물이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지식인상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그려본다.


공부(工夫)의 ‘공(工)’자형의 인물이다.


工 맨위::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다방면의 견문을 갖춘 사람) 중간: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 맨아래::휴머니스트(humanist:인문적 교양을 갖춘 사람)



지식인의 소임은 ‘깨어있고’ ‘보는 것’


지식인의 소임은 ‘깨어있고’ ‘보는 것’이다. 콜린 윌슨이 <아웃사이더>에서 한 말이다.


한 영역에서 엘리트로 인정받으려면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여기에 다방면의 견문을 얹어 폭 넓은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을 떠받치는 인문적 교양이다.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가 뇌의 소관이라면 ‘휴머니스트’는 인문적 교양을 담당하는 마음의 영역이다. 뇌에는 아픔을 느끼는 기관이 없다.(뇌수술은 환자의 정상 의식 상태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한다.) 그래 아픔을 느낄 줄 아는 가슴이 필요하다. 지식과 견문을 담당하는 이성인 뇌와 인문적 교양을 담당하는 감성인 가슴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온전한 인간이 된다. ‘예의’, ‘윤리’, ‘염치’, ‘정의’ 따위의 인문적 양심이 부축을 해야만 온전한 인간으로 바로 선다.


이 인문적 양심이야말로 ‘바람직한 지식인상’의 바탕이요, ‘도덕적 해이’의 방부제다. 지식인에게서 저러한 인문적 양심을 발라내면 무엇이 남겠는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이런 <하여가何如歌>류의 삶-, 남의 눈비음을 맞추기 위한 지식이라면 향원(鄕愿)밖에 더 되겠는가. 그래 ‘공부工夫’를 하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벽癖 하나쯤은 있어야 하리라.



향원(鄕愿): 향원은 《논어》 <양화> 편에 나오는데, “향원鄕原은 덕의 도둑이니라鄕愿 德之賊也”라고 하였다. 향원은 ‘두루뭉술 인물’이요,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아첨하는 짓거리를 하는 자’이다. 덕이 있는 체하지만 실상은 아첨하여 모든 것을 좋다고 넘어가기에 덕을 훔치는 짓이라고 공자가 꾸짖었다. 이 향원이 바로 사이비 지식인이다.

재주가 메주

-글 쓴다는 것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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