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근원 김용준 선생의 수필집을 뒤적거린다. “물질적 여유보다도 정신적 여유가 부족할 때 더욱 절실히 느끼는 것이 이 고독이라는 감정이다.” <고독>이란 수필에 나오는 글귀이다. 이 글을 썼을 때 선생 나이를 셈쳐보니 겨우 서른다섯이다. 내 나이는 선생 나이에 20년을 더하고도 훌쩍 남는다.
내 본래 깜냥이 적어 됫박만한 마음에 말들이로 들이붓는 세상사를 감내하기 벅차다. 철이 들고부터 늘 저러한 어휘를 달고 사는 이유다. 그래도 선생 말처럼 ‘낫살이 들면 차츰차츰 사라져 버리는 감정’ 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부쩍 ‘고독’이니 ‘외로움’이란 어휘들과 대거리가 잦다. 저 어휘들이 싱싱히 살아 회쳐먹을 듯이 엄습하니 글공부도 제대로 될 리 없다. 전에는 몇 잔 술이라도 먹으면 덜했는데 요즈음은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술 먹은 다음 날이면 더 을러대는 통에 하루를 꼬박 허송세월로 보낸다.
오늘도 아침부터 왁살궂고 거칠게 대드는 바람에 생각이란 놈이 채신머리없이 들까불댄다. 그것이 물질적 여유, 혹은 정신적 여유가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어서인지조차 모르겠다. 이쯤 되고 보니 ‘낫살깨나 먹었다’는 말이 송구하고 겸연쩍을 뿐이다.
그렇다고 어영낭청 오늘을 작폐할 수도 없어 몇 자 글로 저 ‘고독’이니 ‘외로움’이란 놈들에게 뻗대 붓대를 들어본다. 하지만 이미 생각이 휘뚜루마뚜루이니 영판 스님 빗질하는 글줄뿐이다. '언제쯤 쾌잣자락 날리는 여문 글 쓰고 여문 생각하며 아름찬 삶을 살려는 지?' 근원 선생이 말하는 '정신적 여유란 놈'을 잘근잘근 씹어본다.